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 시나리오 1~6, 우리의 선택은?
'지금의 학교 교육으로는 미래의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 '교실과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교권의 추락은 결국 모두의 희망을 잃게 할 것이다.' '입시가 없어지지 않는 한, 교육을 살릴 백약은 무효하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 말하면서도 여전히 해묵은 교육 위기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십년째 각자의 입장에서 소모적인 논쟁만 이어지고 있을 뿐, 이제는 이 문제의식마저도 상투적이고 지겨워질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학창시절 좋은 추억도 많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만날 수 있었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학교라는 제도에 대한 17살 여고생이었던 제 감정은 -낡은 일기장 속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회색빛 콘크리트 속 죽어있는 꿈의 유예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학구열이 세다는 지역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경쟁이 극심한 학교에서 겉으로는 모범생이었고 학급회장, 학생회 임원이었음에도 이런 의문들을 매일같이 수없이 마음에 품었습니다.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까', '유학갈까', '효율성 면만 보자면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을 빨리하는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 '제도권을 벗어나 용기를 감행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학창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학교에 대한 날선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이들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 저에게 교사로 살아본 10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저 역시 그저 학교의 모든 것을 비난하는 가장 편한 입장을 선택지로 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교사 10년차,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는 학교 교육에 대해 마치 애증과도 같은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심지어 교사이면서도 학교에 대한 안타까움과 속상함에 최근까지도 그 미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경멸하고 미워하던 대상조차 시간이 흘러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 측은하면서 동시에 마음 아프고 애틋한 마음마저 품게되는 복합적인 감정같은 것이오. 그래서인지 그 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의외의 이쁜 구석, 순기능마저 재발견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금 많이 보게된 건, 그나마 입시에서 자유롭고, 비교적 다양한 교육적 시도가 가능한 초등학교 교사였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교육과 교사의 역할을 재정립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 지향적인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입니다. 학교 안팎의 목소리를 균형있게 들어보고, 학교 밖에서 대안을 말하는 이들 또한 어떤 이야기를 하나, 그 과정과 결과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어떤 선택지를 향해가는 것이 좋을지 탐색해보는 의미에서 현재까지 제가 공부하고 정리한 생각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학교 교육제도를 재판하자?
미국 힙합 가수이자 시인인 프라이스 이(Price Ea)는 '100년된 학교제도를 재판합니다.'라는 영상에서 교육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현재와 150년 전의 자동차와 전화기를 비교하면서 이만큼의 시대적 혁신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시대에 맞지 않는 표준화된 교육을 강요하고 있기에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영상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학교교육 제도는 유럽에서 근대국가 성립과 산업혁명을 계기로 생겨났습니다. 학교에서는 소수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들에게 표준화된 지식을 교실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했습니다. 효율적인 학교 운영을 관리하기 위해 관료적인 행정 체제 또한 도입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 제도는 시민혁명 이후 모든 이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신장시키는 핵심기제였으며, 전통적인 신분질서가 붕괴된 뒤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의 합리적 통로로 기능했습니다. ('미래교육, 교사가 디자인하다.' Chapter 11)
하지만 학교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비판은 이미 서구에서는 1960년대말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대규모의 획일화된 공교육은 더 이상 개인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고, 학생들의 저조한 학업 성취도와 학교 부적응 및 중도 포기 현상들이 자주 목격되면서 국가의 교육 실패에 대한 대안 탐색이 요구되었습니다.
당시 비판들은 주로 학교가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재생산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거나, 학교에서 다루는 지식이 학생들의 학교 밖 삶과 유리되어 있다거나, 학교를 다녀야만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지금의 상황에 대입해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이니 대중의 시각에서 학교 교육을 재판해야 한다는 유튜브 영상이 크게 회자되었던 현상도 이해가 됩니다.
