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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여삼추(如三秋)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09. 여삼추(如三秋)


“찾는 사람이 누나예요?”

“···.”


정우의 물음에 세종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았다.


“첫사랑?”

“···.”


“아니면 혹시 어릴 때 친누나 잃어버렸어요?”

“···.”


“아니면 채권 채무 관계?”

“···.”


“저기. 온세종! 대답 좀 해!”

“제 이름 어떻게 아세요?”


“···.”

“그리고 왜 반말을 하지?”


“자자. 우리 차분하게 얘기 좀 합시다. 그러니까 이벤트에 참가한 어떤 여자, 즉 누나로 보이는 그녀를 찾는다는 거죠?”


“네. 이 여자요.”


세종은 옆모습만 살짝 나온 SNS 사진을 보여주었다.


“현재 애인이 아닌 건 확실하죠?”

“네? 네.”


세종의 말에 정우는 안심했다.


“일단 제가 그날 가게를 비워서 알바생이 와야 상황을 아니까 좀 기다려요.”


세종은 자리에 앉아 밖을 쳐다보았다. 정우는 그가 있는 창가 쪽으로 메뉴판을 들고 갔다.


“뭐라도 시키면서 기다려요.”

“···.”


“맥주 한 병 줘요?”

“술 안 마셔요.”


정우는 차가운 세종의 말투에 소심해졌다. 더는 술을 권하지 않고 계산대로 돌아갔다.


노란색 커피믹스 한 봉지 뜯어 내용물을 종이컵에 쏟아부었다. 2개 남은 것 중 하나였다. 뜨거운 물을 부어 휘이 저은 다음 그에게 가져갔다.


세종은 고개를 들어 정우를 쳐다보았다. 정우는 눈짓과 턱짓으로 마시라고 신호했다. 세종은 쓴 술뿐만 아니라 단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가방에서 500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커피값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묘한 놈이네.’


세종과 정우는 한 시간가량을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서 숨만 쉬고 있었다. 세종은 그녀 생각, 정우는 세종 생각에 푹 빠져있었다.





그때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진한과 진오였다. 정우는 진한 형제에게 눈짓으로 무언가를 지시했지만 둘은 알아듣지 못했다.


세종은 다짜고짜 그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 여자, 연락처 있을까요?”


진오는 SNS 속 그녀를 확인하고 할 말이 많은 얼굴이었다. 진오가 입을 떼려는 순간 정우가 그의 신발을 밟아 흠칫했다. 상황을 눈치챈 진한이 나섰다.


“아, 이벤트 신청은 SNS로만 받아 딱히 연락처가 없어요.”

“SNS에 남겨진 정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세종은 간절해 보였다. 진한이 또 나섰다.


“개인정보라 함부로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제가 꼭 필요해서 그래요.”


이번엔 정우가 끼어들었다.


“음…. 그럼 저희가 SNS 통해서 그분한테 연락해 보고 알려줄게요.”

“음….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근데 무슨 사이길래 이리 애타게 찾으실까?”


세종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우의 호기심은 처참히 짓밟혔다.


진오도 궁금증이 생기는지 세종에게 물었다.


“혹시 그녀의 프러포즈 상대이신가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저희가 얼마나 뻘쭘하던지.”

“그런 건 아니고요.”


“흠. 하여튼 SNS로 연락해 볼 테니 좀 기다려보세요.”


세종을 안심시킨 후, 정우와 진한은 호프집 창고로 들어갔다. 둘은 제 발로 걸어왔지만, 그녀를 찾는다면 다시 오지 않을 세종을 어떻게 동아리에 가입시킬지 고민했다.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는 세종에게 호프집에 오게 할 명분도, 경제학 동아리를 권할 핑계도 없었다. 그런데도 정우는 자꾸 세종에게 끌렸고 탐이 났다.






우빈이 친구들을 몰고 호프집에 들어왔다.


“진한아, 수창이랑 지영이 데리고 왔어. 오늘 매출 좀 올려준대.”

“오호. 오랜만이네.”


진한에게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인문대학에 다니는 애들이라 자주 보지 못했다. 그들과의 술자리는 처음이었다.


“여기가 정우 형! 여기 사장이야.”

“서비스 팍팍 주시나요?”


우빈을 닮아서인지 친구들은 첫 만남부터 넉살이 참 좋았다. 우빈, 진한, 수창, 지영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고3 때 담임 진짜 재수 없었는데?”

“왜 난 좋았는데.”


대화가 부정적으로 튀는 것을 진한이 뚝 끊었다.


“너야 반장에 모범생이었으니까 선생님이 예뻐했지. 우리는 인간 취급도 못 받았어.”

“그랬나?”


수창이 말에 옆에 있던 지영이가 거들었다.


“우빈이 너도 막판에 좀 혼났지? 공부 안 하고 연애한다고.”

“야, 배지영 너 취했냐?”


우빈이 앞에서는 그녀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아이들은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각자의 얼굴을 가렸다. 한때 우빈을 좋아했던 지영은 술을 마셔댔고 우빈도 함께 마셔댔다. 옆에 있던 진한과 수창도 눈치를 보며 술을 제법 마셨다.


술을 퍼마신 것의 끝은 항상 좋지 않다. 지영이 정신을 잃었다. 수분을 엄청나게 흡수해 건드려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의 중량이 되었다. 그 와중에 수창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비틀거렸다.


취해버린 지영을 빨리 처리해줬으면 하는 정우의 까칠함이 느껴져 진한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진한은 사리 분별이 힘든 상태의 지영에게 물었다.


“너 집이 어디야?”

“니~ 내~ 하암.”


진한은 지영을 포기하고 우빈을 흔들어 깨웠다.


“지영이 집이 어디야?”

“학교 근처. 푸후. 대국 고시원. 꺽. 뒤쪽으로 5분 가면 나오는 끽. 아파트.”


“알았어.”


진한은 정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우는 허리가 아파서 힘들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예상한 바였다. 진오는 주방을 책임져야 했고 나머지 애들은 오히려 짐이었다.


진한은 세종을 보며 말했다.


“건축공학과 1학년이지?”

“···.”


“나도 1학년. 좀 도와줄 수 있어?”


세종은 상당히 피곤하다는 눈빛이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진한과 세종은 지영을 양어깨에 걸치고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담한 여자도 알코올에 절여지면 무게가 상당해진다는 사실을 둘은 깨닫게 되었다.


180cm가 넘는 남자애들이 허리를 굽혀 160cm인 그녀를 양쪽에서 걸치고 가는 건 너무 힘들었다. 결국 업기로 했다. 번갈아 가며 그녀를 업어 겨우 대국 고시원까지 걸어갔다.


“후~ 후~ 제법 무겁네.”


진한이 마음의 소리를 뱉고 말았다.


그때였다. 고시원 앞에서 어떤 여자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세종이 찾던 그녀였다. 그녀는 급하게 출발했고, 세종도 말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야! 야! 혼자 가면 어떻게 해! 야!”


세종이 떠넘기고 간 지영으로 인해 진한은 다리가 후들거려 쓰러질 지경이었다. 세종은 매정하게도 지영과 진한을 버리고 그녀를 택했다. 그녀만을 향해 달렸다. 세종이 달리는 오토바이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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