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 추억은 추억 속에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25. 추억은 추억 속에


호프집 계산대 앞에 있던 정우의 전화벨이 울렸다.


“오~”


정우는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게 누구십니까?”

몽골신기 리더, 원추지우입니다.”


“흐흐. 잘 지내나 보네.”

“추 사장 후원금으로 잘 버티고 있습니다.”


통화 상대는 몽골로 봉사를 떠난 지우였다. 초원 위의 그녀는 다시 생기를 찾은 얼굴이었다.


“몽골은 있을 만해?”

“좋아. 추 사장도 잘 있지?”


“나야 아주 잘 지내지.”

“핸섬 가이즈 애들도 다 잘 지내?”


“잘 지내지.”

“진한인?”


“ROTC 군기가 빠져서 맨날 여기서 술이야.”

“우빈은?”


“우빈인 지금 여기서 소개팅 중. 진한이가 시켜줬어.”

“그래? 잘 됐으면 좋겠네.”


잠시 지우가 뜸을 들였다. 정우가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누가 궁금하길래 이리 뱅뱅 돌려?”

“뭘?”


“세종은 여기 없어, 요즘 안 와.”

“음.”


지우는 살짝 어색한 기분에 옆을 지나가던 다른 봉사자를 보여주었다.


“여긴 중국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인사해.”

“안녕하세요. 추정우라고 합니다.”


정우가 말을 건네자 영상 속 그녀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우 언니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봉사활동 지원도 해주시고. 좋은 분이라고요.”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정우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화장실을 가던 진한이 정우의 휴대폰 화면을 보게 되었다. 진한은 흠칫 놀랐다. 볼일도 잊은 채 소개팅 중인 우빈에게로 갔다.


“너 잠시만 나와 봐.”

“왜?”


“일단 와 봐.”


진한은 우빈을 끌어 정우 쪽으로 데려갔고 영상 화면을 보려던 찰나, 정우가 통화를 끝냈다.


“형, 벌써 끊었어?”

“왜?”


진한은 아쉬워했고 정우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우빈이 물었다.


“왜? 누구였는데?”

“지우 누나였지. 일단 저쪽으로 가서 하던 일 계속해.”


“뭐야, 싱겁게.”


진한은 우빈을 다시 소개팅 자리로 보내고 정우를 끌어서 구석진 자리로 데려갔다.


“형! 지우 누나한테 그 옆에 있던 여자 이름 좀 물어봐 줘.”

“왜?”


“그냥.”

“아는 사람이야? 나도 낯이 익어.”


“그냥 이름만 물어봐. 아니면 내가 물어봐?”


정우는 지우에게 물어 그녀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중국에 가서 공부 중인 ‘주해인’이라 했다.

정우도 그때 뭔가 떠올랐다.


“야! 저 여자 정우빈 첫사랑, 그 여자 맞지?”


정우는 우빈의 차 글로브 박스 안 액자 속 그녀를 떠올렸다.


“조용해. 형. 일단 우빈이에게는 비밀이야.”


정우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다음날, 우빈을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형, 왜?”

“어제 소개팅은 어땠어?”


“뭐, 그냥 그래.”

“너 몽골 좀 다녀와.”


“지우 누나 있는 곳 말하는 거야?”

“응.”


“거길 내가 왜?”

“너도 가서 도와. 방학이라 할 일도 없잖아.”


“그렇긴 해도. 수의학과 동아리 봉사활동에 내가 왜 가?”

“지우가 손이 모자라대. 너 보낸다고 했어.”


“뭔 소리야? 개해빵과 핸섬 가이즈를 헷갈리지 마. 난 경제학 동아리 소속이라고.”

“내가 편도 항공권은 끊어줄게.”


“아니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굳이 내가 거길 왜 가야 하나 싶어서.”

“가야 해. 지구 평화와 너의 안녕을 위해.”


“무슨 소릴 하는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우의 메마른 가슴에도 사랑이 꽃피기 시작했다.

