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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로 Sep 07. 2024

2. 세상의 종말(2)

“해수씨, 전화 와.”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연구소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오후였다. 곁에서 나란히 걷던 이인선 주임이 내 주머니를 눈짓했다. 나는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하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굳이 액정을 보지 않아도 발신자가 누구인지는 짐작이 갔다.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지 않은 나로선 이 시간에 전화할 이는 하나뿐이었다.


“해수야. 잘 지내?”


엄마는 마치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나는 아직 이 모양 이 꼴인 시궁창에 살고 있으니 너만 행복해선 안 된다는 듯 종종 지구에서 전파를 보냈다. 세상에 자식의 불행을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끔찍한 억측인 줄 알면서도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건 뇌를 거치지 않고 온 몸의 세포가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웠다. 아무리 긁어내려 해도 벗겨지지 않았다. 수챗구멍 사이사이 낀 찌꺼기와 같아서 고스란히 내 몫으로 안고 살아가야 했다.


“일은 안 힘들고?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단 몇 마디로 관자놀이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저 듣기엔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염려였다. 엄마와 딸이 통화하는 것이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꺼낼 때면 평소와 다른 기류가 감지됐다. 

처음 울리는 벨소리부터 요상하게 무거웠다. 조금 전에도 표면적인 안부 인사 속 묵직하게 깔린 공기를 잡아챈 참이었다. 누구나의 핸드폰마다 울리는 기본 벨소리가 엄장한 장송곡처럼 천지에 퍼지는 느낌. 목이 졸리는 기분으로 전화를 받을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꼭 그런, 숨이 막히는 서두를 꺼내곤 했다.


“너 엊그제가 월급날이었지, 해수야. 지금 얼마나 있어?”


그럼 그렇지.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다. 기실 거듭된 월례이니만큼 약간의 변주가 있긴 했다. 본론이 평소보다 빨리 튀어나왔다. 어지간한 체면 차릴 여유도 없을 만큼 급한 모양이었다.


“여유 있으면 좀 보내줄 수 있어? 나중에 다 갚을게. 엄마 알지? 아빠면 몰라도 엄마는 갚잖아.”

“저번에 보내준 건 어쩌고? 겨우 2주 전에 보내줬었잖아.”

“아휴, 그 코딱지 벌써 다 사라졌지.”

“삼백만원이 코딱지야?”

“숨 쉬는 콧구멍이 여간 크니 별 수 있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 거 알잖아. 엄마가 그걸 받아서 어디에 쓰겠니. 옷을 사 입니, 어디 놀러가길 하니. 다 그냥 고대로 빚 갚는 데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차라리 사치를 부려. 해외여행을 가던지 명품백을 사던지 하다못해 한 끼에 몇 십 만원 하는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그 양반 빚 갚아주지 말고. 그리고 나는 뭐, 그런 거 다 누리면서 모은 돈인 줄 알아?”


사정을 아는 만큼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따박따박 대꾸하자 엄마는 모든 걸 이해한다는 양 날 다독였다.


“그럼 그럼, 항상 미안하고 고맙지. 너 같은 딸 어디에도 없지. 엄마가 모르겠니. 주님께서도 참 공평해. 남편 복이 없으니 이렇게 자식 복을 주고.”


엄마는 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내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그 자애로운 행세에 나는 또 누그러졌다. 분분하던 마음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스르르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통화를 스피커 폰으로 돌려놓은 뒤 귀에서 핸드폰을 떼고 은행 어플을 실행했다. 빠르게 비밀번호를 터치하자 떠오른 화면. 그를 보는 순간 스피커폰을 통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멀어졌다.

