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사상,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상상이 필요해
스물다섯, 작은 교실 한 칸에서 세상과 무한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설레었습니다. 아이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그려갈 수 있기에 세상에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거라고, 그 어떤 화려한 스펙의 고연봉 직업도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교사 10년차, 어느날부턴가 기쁨과 보람이 채워지기보다는 하루하루 소진되어가는 기분이 들 때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국회의원 공문 앞에 꼼짝없이 무력해질 때. 왜 교육 전문가인 교사가 매해 이런 의미없는 통계조사에 희생되어야 하는지, 그 자료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수업 외에는 교사가 그것을 행해야 할 법적 근거도 없음에도, 당장 수업을 뒷전으로 미루고서라도 기한에 맞춰 그것 먼저 제출하라는 무능한 관리자의 수업 중 독촉 전화에 질문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질문이 있는 교실'을 표방하는 학교의 민낯입니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과후 교실을 비워주느라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닐 때. 다음 날 수업준비나 연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방과후 학교 뿐 아니라 학폭, 돌봄, 청소년단체 등은 모두 학교 밖으로 이관되어야 할 성격의 업무들입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담당해야 할 책임마저 학교가 온통 다 떠맡고 있다보니, 이 곳이 법정인지, 보육기관인지, 사교육 업체인지, 청소년 단체 활동캠프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학교는 이미 과부하 상태입니다. 참여학생 수강 등록 및 취소, 참여비 관리 등 자질구레한 행정적인 업무에다가 그 시간을 담당하지 않은 담임교사가 안전사고까지 다 책임지라니.. 퇴근하고 나서도 그 전화를 받노라면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본연의 업무인 정규 교육활동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권한은 하나도 없으면서 무한책임만 지우는 이 참혹한 현장을 아는 사람은 교사들밖에 없지만, 목소리를 낼 길은 막혀있습니다.
교사들이 바뀌어야 한다며 참교육을 외치는 사회의 그 어느 훌륭한 구성원이라도, 딱 1년만 대한민국의 학교라는 곳에 교사 신분으로 몸 담으면, 개인의 힘으로는 결코 극복해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선생님, 수업만 열심히 하지 말고, 행정을 좀 빨리빨리 처리해주세요." 교육지원을 해 주어야 할 행정팀이 갑이 되어 수업 시간에 메세지를 보낼 때. 그것을 민원없이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것이 교사의 능력(?)인 것처럼 주객이 전도된 현장이 각 반별로 무한 반복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추후 ▶ '초등교사가 대체 왜, 무슨 행정을 하는데?'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퇴근 후 밤늦게도 학부모 전화는 끊이지 않지만, 그 노고를 알아주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만 같습니다. 방과후, 돌봄교실 외부강사가 책임져야 할일들과 안전사고 뒷수습, 안전공제회까지.. 담임교사의 몫으로 다 돌아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학교에 대한 기사와 댓글이라도 본 날에는 힘이 쭉 빠집니다. 전국민이 준 교육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의 기억을 기반으로 학교교육을 부정하고,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경험을 일반화하여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촌지가 대체 언제적 이야기며, 왜 지금 젊은 교사들이 그 오명을 다 뒤집어쓰고 있나 억울한 마음마저 들 때가 많습니다.
한 초임 교사가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이야기해보라는 한 교장님의 말씀에 용기내어 학급운영에 대한 상담을 신청했더니 돌아온 답변이 이러했답니다.
"자기가 아직 결혼도 안 하고, 나이가 어려서 학부모들이 만만하게 보는 거야."
"내가 담임이었을 때, (...) 나의 부주의로 이런 저런 학급 사건들이 생겨 나 짤릴 뻔 했잖아."
"요즘 젊은 교사들은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열심히 하는데도 참 불쌍해."
이런 일화들만 한참 듣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참담한 심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교사 시절 수업 전문가가 아니었던 관리자로부터 기승전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 교무회의 때마다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훈계를 들어야 하는 고통은 내부의 이야기이기에 인터넷 댓글보다 더 뼈아픕니다. 수업이 끝난 후 녹초가 된 몸을 겨우 이끌고 교무회의에서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각자 동상이몽에 빠져있습니다.
