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마개와 아이팟
하루에도 몇 건씩 나오는 분실물들.
명품지갑, 안경, 귀걸이, 반지, 목걸이, 핸드폰, 무선이어폰, 속옷, 잠바, 바지, 목도리, 머리핀, 화장품, 케이크, 주민등록증, 신용카드, 핸드폰 충전기, 명품시계, 현금, 처방받은 약, 벨트, 모자, 운동화...
화장품과 음식물은 즉각 폐기하고, 나머지 물건들은 6개월간 보관한다. 고가의 분실물은 예약자일 경우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는 소지품들, 돌이켜보면 당근마켓에 팔걸 그랬다.
퇴실한 방의 환기와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시는 아버님은 연세가 80세 정도에 기본적인 교육을 못 받으셨다. 그러니까 옛. 날. 사. 람. 그러나 그 누구보다 속이 깊고, 지혜로우시다. 여기 아버님과의 일화를 꺼내볼까 한다.
법정공휴일 아침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팟을 두고 갔다는 것이다. 초벌 쓰레기를 치워주시는 아버님께 달려갔다.
“아버님!!!!!!! 혹시 305호에서 뭐 나온 거 없었어요? 이어폰 못 보셨어요?”
아버지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305호? 없는디...이이폰? 그것이 뭐시다냐? 아! 안경! 안경이 나왔다.”
아버님이 3층 린넨실에 가시더니 안경을 가지고 나오셨다.
“안경이요?”
내가 물었다.
“이. 안경은 잘 챙겨놨고, 아! 그리고 귀마개가 있더라. 뭔 통이 있길래 요리 열어봉게 귀마개 두 개 있길래 버릴라다가 혹시 몰라서 놔뒀다.”
아버님 말씀을 듣고 창고로 향했다. 이불과 베개 사이에 고이 자리한 그것은 귀마개가 아니라 그토록 찾던 아이팟이었다.
하… 귀. 마. 개.
나는 킥킥거리며 아이팟을 들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서는 거대한 붕새를 보고 비웃는 작은 새가 나온다. 익숙한 세계의 잣대로 낯선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순수한 시선을 가지셨다. 복잡한 기능이나 브랜드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보이는 형태 그대로를 받아들이신 것.
그러므로 아버님께 아이팟은 그저 '귀마개'였고 며느리에게는 소중한 '아이팟'이었다. 하나의 물건을 두고 두 사람이 갖는 인식이 이렇게 다르다니! '귀마개'는 아버님의 세계이고, '아이팟'은 나의 세계다. 두 세계는 같은 물건을 보지만 완전히 다른 이름을 붙이고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누가 옳고 그르다 할까?
아버님의 '귀마개'라는 말씀 한마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상의 질서나 사물의 가치가 사실은 얼마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가를 보여준다.
어쩌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채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예상치 못한 '귀마개' 같은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