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3년

모텔하는 여자

by 서호

2025년 10월, 모텔을 운영한 지 꼭 10년이 된다. 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변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자라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삼십대였던 우리는 오십을 바라본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흘린 눈물만 해도 백 리터는 될 것이다.


처음 모텔을 시작했을 무렵, 오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님이 나를 혼자 두고 퇴근하신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오빠는 마치 호랑이굴에 병아리를 던져놓은 사람처럼 화를 냈다.


“아부지, 은정이 혼자 모텔에 두면 어떡해요!!!!!!!”


누가 날 잡아먹기라도 하나. 그땐 웃으며 넘겼다. 그랬던 오빠였는데. 이제는 남자 손님이 오면 슬쩍 뒤로 숨는다. 남자 손님들은 여직원 앞에서는 돈을 잘 깎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주차요원이 내 손목을 잡아끌어 불쾌했던 날을 보고도 오빠는 씨익 웃고 만다. 예전엔 꿈에 연예인이 나왔다고만 해도 “꿈에서 잤냐” 고 따져 묻던 사람이었는데.


그 시절을 지나오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시간이 알려준 건 삶의 요령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는 법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지켜주던 사람도 지켜지던 사람도 바꿔놓았다.



모텔을 하며 사기, 성추행, 성희롱, 언어폭력까지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대나무숲이 필요했던 나는 하루하루 일기를 써 내려갔고 언젠가는 이 모텔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병률작가님의 꽃수업’을 듣게 되었다. 먼 곳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나를 작가님은 반갑게 맞아주며 저녁 식사를 제안하셨다. 함께 수업을 듣던 SNS 친구들, 심지어 초면인 사람들까지 함께한 자리였다. 소극적이고 부끄럼 많은 성격이지만 술을 마시면 극적으로 자아가 바뀌는 편이다. 그날도 기분 탓에 과하게 마셨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슬그머니 출범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작가님의 질문에 모텔을 운영하는데 별의별 일이 많아 책으로 엮어도 될 정도라고 말했더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셨다.


나는 잠깐 사이 네 개의 콘돔이 발견된 방에서 희로애락을 느꼈던 이야기를 포함해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드렸다. 그러자 작가님은 뜻밖에도 출간을 제안하셨다.

그때가 3월 초였는데, 4월 30일까지 에피소드 40개만 적어 보내달라며 그걸 읽고 책으로 만들지 결정하자고 하셨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죽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죽은 나는 죽은 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 안 돼. 책까지 내기로 했는데 이렇게 죽는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아침에 일어나 네이버에 ‘내가 죽는 꿈’을 검색해 보았다. 이제까지의 나를 벗고 새로운 내가 된다는 길몽이라고 했다. 신분 상승이나 직업의 변화 같은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자영업자에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는 선몽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트북은커녕 패드도 없던 나는 수기로 일기를 쓰곤 했다.

(무시하진 마시라. 본인은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 소지자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고 40개의 에피소드는 삼성 핸드폰 메모장에 빽빽하게 적어 작가님의 이메일로 보냈다. 며칠 뒤 답장이 왔다. 재밌게 읽었다는 말과 함께 작가가 꿈이라면 노트북 하나쯤은 사두는 게 좋겠고 한글 앱 정도는 구매하라는 조언이 적혀 있었다. 그 길로 한글 앱 구독을 시작했다. 노트북도 장만했다. 이제부터는 작가 놀이다.


출간 후 북토크 자리에서 사람들은 종종 책을 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인도의 신분제도처럼 숙박업계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어요. 호텔, 리조트, 펜션, 그리고 제일 아래 모텔이 있죠. 저는 그런 인식을 바꾸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돈이 필요했다. 다른 돈벌이가 절실했다. 모텔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다.


출간 후 자극적인 제목 덕분이었을까? 지역 신문과 온라인 뉴스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드디어 모텔을 벗어나는구나.’ 그런 착각도 잠시였다. 반짝이는 인기는 좋았지만 그 제목 탓에 가장 가까운 내 아이들에게도 이 책을 보여줄 수 없었다. 지인들 역시 내 책을 읽는 일 자체를 어딘가 부끄러워했다. 마치 불륜들(죄인들)을 숨겨준 댓가로 돈을 버는 사람 취급에 악플이 넘쳤고 나와 가족들은 상처를 받았다. 또 하나 간과했던 것은 생각보다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신이 들었다. 전업 작가가 되는 길은 연예인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실감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좋았지만 그게 밥을 먹여주지는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글은 도망칠 구멍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견디게 만드는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여전히 모텔 안에서 청소기를 밀며 온갖 진상들을 상대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달라진 점.

나 역시 서서히 싸움닭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은 나를 바꿔주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참지 않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손님들의 무례한 태도와 예의 없음조차 어떻게든 철학적으로 이해해 보려 했다. 이제는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한다. 덩치 큰 남자 손님에게도 물러서지 않고 내 권리를 주장한다. 불이익이 발생하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망설이지 않고 경찰에 신고한다. 남자 직원들이 있을 때는 잘 꼬이지 않던 똥파리들이 내가 있을 때 유독 많이 꼬인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둥하게 생긴 건 어쩔 수 없지만 만만한 상대가 되도록 그냥 있을 수는 없기에. 나는 바뀌었다.


1년 정도 출간 준비를 하며 초고, 퇴고 1~3, 윤문까지 출판사와 핑퐁하듯 원고를 주고받는 시간을 꽤 즐겼다. 낮에는 카운터를 보며 글을 쓰고 청소기를 밀며 녹음본을 만들어 들었다. 저녁이면 카톡으로 전송해 둔 원고를 보다가 잠들곤 했다. 꿈같은 1년이었다. 그 당시 내 소원은 단순했다.


세상에 내 책 한 권만 나온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욕을 하든 나를 코너로 몰아가든 상관없었다. 나는 곧 작가가 될 꽤나 귀한 몸이었으니까. 밤과 낮 온종일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런데 막상 작가가 되고 나니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곧 또 다른 목표가 생겼고 조바심이 따라왔다.


"더 좋은 글을 쓸 것, 더 빨리 쓸 것, 팔리는 글을 쓸 것."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목표를 이룬다고 행복이 더 커지는 건 아니구나.

행복은 늘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쪽에 있었다. 조금의 불안과 함께 기대감과 설렘이 섞여 있던 그 시간. 그 감정들이 행복을 끌고 오고 있었다.

결과가 어떻든 그렇게 크고 작은 순간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거였다.

이게 삶이구나. 이런 과정 자체가 바로 삶이구나.




비밀스럽게 신춘문예에 도전해 왔다. 매번 낙방이었지만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올해도 아무 말 없이 다시 도전했다. 또 낙방인 듯하다. 그런데도 웃음이 난다. 쓸 수 있어서.

내년에 또 도전할 수 있어서.


나는 꿈이 있는 한 젊고,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카운터에 앉아

끄적끄적.


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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