미래교육 정책 토론회에도 국회의원, 대학교수, 외부인들이 교육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자랑스레 참여하여 지금의 학교를 온통 부정하며, 교육의 이상향을 논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만 오고 갑니다. 정작 교육을 말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그 본질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들로 씨름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혁신과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 순간에도 아이들과 교실에서 평범하지만 위대한 일상을 묵묵히 보내고 있습니다.
‘몬스터 페어런트 Monster parents (교사에 대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요구를 하는 이기적인 보호자)'의 등장으로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기 아이만을 지도해줄 교사를 붙여달라든지, 자녀를 학교 대표로 해 달라든지, 아이가 학원 시간에 늦지 않게 학급활동에 지나치게 참견한다든지, 학교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하라고 요구한다든지, 다음 학년 교사 선택권 특혜를 달라든지, 교사에게 사적인 친분을 기대하며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연락한다든지, 아이가 친구와의 다툼으로 가족은 모두 힘든데, 교사는 잠이 오냐며 새벽에 연락을 취한 사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학급에 한 학부모라도 이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수업이나 교재를 준비하고 지도할 시간을 빼앗기며, 개인의 사생활도 침해받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관리자로 인해 교원의 업무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무한반복 도돌이표같은 현재 진행형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씁니다.
그 누구보다 젊고 열정적이던 또래 교사 친구들이 모이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해도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전통적 관점에서 좋은 교사란 학급을 민원없이 잘 관리하고, 교과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행정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교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학교라는 조직 내에선 그 하나의 정답만이 유효하다는 것이죠.
현행 법령과 교원정책은 표면적으로는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인정하지만, 현장에서의 교사는 각종 법령이나 정책,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따라 주어진 일을 반복적으로 이행하는 기능인에 불과합니다. 물론 교실 안에서 자신의 교육적 판단에 따라 주어진 교육과정을 이행한다는 점에서 전문성과 자율성이 인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학교에서는 필요로 하는 단순 반복적 업무를 문제없이 처리하고 알아서 학급일을 조용하게 민원없이 처리하는 교사들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교 안에서조차 교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가장 명확한 근거는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시도들, 대표적으로 각종 교사연수, 교원능력개발평가, 외부 학교 컨설팅 같은 졸속 정책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각 교사와 학교에 부족한 결핍 사항을 평가해 이를 압력을 가해 보완하려는 자체가 교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 자체로 비교육적 조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한 아이의 가능성이 시험지 한 장에 다 나타날 수 없듯이, 교사가 수행해야 할 역할과 능력을 지표 중심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습니다. 각 학교나 지역지원청은 당장 연수 했다는 실적 내기에만 바쁜 가운데, 정작 그 안에서 날개가 꺾인 의욕 넘치던 교사들조차 교육에 대한 열정을 잃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교육을 지원해야 할 행정실, 관리자, 교육부, 교육지원청, 정치권력, 교육행정권력,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평가는 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교사들도 그들이 교육지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들에게 부족한 소양 교육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게 하고, 수많은 요구 사업들과 이와 관련된 지시협조 공문 등 교사의 본 업무가 아닌 것들을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교원업무 정상화를 하루 속히 정착시켜야 할 것입니다. 교육부-지역교육청-학교, 상명하달식의 방식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관료화된 통제는 교사 개인이 해야 할 일을 책임지움으로써, 교육활동에 전념할 없게 만들 뿐 아니라 구성원들간의 갈등만 부추길 뿐입니다. 직접 10년간 현장에서 부딪혀본 결과, 교육을 힘들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까지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권력과 교육행정권력이 이를 묵인하는 한, 교육의 미래는 없습니다.