돈은 있었다. 다만 묶인 돈이었다. 다음 달이면 만기인 적금이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좌절되고 딱 하나 남은 마지막 적금이었다. 사백 이십 삼만 팔 천원. 누군가에겐 코딱지일지라도 내겐 깎이고 깎여 남은 마지막 민둥산이었다. 더는 물러날 길 없이 지켜야만 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잠시 달콤한 회유에 젖어 물렁해 졌던 마음이 잔고를 확인하고 딴딴하게 굳었다. 나는 다시 귀에 핸드폰을 붙이고 에둘러 거절하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엄마는 돌연 태세를 바꿨다. 텁텁하고도 긴 한숨소리가 전파음을 타고 흘렀다. 미지근한 공기 덩어리에 불과한 숨이 이리도 날카롭게 뇌리를 후벼 팔 수도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나쁜 년, 그냥 좀 주면 안 돼? 너 능력 있잖아, 그럼 도와줄 수도 있는 거지. 엄마가 그 코 묻은 돈 때문에 이렇게 자식에게 빌어야겠어? 엄마 참 불쌍하게 만든다, 너.”


반 쯤은 장난을 섞어 내뱉은 말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나머지 반 쯤에 실린 진심이 두서없이 왔다 갔다 하던 내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이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내가 나쁜 사람인가?

입 안에 모래를 들이부은 듯 목구멍이 꺼끌거리고 입천장이 바짝 말라붙었다. 너무 뻑뻑해서 목덜미가 저릴 지경이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내 입은 폭발하듯 소리치고 있었다.


“그놈의 돈, 돈, 돈! 엄마, 나 적금 만기를 채워본 적이 없어. 엄마가 만기 한 달 전만 되면 귀신같이 빼가서! 일주일에 밥 한끼 사 먹는 것도 무서워서 회사에선 굶거나 편의점만 가. 거기서도 내 시야는 어찌나 옹졸한지 백 원이라도 더 싼 것 밖에 안 보이더라. 눈이 먼저 그런 데로만 가 붙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머리는 알아서 뭐가 가장 싼 지 그람 수마다 계산하고 있어. 내 몸을 쥐어짜면 라면국물 밖에 안 나올 것 같아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씨근덕대는 몸이 뜨거웠다. 눈자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이토록 화를 낸 건 근 몇 년 만이었다. 수능 원서를 썼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왜 좀 더 돈벌이가 좋은 과를 선택하지 않느냐, 바로 취직하기 쉬운 곳이 더 낫지 않냐, 즈그 애비를 똑 닮아 이기적인 년이라며 엄마가 다그쳤던 날 이후로 처음. 엄마의 경황한 기색이 핸드폰 너머로도 여실히 느껴졌다.


“알지, 당연히 다 알지. 아는데 빚이 워낙 많니…… 느이 아빠한텐 암만 물어봐도 기다리라고만 하니 원…….”

“엄마도 문제야. 왜 맨날 아빠가 하잔대로 다 하는데. 아빠가 일 벌리면 엄마가 처리해주는 기계야? 그 인간은 엄마한테 뭐 맡겨 놨어? 엄마가 낸 빚도 아니잖아.”

“우린 가족이잖아. 돕고 살아야지. 그 나이 먹고 자식도 꺼리는 인생인데 얼마나 짠하니. 불쌍히 여겨야지. 그래도 넌 거기 있으면 쉬고…… 휴우, 엄마는 아침부터 일해서 너무 힘들어. 아빠도 거들긴 하는데 나이 먹으니 사람이 점점 굼떠지고…….”


속이 또 한 번 뒤집혔다. 엄마도 버리고 넌 네 행성에서 잘 먹고 잘 살지, 소갈머리 없는 비아냥처럼만 들렸다. 그 시점에서 이미 내 머리는 정상적인 여과능력을 잃은 걸지도 몰랐다.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엄마. 휴대폰 액정에 엄마 이름이 뜨잖아? 받기가 싫어.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와.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할까 무서워 죽겠어. 날 보면 할 말이 돈 달란 말 밖에 없나 싶어. 자식새끼한테 여태 투자한 거 회수하는 사채업자 같애. 그냥 사는 것만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인생에 이자가 이렇게 비싸. 돈귀신이 붙어도 적당히 붙어야지, 아주 징글징글하다고.”

“미안해, 해수야.”

“내가 뭐 대단한 거 바랬어? 내 인생에 도움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걸림돌은 되지 말아야지.”


