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하는 여자_이전에 나는 엄마다

내로남불

by 서호

<2025년 5월 5일 모텔일기>
모텔 하는 여자_이기전에 나는 엄마다
: 내로남불



2018년 어느 봄날. 직원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남편과 교대근무를 한다. 불만은 없다. 인건비 500만 원은 아낄 테니까. 첫째는 뉴질랜드 남부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어학연수 중이었으므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한창 객실 점검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둘째다. 타지 생활에 한계를 느낀 녀석은 7개월째 마닐라 생활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직원이 없으니 우리 부부는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둘째는 초등학생이라는 작은 이름표를 달고 마닐라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롯이 혼자 하늘길을 건너오기로 한다. 인과관계의 사슬을 믿는 결정론자인 나였기에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로 길을 잃거나 납치를 당한다거나 하는 돌발상황을 딱히 걱정하지는 않는다. 녀석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쏘아 올린 내 긍정 신호가 우주 어디쯤에선가 길을 안내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2025년 1월 1일 마닐라에서 날아온 초등학생은 어느새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지역 내에 대학에 입학을 하고, 후계자 수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5월 2일부터 5월 6일까지 긴 연휴가 시작되고, 공급량이 수요량을 채우지 못하면서 모텔은 대박이 났다. 휴가기간 내내 일손 부족으로 둘째 놈 손을 빌리고 있다.
“어 왜 206호가 퇴실을 안 하는 거지?” 의아해하며 퇴실안내 전화를 다시 돌리려는데 아들 녀석이 수화기를 뺏으려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부분 고객의 성향을 아는지라 아들에게 손짓하며 “엄마가 할게.”라고 말했다. 분명히 4시 10분에 퇴실 안내 전화를 했음에도(퇴실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20분 전에 미리 전화를 한다) 4시 5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2’ ‘0’ ‘6’ 버튼을 다시 눌러 “고객님 퇴실 시.. 가안..”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준! 비! 하고 있어요!” 되려 언성을 높인다. 나는 다시 “저희 숙박 입실 손님 예약시간이 5시라서요...” 안내를 하고, 그는 또다시 말끝을 자르며 “준비하고 있다고요.” 퉁명스럽게 수화기를 놓는다. 뭐지? 이 상황은? 전 객실 최종 점검을 위해 7층부터 한 바퀴 돌며 체크를 한다. 혹 머리카락은 없는지, 창문에 지문이 있는지, 습도와 온도는 적절한지, 냄새가 나는 방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일이다. 7층과 6층 점검이 끝나고 계단을 통해 5층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방화문이 확 열린다. 아 깜짝이야!
“몇 호 가시죠? 5층엔 손님이 없는데요?” 내가 묻자 그는 당황하며 “아, 예, 예... 여보세요? 응 나야...” 연기를 시작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너무 어설프다. 이건 마치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3년 전, 그가 우리 가게를 처음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청년복지카드 사용되나요?” 복지라..(참고로 숙박업소에서 청년복지카드 사용이 가능한다. 망설이지 마시고 오세요!) 비 오는 일요일, 쉬어가는 대실 손님으로 북적이던 그날, 괴성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는 새내기 커플이 왔던 그날이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새내기 커플의 소리는 35개의 객실에 울려 퍼지면서 타 투숙객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모두가 흥분했으리라!
청년이 체크인을 한다. "대실이요. 얼마예요? 청년 복지 카드 되나요?" 홀로 모텔을 찾은 청년에게 배정된 방은 하필? 그들과 같은 6층이었다. 현란한 소리가 6층 복도를 가득 채우는 바람에 사랑의 밀도가 높았던 그곳. CCTV를 보니 청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춤거렸다. 603호. 소리의 시작점으로 향한 청년은 자신의 방엔 들어가지 않고, 계속 복도를 서성였다.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볼 땐 전화를 하며 일행이 있는 방을 찾는 모양새로 보일 테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 그는 그 후로 오랫동안 주말이면 모텔을 찾았고,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복도를 서성이며 연인들의 합창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만 원짜리 청강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가끔 소리가 들리지 않은 날이면 같은 층이 아닌 다른 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헤매었다. 새해가 바뀌자 청년은 더 이상 대실을 하러 오지 않았다. 왜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배달라이더분들 수고 많으시다. 그날도 어김없이 배달라이더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었다. 엇?? 한데 라이더 한 분이 배달에 집중하지 않으시는걸? 배달은 신속함이 생명이잖아. 한 건이라도 더하려고 다들 바쁜 뛰어다니시던데 이 분 어째 여유롭다. 헬멧, 조끼, 한 손에 비닐, 핸드폰까지 분명 라이더의 자태이건만 복도를 서성이며 현관문에 귀를 갖다 대는 모양새가 어딘지 낯익다. 어라? 청년이다. 청년복지카드를 내밀던 그 청년이다. 그는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다. 대실요금을 내지 않고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은 것이다. 이게 바로 진화하는 인간이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가 있는 층으로 향한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배달 장소를 잘못 찾은 듯) 배달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한다. 이걸 어쩌나? 넌 내가 널 모를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너를 잘 알아. 파이팅 하자! 청춘이여!