교사들은 인성교육진흥법 같은 갖가지 법들의 요구대로 인성교육도 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학생자치활동과 동아리활동도 지도하며, 각종 계기교육과 집합연수에, 학폭위에, 공문 압박까지 받는 매일매일의 악조건 속에서 초인적으로 직무를 완수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편한 직업으로 공교육을 부실하게 만든 무책임한 자들이라는 오명까지 씌어져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학원 강사와 강제 경쟁 당하기까지 합니다.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통념도 실은 대중의 이중적인 판단 잣대가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학교에서 교사가 했으면 주입식 암기교육이라 폄하했을 것도, 사교육에서 하면 시험 잘 보는 꿀팁을 알려주어 고마운 유능한 교육자로 둔갑되고, 이후 18억 연봉을 뒤로 한 채 남은 생은 교육개혁에 앞장선다고 하면 대중은 헌신적인 교사보다 그에게 더 주목하고 열광할 테니까요.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입시 양성소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에는 사실 중요한 오류가 있습니다. 다른 교육의 주체들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인데요. 교사의 전문성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해야 했던 교실에서는 그 말이 통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표준화된 시험을 치뤄내야 하기에 반별로 큰 격차가 나지 않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이들, 학교 구성원,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그려가야 할 미래학교에서는, 더 이상 교사의 전문성은 홀로 형성해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권 또한 주어진 개념이 아닙니다. 교사들이 잃어버린 신뢰부터 회복하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그 또한 교사 혼자의 힘으로만 형성해갈 수가 없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시에서 2013년 발생한 한 교사의 해고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 중학교의 학교 식당에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던 한 학생을 강제적으로 식당에서 끌어낸 교사가 헬싱키시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해고되었는데, 학생의 권리만이 강조되고 존중되었던 사건이기에 이 교사의 해고는 사회의 많은 반향을 일으켰으며 교권 회복과 이 교사의 해직 번복 청원에 모두 15만 명이나 서명하였습니다. 수많은 교사와 일반 시민의 청원에 힘입어 결국 교사는 복직이 되었고, 이후 교권을 강화하는 개정 교육법이 실행되며 교권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핀란드 대통령은 “교사를 도와주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기도 했으며, 교사의 교권 회복을 위해 모두가 앞장서고 있는 가운데, 교총 OAJ는교권을 침해당한 경우 관계 당국에 신고하라고 내부 지침을 내렸으며, 교사를 모욕한 사건이 법원에까지 상정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이보영(핀란드통신원))
교사의 전문성은 주어진 선험적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헤게모니적 갈등에 의해 구성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손준종, 2010, 교사 전문성 담론의 성격 분석. 교육 정치학연구, 17(4), 91-119)
교직사회 내 수업의 전문성에 대한 동상이몽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간 각 교과별로 가장 핫한 아이템을 중심으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ㅇㅇ 교육에 특화된 수업방식이나 기술을 전하는 교사가 교사들을 교육하는 전문가 역할을 해 왔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 산물인만큼 도움도 많이 되고 자극도 받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습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이렇게 외부의 자극만이 아닌, 자신만의 스토리에서 출발할 수 있게끔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지원해주면 좋겠다고요.
언젠가 학교 발전을 위해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 방법을 고민하시는 한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말씀을 듣다보니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더군다나 해야할 일이 많은 초등교사는 그러기가 더 쉽지 않은데.. 왜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만 하시지?'
그도 그럴것이 무용 잘하는 교사, 컴퓨터를 잘 다루는 교사, 독서교육 자격증을 가진 교사, 생활지도로 아이들을 휘어잡는 교사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교사들의 재능과 기술만을 판단 잣대로 삼으면, 누군가에게 그것은 결핍요소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모두를 다 갖춘 사람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만나본 무림의 고수 선생님들은 특정한 ㅇㅇㅇ 교육 안에만 갇히지 않고, 매일 조용히 배움을 실천하고 삶으로 증명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교사의 이름 그 자체가 이미 교육과정입니다. 교사가 자신만의 철학을 다져가는 가운데, 교육계 안팎에서 얻은 인사이트로 새로운 방법론을 접목해가며 그 교육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새롭게 써나갈 수 있도록 교사들의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이제는 바뀌었으면 합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이 목적이 아니라면, 수십년 전 학창시절의 경험에 대입하거나, 특별한 경험을 일반화하여 모든 교사들을 평가하려는 시선을 거두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공교육 회복의 시작은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10년간 만나본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아이의 진심이 담긴 편지, 알림장이나 문자 메세지를 통한 학부모의 감사 표현에 보람과 긍지를 얻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교사의 전문성을 묻는 초임 교사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변들이 달렸습니다. 교육 전문가라 스스로 이름붙인 이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경험에서 우러난 살아있는 지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ID : 인*
전문성이란게 몇년간의 이수과정을 거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인정받는거라(자의든 타의든) 생각합니다. 의사나 검사는 전문직으로 인정받되 교사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가르치는게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인식되기때문 아닐까요?
교실의 담임말고도 방과후 강사, 학원강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교사만의 특별한 일을(그것이 가르치는 것이라 하면 더더욱) 인정받기는 어렵죠. 뭔가 다른 사람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못하는 특기를 길러야지만 전문성이 있다고 인정받는 풍토가 아쉽네요.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전인적 성장을 얘기하면서 소아과 의사와 비교하는 분도 계시지만 의사는 아무나 못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기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어요.
