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의 가치

주차요원

by 서호

4년 전 만해도 공용주차장 주차요원과의 갈등이 잦았다.


“시끄럽고 빨리 오백 원이나 주고 가씨오~”


그는 우리 가게 지배인에게는 굽실대면서 나한테만 유독 모질게 사냥개처럼 짖어댔다.


“아이코 지배인님 아니십니까? 날씨가 참 덥습니다.”


어느 날 내가 모텔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이고 우리 사모님 아니십니까? 사모님은 어린 나이에 성공하셨습니다. 사모님은 하늘 저는 하빠리 같은 놈입니다. 저기...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컵라면 하나 먹겠습니다.”


로비에 있는 각종 캔음료, 생수, 커피, 컵라면, 팝콘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그였어도 싫진 않았다. 아주 가까이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움과 감사 그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는 동네에서 사납기로 유명했다. 고래고래 소리치고,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고성방가가 들리면 언제나 그였다.



책 읽기 좋은 어느 가을날 아침 여느 때처럼 그가 나타났다. 커피 한 잔, 두 잔, 세 잔... 팝콘 한 봉지, 두 봉지, 세 봉지... 참다못한 친정 엄마가 나섰다.


“아저씨 우리도 그거 손님 드리려고 준비해...”


그러자 그는 커피를 “퉤” 하고 뱉더니 엄마를 향해 마구 욕설을 날리는 것이다.


“씨* 안 묵어요! 안 묵어! @#$%&...”


화나는 마음도 있었지만 취한 듯 보이는 그가 무섭기도 했기에 피하는 셈 참았다. 그가 미웠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로비를 드나들며 무전취식에 힘을 다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나타난 그는 멋쩍은 듯 웃었다.


“사모님 제가 디지게 맞아브렀어요. 치료받고 이제 나왔고만요.”


짠한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미친개처럼 덤비는 상대가 한 성깔 하는 동네 양아치였겠지. 제대로 걸렸을 테다.

“그러니까 성질 좀 죽이세요. 그러다 진짜 큰일 나요.”


다시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몇 번 주차요원이 바뀌더니 다시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완전히 신사 중의 신사랄까?

남편이 말했다.

“주차요원 많이 변했지? 예전에 그 사람 조울증이었단다. 1년 간 입원했다가 다 고치고 퇴원했데.”

이렇게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팠던 거구나.


2025년 6월 5일 목요일 이재명 대통령 당선 2일 차, 하늘이 푸른 폭죽을 쏘아댄다.

(본인은 특정 당을 지지하지 않음)

경제가 좀 살아나려나? 소상공인 좀 살려주세요...

실외 주차장에 주차 후 손님 한 명이 로비로 들어온다. 트윈실 예약자였다.

“네 308호로 가시면 되고요. 금연실입니다.”

잠시 후 주차장에 카니발 한대가 주차장으로 진입한다. 차체가 길다 보니 주차선을 맞추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후다닥 뛰어나간다.

“사장님, 예약하셨어요?”

나의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일행 있어요. 308호”

총 객실 수 35개, 외부 주차장 수용은 10대, 이중주차 포함 시 15대까지 가능하다. 객실 한 개당 주차는 1대를 원칙으로 한다. 우리 주차장이 부족할 경우 유료주차장으로 안내하고, 주차비를 대납해 준다.


순순히 차를 빼는 그가 안쓰러워 주차장 외부 벽면으로 안내한다. 그때였다.


지지직!!!


유료주차장 주차요원 아저씨의 전동키보드를 김여사가 차를 빼다 박은 것이다.

(참고로 김 씨 비하 발언 아님, 나도 김 씨고 결혼했으니 ‘김여사’ 임)


“어이~어~이! 오오오~!!! 이보시오!”


병원에서 치료 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주차요원의 언성이 높아진 까닭은 주차비를 내지 않고 가려는 아줌마 때문이었다.


주차비 1,500원이 나왔고, 아줌마가 500원을 깎아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안된다고 했다. 아줌마는 500원을 가지러 차에 타는 척하더니 그대로 출발해 버린 것. 아줌마 차 앞에 주차요원의 전동킥보드가 세워져 있었고, 두대가 충돌하는 소리에 아줌마가 놀라 차를 세웠다. 아줌마는 본인의 승용차에 난 흠집을 확인하려 급히 내렸다.


“이보시오! 거참! 500원을 떼어먹고 가려하다니! 허참!”


아저씨가 흥분하자, 아줌마가 소리쳤다.


“그니까 내가 깎아달라 했잖아요! 아 긁혔네.”


“긁히든 말든 그건 그쪽 잘못이고. 그니까 내가 안 깎아준다 했잖아요. 500원이 열 번이면 5,000원이요! 5,000원. 그게 100번 이면 50,000원이고요. 무시하지 마시오. 500원을! 내 돈 500원을 안 주고 그냥 가려 하다니! 이게 무슨 짓이요?!”


작은 돈에 연연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진 김여사의 모습을 보며 씁쓸했다.

시에서 운영되는 ‘공용주차요원자격’은 몸이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일일 상납금인 7만 원을 채우지 못하면 오히려 적자인 셈이다.

불쌍한 주차요원 아저씨.


순간 가엾은 마음이 일었다. 지난날 사나웠던 모습과 지금 500원 때문에 언성을 높이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너무 쉽게 상대를 재단했던 건 아닐까. 그 또한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아버지 일터. 500원 때문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의 인생이 결코 500원짜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그의 병을 알고 난 뒤 후회와 연민은 그래서 더 깊었다. 미워했던 시간들이 부끄러웠고, 그를 향해 가졌던 좁은 마음이 야속했다.



오늘 벌어진 작은 소란은 그저 500원짜리 해프닝이 아니라,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녹록지 않은 삶의 한 단면처럼 느껴졌다. 시스템의 허점 속에서, 그리고 사소한 이기심 앞에서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생계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삶은 때로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내 안의 오해가 풀리고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는 것을 안다. 하늘이 쏘아대는 따뜻한 햇살을 그와 나누어야지. 온정도 전해줄 테야. 잠시 주차요원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조금 더 따뜻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지만 진심 어린 바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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