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따뜻' 한 스푼] 사람을 살리는 말 한 마디
결혼 후 2년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았던 때,
좋은 소식 없냐는 말 듣는 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인 줄 알면서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으니
신경쓸 필요없다는 위로도 귓가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 달엔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가
아닌 것을 막 확인한 후여서 더욱 그랬다.
희망에 매달려있던 마음을 끊어내기 어려웠다.
여자에게 좋다는 매생이 굴국을 앞에 두고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입맛 없는 것 알지만 한 술 뜨라는 말에도
괜스레 반항심 비슷한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다.
매생이 그 특유의 식감도 썩 반갑지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시가 입가에 맴돌았다.
남도의 해안에서 왔다는
맑은 국물도 아니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해야 하나? 숙취의 입술에 닿는 이 끈적이는 서러움의 정체를 바다의 키스라고 해야 하나? 뜨거운 울음이라고 해야 하나?
- 안도현 '매생이국'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다시피 했다.
오늘만은 그만 생각해도 되었을 것을, 나도 모르게 또 임신과 관련된 단어들을 검색창에 입력하고 있었다. 큰 기대감 없이 한 산부인과 전문의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러다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검사해도 임신 실패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난임 부부들에게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현대의학으로는 도와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요즘엔 ‘현대의학으로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건 두 분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이다. 불안해하지 말고 더 노력해보자. 틀림없이 임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 바꾸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되고, 많은 부부가 임신에 성공하지요.”
그 말 한마디에 울적했던 마음이 흩어졌다.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 끝까지 덮고 기도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뱃 속의 아기를 기다리는 의식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그리 머지않아,
반가운 소식은 자연히 우리를 찾아왔다.
또한 놀랍게도 이 인터뷰를 한 분을 직접 만났고
나와 아기의 주치의가 되셨다.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우리가 살고있던 곳에서 아주 먼 병원에 계신 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날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좋아하는 책의 대목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을 그냥 ‘가로수길’이라고 불러선 안 돼요. 그런 이름은 아무런 뜻도 없으니까요. 음, 이렇게 부르는 게 좋겠어요. 새하얀 기쁨의 길.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는 멋진 이름 같지 않아요? 전 장소나 사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상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붙이고 그렇게 생각하곤 해요.”
새하얀 기쁨의 길
그 날 그 분이 내 마음에 남긴 말의 모양을
만약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꼭 그런 것 아니었을까.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는 아기의 말랑탱글 볼에 뽀뽀할 때다.
그것도 아기 아빠랑 합작으로 양쪽에서 동시에.
백도 복숭아같은 고 뽀얀 볼을 뾱 소리내며
먹는 시늉을 하면 아이는 해말간 웃음을 선물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말 한 마디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희망에까지
이렇게 우리를 데려다준다.
백다은
<고독한 미식가> 뺨치는 글로컬 동네맛집 탐방가에, <천사들의 합창> 시릴로의 순애보를 응원하고, <순풍 산부인과> 정배의 순수함이 늘 보고싶고 그리워 태교까지 순풍으로 했다. <브레드 이발소> 빵 한 조각과 우유에 담은 상상력을 사랑하며, <찰리브라운> 별볼일 없는 찌질한 캐릭터가 언젠가 빛을 보는 뻔해보이는 클리셰도 좋아하고, <노다메 칸타빌레> 엉뚱한 노다메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타인의 지층들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조조영화, 돌체라떼 한 잔, 아삭한 사과 한 입에 아침이 기다려지는 소시민.
무의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달달’ ‘낭만’ ‘상상’ ‘열정’ ‘감동’ ‘엉뚱’ '따뜻'
한 스푼을 더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