ID : 세*짱
-아침에 눈빛만 봐도 아 쟤 뭔 일 있구나
- 쉬는시간 5분만 봐도 아 얘네들 판도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 밥 먹는데 숟가락만 봐도 쟤 아프구만
- 얘네들은 요렇게 키워야하니 요렇게 해야하는구나
등등요~ 저 전문가 맞아요~ 뻥 좀 보태서 아이들 손가락만 봐도 뭘 해야할 지 알아요 ㅋㅋ
교사전문성은 지식만이 아니에요. 중등교사가 한 교과만 가르쳐서 전문성이면, 물리는 물리학자가 사회는 사회학자가 가르쳐야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교사에겐 중요하죠.
교육학자라는 사람들이 물리학자가 아닌 이유죠
물론 모든 집단에는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있죠. 그렇다고 우리가 전문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직업에는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초등도 각 과목 전문가들이 계시답니다. 수학하면 저분 과학하면 저분 생활지도 저분 전문성은 각 개인이 만들어나가기 나름이에요.
ID : 199*
저또한 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의기소침한 시기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지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비로소 초등교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25년 경력의 큰아이 일학년 담임선생님은 제 아이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고계셨으며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일들에 대해서도 거의 빈틈없이 파악하고계셨습니다. 아이들 교과지도는 혀를 내두를정도로 완벽하고 1학년 아이들의 발달상황에 최적화된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계셨고 아이와 학부모와 소통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전문가셨습니다.
흔히들 의사가 전문직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 만난 수많은 의사중에는 청진조차 제대로 못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모두들 기계에 의존할 뿐이었지요. 직업의 종류를 떠나 전문직이라하면 그 분야에 충분한 이론적 지식을 갖고, 이론 못지않은 충분한 경험치를 갖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위해 계속 배워가고 배운것을 현장에서 적용해가며 초등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워가는것이 교직에 있는 동안 내내 교사가 해야할 일일것입니다.
교대를 나와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용교시에 붙어 임용이 되었다고 전문직이 되는것은 아니라 내 스스로 만족할만한 전문성은 스스로 채워가야겠지요. 특정교과지도에 특별한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는것도 좋은 방법일것이구요.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보시자구요. 저도 아직 갈길이 머네요.
ID : 波浪
저는 30대 중반 교사입니다. 전문성이 오랜 기간 동안의 숙련이 필요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전문성은 누군가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우리의 전문성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신체적,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누구보다 효과적이고 의미 있게 전달해 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부단한 자기발전과 자기성찰에의 노력을 통해 획득한 경험과 통찰력의 집합체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산업시대의 교육과 그 전문성이 이전 세대의 지식과 인생관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내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과거의 가치있는 전통과 미래사회의 변화를 연결시키는 다리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현시대의 교사들에게는 지금 세대의 학생들의 특성에 맞게 의미있는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정책과 관련된 학과의 박사과정 수료를 작년에 마쳤습니다. 뮤지컬 배우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개인 레슨을 받고 있으며, 중창단과 합창단에 들어가 정기적으로 공연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동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연극수업에 참여하여 아트센터에서 마당극 공연을 올렸었구요, 학교에 근무하시는 운동부 코치분들께, 체대생에게, 전직 청소년 국가대표 축구감독님을 따라다니면서 축구기술을 배워 올해에는 지역 대회에서 우승도 했습니다. 이 모든 활동들은 저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들과 배운 점들, 노력할 수 있는 용기들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당장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는 없지만,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된다면 저의 전문성이 그것으로 간접적으로나마 검증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지금 시대의 교사인 우리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오랜 시간이 지나 학생들이 성인이 된 후 자신들의 초등학교 시절 교육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스스로 또는 사회적으로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수업에서 어떻게 가르치는 지를 학생들은 기억하고 또 평가합니다. 그 평가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저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
ID : 감자도*
저도 처음 교단에 들어왔을 때 중등처럼 한 분야에 대한전문성에 목말랐었는데 요즘에는 좀 바뀐것 같아요. 이제는 자기 반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담임' 이라는 특성에서 초등교육의 전문성을 찾고 싶어요. 교사가 모든 과목을 다 잘 가르치기는 불가능하잖아요. 그래도 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긴 만큼 아이들의 특성은 중등 교사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모둠활동을 할 때 아이의 특성, 능력, 성격을 고려해서 모둠구성을 만든다던가, 학생이 체육을 잘 한다면 체육시간만큼은 그 아이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 학교의 시간과 공간을 재구조화한다면?
