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새로운 정의
#외박_사랑의 새로운 정의
어릴 적, 집안의 규율은 견고했다. 특히 통금 시간은 어린 나에게 세상의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청소년기 주말 오후 여섯 시, 대학생이 되어 겨우 열 시로 늘어났다. 그 시간은 자유의 척도였다. 아빠의 기묘한 논리는 외박은 절대 금지하면서도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재우는 것은 허락했다. 덕분에 시험 기간이면 우리 집은 친구들로 북적였고, 나는 그 북적임 속에서 외박 금지의 역설적인 자유를 맛보았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좋았던 점은 자정까지는 맘 편히 놀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편이 회식에 가거나 약속이 있는 날만 가능했다. 그래도 좋았다.
몇 달 후, 남편은 첫 외박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외박이 아닌 ‘첫 외박’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만취 상태여도 집으로 들어왔고, 신발장이나 거실에서 잠들곤 했다. 여름이 다가오고 해가 길어지자, 새벽부터 눈 부신 햇살이 안방 창문을 두드렸고, 깨어보니 남편이 없었다. 30분쯤 흘렀을까? 오전 7시에 현관문이 열리고 망가진 모습의 남편이 들어왔다.
“허허걱...미미미안해...”
남편은 신발장에 신발을 신은 채 무릎을 꿇고 파리 시늉을 했다. 남편의 외박에 강한 배신감을 느낀 나는 각서 한 장을 받는다.
*25년 이후
“너 이렇게 매주 여행 다니는 거 남편이 뭐라 안 하니? (...) 너희 부부는 꼭 프랑스 부부 같다.”
유명 작가님께서 부러운 듯 말씀하셨다.
규칙은 간단했다.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면서 내가 먼저 선언한 것이다.
“오빠 이제 우리는 중년이야.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고, 우리도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거야. 이혼이고 뭐고 의미 없고, 우리 고생했으니까 남은 생은 자유롭게 보내는 거야. 당신은 낚시랑 술 먹는 거 좋아하니까 그거 하고, 나는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니까 쉬는 날엔 여행을 갈 거야. 누구랑 있던지, 어디서 자든지 상관하지 말고 대신 자식들한테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않기로 해.”
서로 동의했다.
모텔을 운영하면서 외박에 대한 관념은 또 한 번 뒤집혔다. 살고 있는 집과 일하는 곳의 거리가 끝에서 끝이다. 이동시간은 20~30분. 택시비는 1만 원이 조금 넘는다. 남편은 새벽 6시 30분부터 주간 근무를 시작하는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왔다가 이른 새벽 다시 출근하게 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므로 절감 차원에서 외박이 시작된 것이다.
“나 가게에서 자고 갈게.”
“웅.”
처음 몇 번 가게에서 자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남편은 영상통화를 꼭 하였다.
“여기 608호야.”
“여기 302호야.”
몇 번의 외박, 어느 순간 ‘영상통화 보고 절차’는 사라지고 절차의 빈자리는 믿음으로 채워졌다. 남편이 밖에서 자는 일이 잦아지고, 나 또한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혼자 어디를 가냐? 누구랑 가냐는 질문에
“나는 당신이 어디서 누구랑 잤는지 묻지 않아. 왜? 믿으니까. 당신도 날 믿어. 서로의 꿈과 건강한 삶을 응원하는 거야!”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거 하고 사는 부부가 되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우리 부부를 측은한 눈으로 보곤 한다. 어쩔 텐가? 보수적인 집안에서 통금시간에 얽매여 지내다, 결혼하고 남편의 ‘첫 외박’에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각서 한 장으로 잠재우던 어린 신부가 이렇게 대담해졌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부재 속에서 더 깊은 존재를 확인하는 독특한 부부가 되었다.
가끔 나를 측은하게 보는 지인들, 때로는 내 남편이 누구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내 주시는 여러분들아, 걱정하지 마시라! 그 무엇도 ‘신뢰’라는 두터운 성문을 쉽게 부수고 들어올 순 없을 테니. 사랑이란 그런 것, 서로의 외박을 인정해 주는 경제적 합리성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면에 숨겨진 복잡하고 묘한 감정들은 각자의 밤에 묵묵히 숙성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