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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겨울의 봄 05화

05. 주원과 태현

by 백수광부

카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경치 좋은 테이블 쪽으로 가서 자동차 키, 담배, 클러치백을 올려두곤 알바생쪽을 보며 말했다.


“여기 해장라면이랑 아아.”


알바생은 아무 말 없이 메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따로 계산 요청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가희가 겨울에게 조용히 말했다.


“무례한 무뢰한 캐릭터 등장?”

“그러게. 근데 서 작가님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 아는 사람인가 봐.”


“근데, 넌 왜 저 알바생이 서 작가님이라고 생각한 거야?”

“단서가 있지.”


“뭔데?”


가희는 겨울이 말한 단서가 무엇일지 궁금해서 자꾸 알바생을 쳐다보게 되었다.


앞치마를 입고 차분하게 머신을 다루는 커피 프린스.
앞머리를 살짝씩 넘길 때 포착한 긴 손가락.
말보다 글이 어울리는 성숙한 무표정.


알바생은 태현에게 라면과 아아를 내려놓고 말없이 돌아섰다. 태현은 배가 고팠는지 다 익기도 전에 컵라면을 휘휘 젓더니 금세 먹어치웠다.


“끄으윽~


태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랑찰랑 얼음 부딪히는 소리는 제법 컸다. 태현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서 작가, 좋은 소식 있던데.”

“···.”


“왜 나만 몰랐을까?”


주원은 태현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컵을 정리하고 있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 그랬던가?”

“···.”


“근데 서 작가는 꼭 슬플 때만 찾아와. 나까지 피곤하게.”


주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뒤돌아 태현을 쏘아봤다.


“조용히 좀 하지? 장사 안되면 너도 손해잖아.”

“주제에 누굴 걱정해?”


주원이 대꾸 없이 다시 컵 정리를 시작하자, 태현은 겨울과 가희 쪽으로 다가갔다.


“아가씨들, 책 좀 읽나?”


태현의 건들거리는 모습에 겨울과 가희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나가서 얘기해!”


주원은 태현을 데리고 매점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태현은 계속 비꼬듯 주원을 몰아붙였다.


“책 팔아서 번 돈을 혼자 꿀꺽하시겠다?”

“카페 수입 챙겨가는 걸로도 모자라?”


그건 여기서 먹고 자는 조건으로 아버지 대신 내가 수금하는 거고.”

“이모부는 모르시잖아!”


“이 새끼가 미쳤나? 누가 니 이모부야?”

“···.”


“니 동생 우리 집에서 돌보는 건 생각 안 하냐?”

“사실 나보다 너랑 더 가까운 사이 아닌가?”


태현이 자극하는 바람에 주원의 입에서 못난 말이 나가버렸다.


“불쌍한 놈 거둬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카페 안에서는 둘의 대화가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심각해 보이는 얼굴 표정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둘은 보통 사이가 아닌 관계라는 걸 말이다.


태현은 흥분한 채 계속 주원에게 퍼부었다.


“우리 이모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괜히 재수 없는 인간들이랑 엮여서는.”


주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자가 어떻길래 옆에 있는 사람이 다 죽어 나가?”

“···.”


“아버지가 문제야? 아들이 문제야?”


유리문 밖에서 큰소리가 들릴 때마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어들이 두 작가지망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만 함부로 궁금해서는 안 될 개인사 같아서 둘 중 어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가희도 직감했다.

알바생이 서주원 작가임을.


소설 속 화자와 눈앞의 그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기저에 깔린 슬픔의 발자국들.
울음을 멈추고 다가간 그 발걸음이 또다시 슬픔이 되어 흩어져버리는 장면.
신비롭게 묘사하려 꾹꾹 써 내려간 흔적.



“우리 그냥 오늘은 돌아가자.”


겨울은 주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오늘 인터뷰를 포기하자고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희는 카운터 앞 쪽으로 다가가서 노란 메모지와 펜을 꺼내 들었다.


작가님.
작가님 소설을 읽고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을 달려온 두 여학생을 위해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기다리겠습니다.

010-1234-1234


“됐다.

가희는 서 작가에게 회신을 올 거라며 겨울을 안심시켰다. 둘은 나와서 겨울바다를 마냥 걸었다.


‘바닷속은 얼마나 깊은 걸까?’


겨울은 자꾸만 스산하게도 심해의 캄캄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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