'배움의 공동체'로 널리 알려진 도쿄대 사토마나부 교수는 교육과정Curriculum 은 교무실에서 목표나 계획의 일람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실의 일상 속에서 나날이 창조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CV는 이력서를 뜻하는 말로, 라틴어 Curriculum Vitae의 줄임말입니다. '개인의 인생사'를 의미합니다. 어떤 경험과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꾸려왔는지 보여주기에 배움의 이력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일상 속에서 나날이 창조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학생의 과거, 현재, 미래의 Curriculum Vitae (CV)를 떠올려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 배움의 이력을 그려나가는 데에는 학교의 시간과 공간이 재구조화되는 상상이 필요합니다. 배움은 비단 학교 안에서만, 수업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교사상은 교육과정과 인간발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의 교육경험을 함께 디자인하고, 배움의 이력에 대한 조언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물론 결정은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지만요.
필요하다면, 이 과정에서 학생은 여러 명의 교사와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고, 교사들은 학생들 간의 협업을 도와줄 수 있는 형태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가에 있어서도 ‘진정한 성장을 위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이 흐른 후 학생 스스로 평가, 반성하고, 이후의 배움을 함께 디자인해가는 안을 더해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중심평가의 취지는 좋지만 자칫 가시적으로 증명 가능한 교육에만 치우칠 수 있어서입니다.
학생 생활지도 면에서도 더 세분화, 전문화된 교사상을 그려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미 한 학교 안에도 놀이교육 전문가, 심리학 석박사 출신, 동화작가, 음악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교사들이 있습니다. 학교의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획일적인 틀로만 묶어놓지 않는다면, 훨씬 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어린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직업적 특수성이 있다보니, 하나의 시간대에 해야할 일들이 쌓여있으면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들에 대응하기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그간 한 사람의 담임교사에게 너무 많은 무게를 지우고 있었습니다. 한 교실에만 갇혀 꽉 짜여진 교과 시간표와 잡다한 업무 속에서 숨막힐만큼 책임져야 할 일들만 쌓여있다보니,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닫혀 있었습니다.
대안적 관점에서 교사의 수업 전문성을 제시하는 연구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반성적 실천가, 교육과정의 재구성자, 내러티브 탐구의 주체, 연계적 전문가로 제시된 안이었습니다.
앞서 제시한 것처럼 여러 명의 교사와 해당 분야 전문가가 학생의 교육경험을 함께 디자인해갈 수 있는 수준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지금과 같은 담임제를 운영하되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교사의 이름 그 자체가 이미 교육과정임을 존중하고, 전폭적인 지원과 신뢰를 보내며 일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구요.
교실에서 무탈한 하루하루를 기도해야 할만큼 변화무쌍한 현장에서 숨가쁘게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면서, 숨죽여 울고 있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수업에만 집중해도 부족할 시간에 정보공시, 학생 체육복 사이즈, 공문 기안, 방과후학교 수강생 명단 및 수강료 관련 문의 따위를 요청하는 ASAP 메신저에 손발을 다 묶어놓고, 교권 침해에도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관리자와 일부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 등의 극한 현실이 교사들을 번아웃 상태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은 교사 전문성 신장이나 교사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야할 것입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해마다 항상 신입생 경쟁률이 5:1이 넘고, 추첨에 떨어지면 아이도 학부모도 울고 돌아갈 정도로 인기가 많은 전통깊은 초등학교입니다. 학교 특색교육이 내외부적으로 좋은 평을 얻은 이유도 있겠지만, 오래 시간 관찰해본 결과 그 비결은 거창한 데 있지 않았습니다. 10-20년 이상의 경력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하지만 한결같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들 덕분이었고, 이것은 전국 곳곳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교사의 희생과 헌신만으로 교실을 이끌고 가기에는 급변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상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사를 꿈꾸는 누군가가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은 교실 한 칸에서 세상과 무한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설렙니다. 아이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그려갈 수 있기에 세상에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거라고, 그 어떤 화려한 스펙의 고연봉 직업도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추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자료도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