영상 속에서 학교를 '아이들을 갈아서 소시지로 만들어버리는 그라인더'로 묘사하는 알란 파커 감독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은 교육 뿐 아니라 국민의 사상과 자유를 통제하는 모든 제도에 항거하는 노래로, 미국의 빌보드 1위는 물론, 영국, 서독 등 많은 나라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언론과 학부모들의 질타를 받는가하면, 몇몇 국가들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될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학교 교육의 전형적인 획일화를 보여주기 위해 연출한 아이들이 앵무새처럼 입을 모아 합창하는 장면은 이 곡의 메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We don't need no education
우린 이런 교육은 필요 없어.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는 생각을 조종당하고 싶지 않아.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교실에서 비꼬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Teachers, leave them kids alone
선생님들, 아이들을 그냥 두세요.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결국 그건 벽 속의 또 다른 벽에 지나지 않아.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당신들도 벽 속의 또 다른 벽에 지나지 않아.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론이 등장하면서 교육에서 국가의 관리와 통제가 아닌, 개인의 자율과 경쟁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신자유주의자와 신공공관리론자들은 '공교육의 실패가 국가의 독점적 지위와 역할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이 대안으로 경쟁과 효율 중심의 시장 기능 활성화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학교가 민중을 위한 제도임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교사이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인 권재원 작가는 '학교를 무작정 재판하는 사람들을 재판한다' 라는 제목의 글에서 영상 속 핑크 플로이드의 이 오래된 MV 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낡은 학교체제가 참으로 지독하게도 안바뀌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를 비판하는 논리 자체도 이제는 너무 식상하고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뜻도 담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학교를 뛰쳐나간 아이들의 훗날을 극현실주의적 상상실험으로 기술합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은 계속 이어진다. 그 장면은 학생들이 교과서를 찢어 던지고, 교사를 쫓아내고, 학교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럼 이제 여기서 상상실험을 해 보자. 교과서를 찢고 학교를 불지른 뒤 환성을 지르며 달려나간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적성과 개성을 살려 학교에서 하지 못했던 가치있는 활동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러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대부분은 그냥 뛰어 놀것이며, 대중문화에 포획되어 버릴 것이며, 교사가 사라진 권력의 공백을 주먹이 센 아이들, 혹은 폭력배와 연결된 아이들이 차지하면서 정글의 법칙에 사로잡히고 말것이다.
암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꿈과 끼를 가진 학생들은 아름답지만, 적어도 교육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꿈과 끼가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과 경험적 증거를 따라야 한다. 실제로 수많은 연구결과들은 학생들이 결코 자기들이 하고싶은 것, 잘 할수 있는 것을 스스로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시절의 환경, 부모 등 자주 만나는 어른들의 역할모델,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뛰어 놀아야 한다라는 낭만적인 교육관을 피력하는 인사들도 있지만, 현실은 그것과 딴판인 것이다. 그런 말을 한 인사들 역시 자기 자녀가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교육을 시키거나 특목고를 보내거나 조기유학을 보냈을수도 있다.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게 인간의 숙명이다. 복잡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역량과 지식은 신나게 뛰어놀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 하면서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학교를 완전히 해체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의 이유와 배경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기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학교를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가장 편한 선택지라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복합적인 문제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하나의 해법만으로 풀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자칫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익집단이 학교를 수익모델로 삼는 판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한데, 현재의 학교가 이미 그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기에 앞선 글에서 그 폐해와 교사들의 고충을 전문성과 관련지어 우선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락회(퇴직교장단체)의 수익사업으로 설계된 인성교육법, 형법전공 교수가 만든 학폭법으로 인한 잦은 소송으로 교육적 회복은 사라지고 상처만 남은 황폐해진 학교, 교육 전공자도 아닌 이들을 위해 매뉴얼화되어 제공되는 교육상품이 나열된 방과후 프로그램 등이 그것입니다.
이밖에도 정보통신, 양성평등, 통일, 노동, 영양, 보건, 진로, 독도 등 다양한 이익집단의 일회성 프로그램 및 교사연수 등 학교를 수익모델로 삼는 프로그램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양질의 교육 컨텐츠도 있지만, 그것을 선별하는 주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학교와 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공교육 실패의 대안처럼 떠올랐던 알트스쿨(ALT SCHOOL)의 시도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형 맞춤학습, #학생의 흥미와 특성에 따른 학습자 중심의 커리큘럼, # 무학년제, #시험없는 학교 #BYOD(Bring Your Own Device), 이 5가지 미래교육 지향의 키워드를 모두 구현하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를 비롯하여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했고 국내외에 큰 화제를 모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기니피그'였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일반학교로 다시 전학가는사례가 많아졌고, 끝내 폐교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이익집단이 학교를 수익모델로 삼는 판이 될 때의 위험성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후에도 자신들이 개발한 시스템을 판매,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교육사적 고찰을 거쳐 각 나라별 사회적 맥락을 모두 고려하여 적어도 이 질문들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올바른 정책수립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 교육이 과연 민간 시간경쟁에 의해 제공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 교육은 국방 등과 같이 국가로부터 직접 제공되는 공공재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은가?
-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과 경쟁이 일어나도록 두면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나?
- 교육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개인에게만 돌아가는가, 사회적 수익이 있다면 무엇인가?
- 교육에 있어 국가나 시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 교육에 있어 시장의 경쟁과 효율은 과연 효과적인가?
- 이해단체들의 이권 추구는 누가, 어떻게 판단하고 제재할 것인가?
