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vs김지헌

예약자 방배정오류

by 서호

김지현이냐? 김지헌이냐?

우리 가게는 타 모텔에 비해 객실 타입이 많다. 하여 근무 직원에겐 곤욕일 수 있다.

금연 일반실, 흡연 일반실, 욕조 일반실, 노하드 PC 유무, 커플 PC, 금연 특실, 흡연 특실, 트윈실(가족), 작은 다락방, 큰 다락방 이렇게 나뉜다. 트윈실은 단 1개, 커플 PC룸 1개, 다락방은 2개씩, 욕조 있는 방 2개, 일반실과 특실은 7~15개 정도로 구분된다. 그렇다 보니 트윈실이나 커플 PC 예약이 한쪽 사이트에 들어오면 다른 사이트 예약창을 마감해야 한다. 그러면 트윈이나 커플 PC를 늘리면 어떻겠냐고? 노노노. 수요가 많지 않은데 없앨 수는 없기에 만들어둔 방일뿐이다. 가끔 못 팔 때도 있지만 없애고 나면 고객들이 유독 찾는 그런 방이랄까?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중복 예약이 되고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당일 중복 예약을 알았을 경우 환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당장 고객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 객실 단가가 5만 원이라 가정하고, 고객이 5만 원 객실을 예약했는데 중복예약이라면 같은 타입의 객실을 주변 모텔에서 찾아 줘야 한다. 이때 주변 모텔 시세가 5만 원 이상인 6~7만 원이라면 우린 도리어 방을 팔고도 1~2만 원 손해를 보는 것이다.

2025년 5월 4일 방이 100개여도 다 팔 수 있을 것 같은 1년 365일 중 최고의 연휴. 주변 모텔을 검색해 보니 295,000원까지 치솟았다. 물론 우리는 이미 예약이 종료된 상태였다. 오후 4시 즈음 객실 최종 점검을 하러 올라갔다 내려오니 예약자 ‘김지현’ 일반실 노하드 PC 룸 예약자가 502호에 입실을 하였다. 직원에게 5시 입실인데 무슨 일이냐 물으니 휠체어를 타고 오셔서 그냥 보낼 수 없었더란다. 잘했다 칭찬해 주었다. 가격형성이 천차만별이라 방편성을 미리 하였다. 보통은 직원이 랜덤배정을 하는데 비해 오늘은 가격에 따라 조금이라도 좋은 방부터 지정하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야간 직원과 교대를 하고 퇴근길 약속 장소로 향했다.

1~3차까지 진탕 마시고 집으로 귀가해 씻고 나오자, 방문이 열린다.

“당신 도대체 방배정을 어떻게 한 거야? 김지현 고객 일반실 PC도 없고 테이블 없다고 난리야! 아 진짜 맨날 사고를 쳐! 진짜 아오 씨*.”

영문도 모른 체 욕 한 바가지를 얻어먹고 나니 찬물을 뒤집어쓴 거 마냥 술이 확 깼다.

“장부 좀 찍어서 보내줄래?” 남편이 야간직원(남편의 친구)에게 수화기너머로 다정하게 말하자, 곧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을 보니 김지현에게 방을 준 것은 주간 직원의 글씨체였다. 순간 기억이 났다. 몸이 불편해 보이셔서 조기 입실을 시켜주었다던 주간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럼 이 사건은 어떻게 된 것인가?

김지현 : 일반실 노하드 PC 예약 / 김지헌 : 작은 다락방 예약

참고로 ‘작은 다락방’은 우리 가게에서 가장 저렴하다. 방도 작고, 중문도 없으며, 테이블과 PC도 없다. 침대와 욕실, 화장대가 전부이며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포함 OTT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휠체어를 탄 고객은 김지현이 아니라 김지헌이었던 것. 작은 다락방을 줘야 하는데 이름을 잘못 듣고, 일반실을 주고 말았다. 비슷한 이름으로 인해 방배정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여하튼 직원들의 실수는 늘 내 책임이 따른다. 남편은 무조건 ‘그걸 아직 몰라?’ ‘그걸 걔네가 알아? 당신이 다시 한번 인지시켰어야지.’ ‘당신이 확인했어야지.’ 등등등 가게에서 생긴 일들은 나의 탓을 한다. 깡패같이 생긴 0.1톤급 문신남들이 그냥 가버리면 ‘추가요금 왜 못 받았어?’ ‘차단기를 내려.’ ‘그럼 들이받아브러!’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본인이야 0.1톤에 근육남이니 가능하시겠지만 난 키가 160cm도 안 되는 데다 몸무게도 꼴랑 45kg 정도에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인간 아니던가?

남편은 장부 사진을 확인하더니 뻘쭘한 표정으로 한발 물러서고, 어이를 상실한 나는 딱 한 방울의 눈물로 오늘을 슥슥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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