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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겨울 여행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16. 겨울 여행


진한과 민영은 급하게 커플이 되었다.

우빈과 정우는 맥없이 커플이 되었다.

12월 31일, 부잣집 아들 우빈의 펜션이 있는 서해 안면도로 일출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우빈이 차를 몰고 진한과 민영을 뒷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정우를 옆 좌석에 태웠다. 그들의 겨울 여행이 시작되었다. 정우가 풀 죽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한테 죄송해 죽는 줄. 아기 봐야 하는 날인데 밤샘 과제 있다고 거짓말하고 나왔네.”

“형도 좀 즐겨야지.”


“잘한 건지 모르겠다.”


민영이 정우에게 귀여운 피카추 인형을 주었다. 누르면 ‘달링, 알러뷰’라고 소리가 나는 인형이었다.


“아이 갖다주면 좋아할 것 같아요.”


민영은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성격이었다.


“고마워요. 이민영 양.”


진한은 또 뭐가 그리 흐뭇한지 아빠 미소를 지었다.


민영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싸 온 샌드위치를 건넸다.


“간식 좀 싸 왔는데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우와! 화장하기도 바빴을 텐데 준비하느라 고생했겠네.”


우빈은 은근슬쩍 민영에게 말을 놓았다.


“야, 너는 형수님한테 벌써 반말이냐?”

“우웩. 형수는 무슨 형수냐!”


정우가 닭살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티를 냈다.


“잘 먹을게요.”


정우는 아침밥을 거른 탓에 배가 아주 고팠다. 민영이 건넨 샌드위치 포장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급하게 먹고 있는데 양상추와 토마토 사이의 마찰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그것들이 주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케첩과 마요네즈, 소스로 범벅이 된 재료들이 우빈의 고급 차 시트에 묻고 말았다. 정우는 눈치를 살폈다. 우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조수석 앞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형, 거기 휴지로 닦아.”

“응. 미안.”


정우는 거기서 휴지를 꺼내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게 되었다. 액자였다. 사진 속에는 우빈과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우빈이 못 잊는 그녀 같았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며 글로브 박스를 닫았다. 정우는 시트와 바닥에 떨어진 내용물을 치우며 슬쩍 우빈을 보았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펜션에 거의 다 와 갈 무렵, 그들은 그들을 기다려준 붉은 태양과 마주했다.


“우와! 너무 아름다워.”


민영이 진한을 바라보며 황홀한 눈빛을 쏘아댔다. 정우와 우빈도 일몰을 보고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남자 둘은 아무 말은 없었지만 이미 취했다. 소주를 마셨을 때보다 더 취해버렸다. 우빈은 운전을 더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몰이 보이는 최고의 전망 앞에 차를 대었다. 어차피 거기가 고급 펜션의 주차장이었다.


“우리 내려서 일몰 좀 보고 가자. 사진도 좀 찍고.”

“먼저 나가 있어. 나 운동화 좀 신고.”


정우는 시간을 끌면서 우빈이 멀어질 때쯤 글로브 박스를 열어 그녀를 확인했다.


“이야~ 잘생긴 놈들은 예쁜 여자도 잘 사귀는구나.”


연예인을 닮은 그녀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못 잊을 만하네.”


밖에서 정우를 부르는 소리에 정우는 후다닥 사진을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정우는 우빈에게 살짝 짠한 마음이 생겼다. 잘생긴 남자한테 애처로움이 생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형~ 빨리 와!”


우빈이 황홀한 일몰을 함께 보려고 정우를 불렀다. 정우는 온 힘을 다해 우빈에게 달려가 백허그를 날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한이 말했다.


“이제 형까지 미쳐가는군.”


일몰을 바라보던 4명은 불그스름한 빛을 내뿜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멀어져가는 태양을 보며 일렁이고 있었다. 진한과 민영은 뜨거운 사랑을 꿈꾸었고 우빈과 정우도 뜨거운 우정을 꿈꾸었다.


저녁을 먹고 소맥 파티가 열렸다. 진한은 정확한 비율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화려한 쇼를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민영은 홀딱 빠져버렸다. 둘은 정우와 우빈의 눈이 반쯤 감길 때면 손바닥에 ‘I love you’를 그리거나 허리를 서로 감싸기도 했다. 그 짜릿한 시간을 즐겼다. 이쯤 되면 정우랑 우빈이 사라져 줘야 하는데 그들도 할 말이 많았다.


“우빈아, 너는 좋겠다.”

“형도 좋겠다.”


“나는 왜?”

“형은 가게도 있고 나도 있잖아.”


“이 쉐끼, 적당히 좀 하자. 남들이 보면 진짜 사귀는 줄 알아.”

“어떻게 나한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우빈은 여전히 장난으로 진실게임을 피해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야, 너는 웃지만 말고 진지하게 말해봐.”

“뭘? 궁금한 게 뭐야?”


“너 인마, 왜 멀쩡하게 생겨서 여자 안 사귀어?”


정우가 오징어 안주를 씹어먹으며 우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안 사귀는 거 아니고 못 사귀는 거야. 나 좋다는 사람이 없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옆에서 듣고 있던 진한이 끼어들었다.


“형, 그만 말해. 얘는 아직 첫사랑 못 잊고 있어.”


우빈이 술잔을 들이켰다.


“아주 애틋했나 보군.”


정우도 술잔을 들이켰다. 어색해진 민영은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 셋은 그 이후에도 계속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뭔가 울컥했는지 우빈이 울기 시작했다.


“야, 정우빈. 얀마.”


진한이 우빈을 툭툭 쳤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정우가 나설 차례였다. 정우는 그의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쭉 찢었다.


“웃어! 웃어! 너는 웃어야 해!”

“형, 왜 그래?”


진한이 정우의 술주정을 말렸다.


“얘 안 웃잖아. 속상하게.”

“우빈이 그냥 내버려 둬.”


진한이 정우를 계속 뜯어말렸다.


“니가 웃어야 나도 웃지.”


정우는 고개를 떨구며 그대로 방바닥에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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