정우는 대책 없이 우빈의 몽골행을 밀어붙였다. 그 추진력이 양력이 되어 어느덧 우빈은 울란바토르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그에게 몽골은 처음이라 나름 설레었다. 비행기 좌석에 자리 잡고 뒤를 돌아보니 아는 얼굴이 있었다.


“온세종!”


그도 우빈을 보고 놀랐다.


“어!”

“너 어디 가? 혹시 지우 누나 보러 가?”


“아마.”


‘역시 둘이 뭔가 있는 게 확실해.’


둘은 착륙 후, 줄곧 함께했다. 같은 목적지로 향했다. 우빈과 세종은 정우가 알려준 개해빵 멤버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곳으로 갔다.


봉사활동을 하는 그곳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백신 접종과 치료로 다들 분주했다. 거기서 벙거지를 쓰고 말들에게 주사를 놓고 있던 지우를 발견했다. 우빈이 지우를 큰 소리로 불렀다.


“지우 누나!”


뒤돌아본 지우는 둘을 번갈아 보며 쳐다보았다. 지우는 함박웃음으로 그 둘을 반겼다.


“여긴 어쩐 일이야?”

“누나가 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


우빈이 의아한 듯 지우에게 물었고 세종은 지우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당신 좋아 보이네. 여기가 좋구나.’


지우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고 그들 쪽으로 걸어갔다.

장갑을 벗고 그들을 봉사단 베이스캠프 쪽으로 데리고 갔다. 베이스캠프에 들어간 지우는 함께 하는 봉사단원들에게 우빈과 세종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대국대 잘생긴 남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명품 경제학 동아리, 핸섬 가이즈의 온세종, 정우빈이야. 그리고 이쪽은 대국대 개해빵 친구들과 중국에서 우리를 도와주러 온 학생들이고. 편하게 인사 나눠.”


우빈은 십여 명이 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다 한 여자를 보고 멈칫했다. 그건 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는 4년 만이었다.


바쁜 일이 있던 봉사단원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고 지우와 세종, 우빈과 그 여자만 남았다. 지우가 그 여자에게 말했다.


“해인아, 우빈이에게 이곳 소개 좀 해주고 있어. 나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지우가 나가자 세종도 따라 나갔다.

베이스캠프에는 우빈과 해인 둘이 남았다. 해인이 먼저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여기서 널 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나도. 잘 지냈지?”

“그럭저럭.”


우빈은 한순간도 해인을 잊은 적 없었다.


해인은 풋풋한 고교 시절 첫사랑이었다. 먼저 사귀자고 말한 쪽은 우빈이었다. 머뭇거리는 해인에게 우빈이 끈질기게 설득했다. 구애했다. 그런데 해인을 외롭게 했다. 우빈이 해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해인은 외로움이 커졌다. 결국 해인은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중국으로 떠났다. 이혼한 엄마를 따라 우빈이 없는 곳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둘의 대화가 서먹해질 무렵, 한 중국인 남학생이 베이스캠프로 들어왔다. 그 남학생은 해인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며 다가갔다. 중국어로 서로 대화를 하더니 그 남학생은 우빈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밖으로 나갔다. 해인이 우빈에게 말했다.


“내 남자친구야.”

“아···.”


“사귀는 사람 있지? 늘 인기 많았잖아.”

“그럼. 나야 늘 그랬지.”


“그럴 것 같았어.”

“그럴 것 같았구나. 내가.”


우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아, 지우 누나 봉사하는 거 도와주러.”


“그랬구나.”

“응.”


“우리 팀은 내일 중국으로 떠나.”

“내일?”


“인사 못 하고 갈 거야.”

“응.”


“잘 가.”

“응. 너도 잘 지내.”


해인은 그리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우빈은 그렇게 기다리던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보냈다.

‘추억은 추억 속에 고이 넣어둘게.’

keyword
이전 25화24. 끝도 시작도 힘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