분명 내 두 다리는 땅을 딛고 서있는데. 시야가 빙그르르 돌았다. 아마 내가 돌아버린 것일 테다. 온 몸에 열이 오르고 불이 붙었다. 나는 온 몸으로 저항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삶까지 나한테 떠넘기려고 하지 마. 나는 엄마랑 달라. 우린 하나가 아니라고.”

“해-”

“나는 죽어도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


빠르게 심지를 태워가던 도화선의 끝은 내가 던진 창으로 끝이 났다. 꼿꼿하게 벼려진 그 날은 엄마의 심장을 제대로 관통한 듯 보였다.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내게서 나오는 거친 호흡소리만이 엄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결코 보일리가 없는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자책과 죄책으로 얼룩진,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엄마의 목소리가 간신히 들렸다. 엄마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연거푸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저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빙빙 돌던 땅이 차츰 속도를 줄이다 완전히 멈췄다. 그 고요한 대지 위에 서서  꺼진 화면만 한참이나 뚫어져라 바라봤다. 엄마라는 두 글자가 다시 빤짝 떠오르길 바랐다. 그런 주제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 용기는 또 없었다. 비겁한 소시민이 끝내 영웅으로 각성하는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잘못한 건 없는데,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눈물이 자꾸만 비집고 나와 맺혔다. 이대로 눈을 깜박이면 정말 흘러버릴 것 같아서 꿋꿋이 힘을 주고 버텼다. 이까짓 일로 볼썽사납게 우는 사람이 되는 건 싫었다. 때마침 간지러운 봄바람이 콧등을 스쳐 괜스레 알레르기 탓을 했다. 후두두 비처럼 떨어진 꽃잎이 발끝에 채이도록 쌓였다. 돈도 이렇게 쌓이면 좋으련만.

돈이 없으면 궁티만 대물림 되는 게 아니다. 감정도 대물림 된다. 아빠가 낸 역정이 엄마에게, 엄마의 지친 짜증이 나에게. 서로 소화시키지 못한 찌꺼기만 돌고도는 이 고인 웅덩이에선 늘 악취가 났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바람 속을 걸으면서도 내게서 풍기는 악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부터 켜켜이 쌓인 냄새였다. 나는 엄마에게 바라는 게 없는데, 엄마는 내게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서 질식하는 냄새였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한 아빠 자리에 나는 대신 밀어 넣어졌다. 그런 자리에 앉혀지다 보면 상대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실망스러운 눈빛과 뺨을 벌겋게 물들인 채 눈물짓는 엄마의 얼굴이 말하곤 했다.


왜 그것 밖에 못하는 거야. 너에게 들인 돈이 얼만데. 네게 붙인 과외가 한 달에 얼만데. 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잖아. 키워준 값은 해야 될 거 아냐. 그런데 왜 그래, 왜 그렇게 자꾸 실망시켜……!


나는 신도 아닌데 엄마의 속마음이 자꾸만 들렸다. 바란 적 없는 능력은 옴싹달싹 못하게 내 목덜미를 틀어쥐고선 죽어라 숨통을 옥죄였다. 덕분에 내가 듣고 보는 모든 것들엔 가치가 매겨졌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주판 위에 올려 머릿속에서 쉼없이 알을 굴렸다.

그렇게 내 키가 엄마와 비슷해질 즈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만, 정말 엄마를 웃게 만들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엄마가 투자한 미래의 내가 벌어올 돈이라고. 아직은 시험점수와 등급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돈의 그림자를 그때부터 진절머리 나도록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돈은 엄마고 엄마가 돈이었다. 미치도록 사랑하고 증오했다.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얹은 저울이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 서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우는 곳으로 오가느라 혼이 쏙 빠지곤 했다.

내 모습은 꼭 완성 직전 마지막 단계에 물감이 철퍽 튄 그림이나 힘이 잘못 들어가 주둥이가 비뚤어진 도자기 점토처럼 보였다. 나는 너무 잘 만드려다 망쳐버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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