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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솔로, 방 탈출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15. 솔로, 방 탈출


진한 형제는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로 분주했다. 호프집에서 연말 행사를 열기로 했다. 동아리 멤버와 그들의 지인을 불러 12월 24일 저녁 6시부터 신나게 놀기로 했다.

정우가 돈을 내려놓고 사람을 택했다. 장사도 내부 구성원의 친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진한의 말에 수긍했다.


진한은 술 마시면 끝을 보는 지영을 초대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과 친구이자 포차에서 함께 순대를 먹었던 민영을 꼭 데려오라고 당부했다.

우빈은 과 친구인 쓰레기와 우영을 초대했다. 그리고 정우는 세종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냈다.


진한의 동생 진오가 특기를 살려 레크레이션 진행을 맡았다.


“호프집이 개업한 지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물심양면으로 힘써 주신 덕분에 드디어 손익분기점 코앞까지 왔습니다. 아직 추 사장님의 경제적 자립까지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내년도 힘을 내보자는 의미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장님, 한 말씀 하시죠.”


정우는 뻘쭘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갔다.


“오늘 먹고 죽자! 치얼스~"


정우는 축배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진한과 우빈이 초대한 친구들은 모두 왔는데 정우가 초대한 세종만 오지 않았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망하기는 했다.

진한이 뒤이어 말했다.


“오늘은 2명이 짝을 지어서 하는 게임입니다. 문제를 풀어야만 나올 수 있는 방 탈출 게임을 준비해 봤습니다. 어떠신가요?”

“좋아요! 유후~”


“상금은 현금 30만 원! 추 사장님이 특별히 찬조하기로 했습니다. 단, 연결된 커플은 이 돈을 1박 2일 여행경비로 써야 합니다. 추후 영수증 꼭 제출해야 합니다. 헤헤헤.”


일주일 후면 스무 살, 성인이 되는 진오는 누구보다 어른처럼 행동했다. 추 사장과 사전에 상의하지 않은 돈 얘기에, 발라당 까진 얘기까지 거침없었다.


커플을 정하는 방법은 민망했지만, 사랑의 작대기로 하기로 했다.


“그럼 커플을 정해볼까요?”

“제비뽑기해서 나온 번호 순서대로 상대를 고를 수 있습니다. 상대가 받아들이면 커플이 되고 거절하면 다음 번호로 기회는 넘어갑니다.”


“두구두구두구! 하나씩 뽑아주세요.”


모두 긴장되는 분위기에서 숫자가 적힌 쪽지를 뽑았다. 진한의 얼굴이 달빛처럼 부끄럽게 환해졌다.


“내가 1번이네.”


진오가 작대기를 진한에게 건넸다. 진한은 쑥스러우면 나오는 고개 돌림을 한번 하고는 민영을 향해 작대기를 쭉 뻗었다. 그녀도 좋은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엄지와 검지를 말아 동그라미 사인을 했다.


“그럼 진한-민영 커플 탄생.”


뭔가 훈훈한 커플이었다.


“내가 2번이야.”


지영이가 말했다. 진오가 한껏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배지영 님의 선택은?”


지영은 우빈의 친구인 우영을 향해 작대기를 뻗었다. 우영의 표정은 알쏭달쏭했다. 우영은 작대기 끝을 조심히 내리며 거절했다.


“미안. 내가 술도 약하고 허리도 좀 약해서.”

“정우빈! 니가 소문내고 다니냐? 하하하.”


지영은 우영이 마음에 들었는데 거절을 당하니 무안했다. 애써 노래로 싸해진 분위기를 흐트러뜨렸다. 지영은 성격이 걸걸하니 좋았다.


“총 맞은 것처럼~ ♪♪”


우빈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얼른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3번.”

“지고지순한 순정남 우빈의 선택은?”


우빈은 방 탈출 게임엔 관심이 없어 다른 소파에 앉아있던 정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정우형.”

“나? 또 왜?”


추운 겨울이 되면 만사가 귀찮은 정우에게 방 탈출 게임은 노동이었는데 우빈이 자신을 끌어들여 정우는 피곤이 몰려왔다.


“형, 나랑 하는 거다. 우리 둘이 커플 하는 거다.”


정우가 작대기를 다른 쪽으로 밀어버렸음에도 우빈과 정우는 커플이 되었다. 남은 쓰레기와 지영이 커플이 되었고 우영은 안주를 내어 오겠다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방 탈출 게임이 시작되었다. 커플은 총 세 커플. 진한-민영(♥), 우빈-정우(♠), 쓰레기-지영(♣)이었다. 방은 총 세 개였다. 주방, 창고, 화장실이었다. ♥커플은 창고, ♠커플은 화장실, ♣커플은 주방이 배정되었다. 주어진 시간은 40분이었다. 그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를 풀고 밖으로 먼저 나오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지영은 쓰레기보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우영에게 더 관심이 가서 ♣커플은 퀴즈 푸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뇌섹남 진한에게는 1등의 자리와 상금이 모두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커플도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상금보다는 빨리 화장실 똥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상 ♥와 ♠의 싸움이었다.


화장실에서 정우와 우빈은 하나가 되었다.


“형, 이거 암호 해독해 봐.”

“잠시만.”


정우는 소싯적 수학 영재의 눈빛으로 돌아갔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매트릭스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우빈이 기대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창고에선 민영이 진한에게 의지했다.


“진한아, 난 이런 퀴즈는 자신이 없어.”


민영이 눈을 끔뻑이며 진한을 올려 보았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우리가 1등이야.”


진한이 자신만만한 기세로 민영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두 팀 모두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집중했다.


마지막 관문인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진한과 민영이 있던 창고 문이 열렸다. 그때 정우와 우빈의 화장실 문도 동시에 열렸다. 우빈은 환호하려다 말고 진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너!”


진한과 민영은 손을 꼭 잡고 추켜올리며 환호했다. 진짜 커플의 모습이었다. 둘은 서로를 한껏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정우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소파 자리로 갔다.


“정우 형, 우리도 1등이야. 공동 1등.”

“그러거나 말거나.”


“아~ 형! 기쁘지 않아?”

“기뻐. 좋아.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거.”


정우는 공동 1등이라는 그 기쁨보다 진한이 커플이 된 것 같아 우울감이 밀려왔다. 둘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푸들 같은 민영이 진한의 무거운 하루하루를 밝게 해줄 것만 같았다. 마음에 찬 바람이 불었지만 그런데도 둘이 잘 되게 빌어 주었다. 비밀 서약서도 찢어버려야 했다.


정우는 우빈에게 상금의 반인 15만 원을, 민영에게 상금의 반인 15만 원을 주었다.


“형, 우리 커플끼리 여행 가는 거 어때?”

“정우빈, 언제 정신 차릴래? 너 그냥 여자 사귀어라.”


“아~ 형!”

“너는 쒸레기가 왜 좋냐? 곱게 자라서 세상 물정을 모르네.”


“좋은데 이유 있어? 히히.”


우빈은 진한을 보면서 얘기했다.


“진한! 우리 커플이랑 너희 커플같이 여행 가자.”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깊도록 우빈은 정우에게,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웃음을 무한으로 퍼주고 있었다.

‘나 곧 군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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