- 바람직한 교육개혁을 위한 평가의 가치 준거로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 사회계층간 교육 격차 심화 등 사회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 교육의 목표는 민주 시민의 양성인가, 개별 자아실현의 완성까지 책임지는 것인가?
- 학교교육이 반드시 피교육자의 미래 시장 가치를 높이는 것에 천착해야 하는가?
- 근대 학교제도는 나쁘기만 한 걸까? 지금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는 없는가?
실제로 근대학교제도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가능성을 확장시켜준 진보적인 제도였다.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계급의 아이들이 아무런 기회도 없이 어릴때부터 공장과 광산에 드나들면서 노동자가 되어버리는 과정, 그리고 빈곤층의 아이들이 각종 범죄와 일탈에 노출되어버리는 과정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의무교육제도를 강하게 요구했다.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꿈조차 가난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노동계급과 빈곤층 자녀들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고착되지 않고, 자신의 감추어진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여 신분과 계층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제도였다.
- '학교를 무작정 재판하는 사람들을 재판한다.’ (권재원)
또한 그 과정에서 더욱 다양한 교육상상이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허나, 최근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 등에서 보여지는 아마추어적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면 현장교육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OECD의 미래 학교 교육에 대한 시나리오(The OECD Schooling Scenarios in Brief)
OECD 교육연구혁신센터(CERI:Centre for Educational Research and Innovation)에서 연구하여
발표한 OECD 교육정책분석 보고서에는 미래 학교의 모습을 다음의 6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발표한 오래된 자료임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많아 소개합니다.
1. 현체제가 유지되는 방향 (Status quo)
- 시나리오 1 : 견고한 관료제적 학교 체제
- 시나리오 2 : 시장경제 원리 적용 모델 확대
2. 학교가 재구조화 되는 방향 (Restructure)
- 시나리오 3 : 핵심적 사회센터로서의 학교
- 시나리오 4 : 중심 학습조직으로서의 학교
3. 탈 학교 (Destructure)
- 시나리오 5 : 학습자 네트워크 형성
- 시나리오 6 : 교사의 탈출, 학교의 붕괴
현체제가 유지되는 방향 (Status quo)
시나리오 1. 견고한 관료제적 학교 체제 (Robust Bureaucratic School System)
강력한 관료주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학교 체제는 학부모나 언론의 불만 표출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합니다. 학교는 사회 구성원들의 균등한 교육기회 보장, 사회화, 학위수여 등 전통적인 기능을 고수합니다. 교육부-시도교육청-지역교육청-학교라는 4단계 위계 구조에서 가장 말단 행정 조직이 학교로, 관료주의 부작용으로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학교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나리오 2. 시장경제 원리 적용 모델 확대 (Extending the Market Model)
획일적으로 제공되는 공교육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학교 교육을 대신해 학습시장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교육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급자들이 등장하며, 소비자 선택이 최대한 보장되는 개인화된 교수와 홈스쿨링이 증가합니다. 평생학습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단순히 학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정부는 더 이상 교육에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신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 시장을 규제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정보통신기술이 대규모로 활용됩니다. 다양한 경력을 지닌 전문직업인들이 정규직, 시간 임시직 형태로 교수활동에 참여하여 전통적인 교사를 대신해 시장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교수자들과 학습 인증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등장합니다. 시장 기제에 따른 풍부한 혁신이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평등에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합니다.
학교가 재구조화 되는 방향 (Restructure)
시나리오 3. 핵심적 사회센터로서의 학교 (Schools as Core Social Centers)
학교는 학습활동을 매개로 사회, 가정,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사회중심센터로 재구조화됩니다. 낮은 문턱과 열린 문을 가진 학교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됩니다. 평생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전통적인 교실 교수 외에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학습 기법들이 도입되어 학교교육과 다른 양식의 학습 간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경제계, 고등교육계, 종교계는 물론 은퇴자들까지 참여하며, 초등교육과 중등교육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모든 연령대가 섞인 학교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든 지역사회에 양질의 학습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풍부한 재정이 필요합니다. 교원의 역할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와 사회의 책무가 결합되면서 역할이 복잡해질 것입니다.
시나리오 4. 중심 학습조직으로서의 학교 (Schools as Focused Learning Organization)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에 부응해 학교 체제는 다양성, 실험, 혁신에 초점을 맞춘 학습조직으로 재구조화됩니다.여전히 공교육의 가치가 중시되는 가운데 학습조직으로서 학교는 고도 경쟁 사회의 발전에 기여합니다. 학교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하며, 학교가 기존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체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교육 전문가로서 역할이 강화됩니다. 교육은 지식 생성과 평생학습의 견고한 기초를 놓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학습조직으로서 학교는 나이, 학년, 능력에 따라 학생을 나누기보다는 다양하게 섞을 수 있습니다. 고등교육 기관은 물론 미디어와 기술회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이 매우 중시됩니다. 모든 학생들의 적성과 성취도를 반영하는 역량평가가 활성화됩니다. 학위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교수법과 학습과학 연구가 확대됩니다. 인프라가 빈약한 지역에도 최신 시설이 도입되는 등 학교 전반에 상당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며, 교직에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동기가 높은 교사들이 활동합니다. 학교 외부 전문직과 교사 간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됩니다. 다양한 계약에 따라 교직의 진입과 진출이 자유로워집니다.