“몇 호 가시죠? 5층엔 손님이 없는데요?” 내가 묻자 그는 당황하며 “아, 예, 예... 여보세요? 응 나야...” 그때 울리는 벨소리로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못했다. 남편의 전화였다. “차키 어딨어? 206호 난리 났다. 지금 로비에서 싸우고 있나 봐. 나 지금 갈 테니까 그** 잡아놔. 못 가게 잡아놔.” 순간 남은 층 정비고 뭐고 모두 미뤄두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우리 아기를! 우리 애를! 감히!’ 덜 자란 작은새에게 뾰족한 화살을 겨누는 사냥꾼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30분 넘으셨잖아요. 추가요금 1만 원 내셔야죠. 안 그러면 제가 아르바이트생이라 물어야 돼요.” 아들의 말에 그는 절대 못준다며 1시간이 된 것도 아니고, 단골인데 이런 식의 대우가 말이 되냐고 화를 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공손하게 해야죠. 손님한테 ‘가세요’가 뭡니까? 예의 없게. 사장 나오라고 해요! 기다리라고요? 내가 왜 기다려요? 사장 나오라고 해요!” 그는 아들의 응대에 불만이 있는 듯하였다. 여든을 바라보는 친정 엄마께서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손님에게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잘 몰라서 그래요. 인수인계 때 아무 이야기도 못 듣고... 죄송합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어떤 기억? 일단 내가 9년간 모텔을 운영하면서 저 손님을 본 적이 없다. 무릇 단골이란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을 일컫는데 내 기억에 없는 걸로 보아 그는 아마도 오늘 말고 한 번 정도 온 적이 있었을 테다. 또 하나 퇴실 전화를 돌렸을 때 그의 태도가 생각났다. 내가 나설 차례다.
“일단 저 아르바이트생은 제 아들이고요. 이 모텔 후계자입니다. 본인 가게인데 망하게 하려고 손님한테 막말했을까요? 그리고 공손이라고 하셨죠? 아까 206호 퇴실 전화 했을 때 말이에요. 4시 30분 퇴실인데 안 나오셔서 4시 50분에 다시 전화하니까 뭐라 하셨어요? 네. 그게 저였어요. 저랑 통화하셨죠? 준비 중이다고 화내셨죠?” 그는 멈칫하더니 “그때 일어났으니까 그렇죠.”라고 변명했다. “아니요. 4시 10분에 일부러 준비하시라 미리 전화드렸죠? 퇴실 20분 전에 전화드리는 것이 저희 매뉴얼에 있어요. 만약 늦을 것 같다면 시간 추가를 하시면 되고요. 실수로 시간 추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퇴실 시간이 넘었을 경우에! 그때 전화가 걸려왔을 경우에는! 준비 중이라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요.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닌가요? 상대에게 종업원이라고 아랫사람 부리듯 함부로 말하고 본인은 대우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죠. 먼저 시간을 어긴 것, 추가요금을 지불하지 않은 게 떳떳한 일인가요?” 그는 제 안의 허세가 깎이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듯 뒷걸음쳤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가? 사람 아랫사람이 있는가? 우리 모두는 같은 하늘과 땅에서 햇살을 받고,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간다. 세상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변치 않는 진실은 '사람과 사람은 모두 똑같이 귀하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인다 싶으면 가슴팍을 턱 내밀고 거세게 몰아붙이다가도, 정작 저보다 힘 있는 상대를 만나면 순한 양처럼 꼬리를 내리는 모습은 힘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은 가장 손쉬운 폭력일 뿐이고, 강한 자에게 약한 것은 가장 볼품없는 굴종이니까.
모텔을 수년간 운영해 오면서 누군가의 노래제목처럼 피, 땀, 눈물을 흘렸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 견뎌야만 했던 것은 내 아이들 때문이었다. 돈 벌어서… 돈 많이 벌어서 내 아이들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해주고픈 마음에서… 그러기에 아무리 순한 양처럼 살아온 나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 무례함과 부당함은 날 부수지 못한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는 약해질 자유를 포기했다. 엄마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아이들의 웃음 뿐이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무너지지 않는 세상이니까. 모텔하는 여자이기전에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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