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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그녀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08. 그녀


정우는 일주일에 2번은 집에 일찍 가야 했다. 어머니가 아기 육아로 허리가 아파 쉬고 싶다 하셨다. 정우가 아기와 시간을 보내며 정을 쌓으라는 의미도 있었다. 정우는 월요일과 목요일엔 진한에게 호프집을 맡기고 일찍 들어갔다. 대신 아무리 늦은 시각에도 진한에게 그날 매출 보고를 받았다.


“오늘은 식당 이모님들이 회식하러 와서 술을 많이 팔아줬어요. 우빈이 예뻐하는 그 밥집 이모들이요. 평소 2배 매출 찍었다니까요.”

“오호! 이게 우리가 기대한 정우빈 효과인가?”


“어찌나 늦게까지 마시는지. 문 닫아야 하는데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하면서 버텨서 우빈이가 뒷감당하느라 고생 좀 했죠.”

“우빈이 잘해줘. 도망 못 가게.”


“네. 근데 형.”

“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진오 나와도 될까요?”

“그래. 너 알아서 해.”


“고마워요. 형.”

정우는 까다로운 성격이었지만 진한에게는 허용적이었다. 정우는 어느 순간부터 진한을 신뢰했다.



고등학생인 진오 눈에도 대책 없는 호프집이었다.


“형, 목요 이벤트 하나 하자. 이벤트는 전적으로 내게 맡겨. 형은 그 시간에 창고 가서 앱 개발이나 해. 이 수준이면 인센티브 기대하기 힘들겠어.”


진한은 성장하는 청춘인 진오의 말에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가 연애 외에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보여 기특했다.

진오는 호프집 SNS에 이벤트 내용을 공지했다. 아주 낭만적인 문구인 ‘너를 위한 나의 시간’으로 대문을 장식했다.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캠퍼스, 술집 거리에도 전단을 만들어 붙였다.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SNS를 통해 이벤트를 알리고 멋진 후기를 올려 여자들에게 로망과 환상을 심어주고자 했다. 핸섬 가이즈 호프집이 ‘목요일의 프러포즈’ 장소가 될 수 있게 포장하고 싶었다.




건축공학과 학생들이 캐드 작업을 위해 컴퓨터 실습실에 모였다. 2시간 내내 모니터 앞에서 집중한 탓에 목과 어깨가 뻐근했다. 여학생 2명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힐링할 모양이었다. SNS 삼매경에 빠졌다.


“역시 훈훈해. 나는 진한이 좋아. 반듯해. 넘어오기만 하면 나만 좋아할 것 같지 않아?”

“포기도 빠르면 건강에 좋아.”


“너나 빨리 포기해.”

“내가 뭐?”


“우빈이랑 너는 숨 쉬는 공기 자체가 달라. 키 차이 어쩔 거야?”

“야!”


그녀들은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핸섬 가이즈 동아리 SNS를 통해 핸섬 가이즈 호프집 SNS로 들어갔다.


“근데 이 여자 머리 색깔 너무 예쁘지 않아? 나도 이 색깔로 염색할까 봐.”

“네가 하면 귀신같고 그녀가 하면 신비롭고.”


“야! 넌! 너~무 솔직한 게 탈이야.”

“뭐 넌 무한도전이 취미니까 해보든가. 요즘 애쉬 그레이 컬러가 유행이긴 해.”


유독 색감에 예민한 세종은 앞에 앉은 여자애들 말에 귀가 번뜩했다. 의자를 옆으로 빼서 앞에 있는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이 그렇게 찾던 세온을 닮은 그녀 사진이 있었다.


“야! 여기 어디야?”


세종은 다짜고짜 앞에 앉은 여자애들에게 물었다. 여자애들은 뒤돌아보았다. 세종과 한마디도 나눠본 적 없는 과 친구들은 오히려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냐고!”


세종이 몰아치자 여자애들은 핸섬 가이즈 호프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세종은 그 길로 가방을 메고 컴퓨터 실습실을 뛰쳐나갔다. 여자애들이 알려준 호프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멎을 듯한 순간에 호프집에 도착했다. 이른 오후라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세종은 호프집 앞에 붙어있는 이벤트 전단을 보게 되었다.


너를 위한 나의 시간’


그 의미심장한 문구를 보니 더욱 그녀가 궁금해졌다. 호프집 계단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핸섬 가이즈 호프집 SNS에 들어갔다. 영상 속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함박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앉아있었다. 제목은 ‘그를 향한 프러포즈’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출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행복하지 않았다. 밝은 척도 하지 못했다. 단발머리로 얼굴은 반쯤 가린 상태였다. 세종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억지로라도 웃을 수 없는 상태란 걸 말이다.


밖이 어둑해질 때까지 세종은 계단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호프집으로 출근한 정우는 계단에서 세종을 발견했다.


‘어! 저 녀석. 뭐야? 제 발로 걸어오다니.’


정우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를 모른 체하며 호프집 문을 열었다.


“저기, 여기 사장님이신가요?”

세종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마도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정우는 세종의 궁금증을 더욱 유발하기 위해 아무 말 없이 호프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급한 세종이 정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주에 여기서 진행한 이벤트 참가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누구?”


“누나.”

“누나?”


뭔가 블랙홀에 빠지는 듯한 세종의 눈에서 정우는 뭔가 직감했다.


‘뭔가 있어.’


정우는 계산대로 갔다. 숨어서 휴대폰으로 진한과 진오에게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SOS. 빨리 튀어와. 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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