탈 학교 (Destructure)
시나리오 5 : 학습자 네트워크 형성 (Networks & the Network Society)
다양해지는 학습 요구들에 비해 학교체제가 제공하는 교육에 대한 불만족이 누적되고, 여러 가지 한계점을 노출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탈학교 운동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저비용의 강력한 학습 미디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학교를 대체하는 학습 네트워크가 등장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학습이 가능해지고 인공 지능 기술을 통해 쌍방 통행 학습이 이루어지게 되며, 학습 네트워크 체제에서는 대안학교, 홈스쿨링 등이 보다 활성화됩니다. 자녀양육 방식, 문화적 관심사, 종교적 색채 등에 따라 다양한 학습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지역 사회 안에서 홈스쿨링이나 소집단 학습을 하는 형태를 지니기도 하지만 원격 학습이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 시나리오는 기술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회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습 네트워크는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학교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포용되던 계층들이 학습 네트워크에서는 배제될 위험도 존재합니다. 교사라고 불리는 직업은 사라지지만, 학습 네트워크에서 일하는 학습 전문가들이 새로 등장합니다.
시나리오 6. 교사의 탈출, 학교의 붕괴 (Meltdown & Teacher Exodus)
교사보다 더 나은 조건의 직업이 많은 부유한 국가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사들의 타직업으로의 전직과 명예퇴직이 늘어나지만, 유능한 신규 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납니다. 따라서 정책적 대응이 시기를 놓칠 수도 있고,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거주지가 분할되어 있을 경우 교사 충원 위기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유층은 공립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 부족은 학생들의 학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학부모와 언론의 비판이 거세집니다. 학생들의 성취도가 낮아지면서 전통적인 교수법과 시험을 더 강조하게 되며, 과외와 교육기업들이 번성하게 됩니다. 교사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 활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퇴직 교사를 임시적으로 다시 채용할 수 있으며, 저소득 국가 출신 교사들이 부유한 국가로 이동하며 이른바 국제 교사 시장이 발달합니다. 교직의 전문성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 학교를 상상하고 그려나갈 방법은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앞서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학교를 붕괴시키고 무능한 교사를 퇴출하겠다는 탈학교의 시나리오가 오히려 유능한 교사채용을 어렵게 하고, 사회적으로 포용되던 계층들을 배제하고 교육을 양극화로 치닫게 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안다면, 무작정 현재의 학교에 대한 비난만 하는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접근은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건설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모든 교육 주체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우리나라 교육계는 주로 시나리오 4와 시나리오 6의 가능성이 동시에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학교가 다양성, 실험, 혁신에 초점을 맞춘 학습조직으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다양한 교사 연구회와 교사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학교 외부 전문기관과 교사 간의 활발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가고 있으며, 핀란드 부러워할 것 없이 우리나라 교사들 중에서도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교육 전문분야를 심화 연구하여 현장에 접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미래학교에서 교사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생교육 시대에 교사이면서 동시에 학습자로서도 스스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나리오 4 : 중심 학습조직으로서의 학교 (Schools as Focused Learning Organization)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명감으로 뭉친 실력있는 교사들조차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먼 소모적인 일들이 매일같이 반복되어 번아웃을 호소하며, 교직을 떠나고 싶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교사들을 경쟁시켜야 좋은 교육문화가 생겨날 것이라는 일부 대중의 막연한 바람과는 달리, 교원평가제나 성과급, 승진제 등의 시스템은 내부의 반목과 갈등만을 키웠을 뿐 오히려 교육현장에 해악을 미쳤으며, 근본적인 교육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많은 연구결과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학교 뿐 아니라 일반 기업체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성장이 일어나는 것은 내적 동기부여와 외적 자극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일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나라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라고들 합니다. 교사 스스로는 물론, 대중도 교직을 안정적인 직업군으로만 인식하는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무엇이 진정 교육을 위한 길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6 : 교사의 탈출, 학교의 붕괴 (Meltdown & Teacher Exodus)
미래학교의 모습이 어떤 시나리오로 펼쳐질 것인가?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교육주체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추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자료도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