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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Sep 19. 2024

#13. 나의 소울메이트, HH

*소설입니다.





 HH와의 이야기

 #1. 대학시절 남자 사람 친구


“내가 1등! 와하하. 맞죠?”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이었어. 술 마시기 대결에서 내가 1등을 했어. 큰 의미는 없는 대결이지만 1등은 내게 의미가 있었어. 누구에게 지기 싫어하고 튀고 싶은 기질이 있었거든.


서비스로 나온 부추전을 쭉 찢어 한 젓가락을 입에 집어넣었어.


"기분 조~~오~~타."


남은 이들에게 '나 간다'며 손을 흔들며 멋있게 민속주점을 나오려 했어. 걱정이 된 선배들은 나를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면서 으름장을 놓았어. 취할 정도로 마시고 안 취하는 쎈 캐릭터가 되고 싶었거든.


"나, 안 취해써요! 안 취해따고요! 꺽~"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땅은 자꾸 솟아오르고 뱃속에선 일촉즉발의 울렁임이 시작되었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구석진 곳으로 몸을 피해야 했어. 다행히 근처에 놀이터가 있었고 그곳의 공중화장실로 급하게 들어갔지.  


"우웩~ 우웩~ 허~~ (오글오글) 퉤."


결국은 마지막에 먹은 부추전을 시작으로 뱃속의 모든 것을 말끔히 토해내고야 말았지. 위산이 내 목구멍을 다 녹여버릴 것만 같았어. 마시느라 지치고 토하느라 지쳐버린 난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놀이터 벤치에 기댔어.


술을 다 게워내면 일어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고통받던 위와 식도가 쉴 동안, 팔과 다리도 쉬어야 했어. 그렇지만 백수민 자존심에 뇌를 놓을 수는 없었어.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꺼냈어. 나의 치부를 보여줘도 괜찮을 만큼 편한 너에게 전화를 했어. 너는 내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다시 든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내 옆에 와 있었어.  


“어이~ 칭구. 언제 왔능가?”

"어휴~ 술 냄새."


나는 옆에 앉은 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제정신인 척을 했지.


"이 몸이 또 오늘 1등을 해쓰~."

“속 아프다면서 매번 왜 이렇게 마셔!”


너는 그날따라 화가 많이 난 것 같았어. 그래도 그때 나에겐 너뿐이었어. 나를 부탁할 수 있는 듬직한 친구는 말이야.


“어, 화니가 화를 내네.”


발음이 꼬일 때면 너를 '화니'라고 불렀지. 술 취할 때 너를 부르는 애칭 같은 것이었어.


정신 좀 차려봐.”


나는 네가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긴장이 풀렸어. 스르르 졸음이 밀려왔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머리는 자꾸 네 쪽을 향했어. 중력 방향으로 쏟아지는 내 머리가 너의 팔에 턱 하고 걸리곤 했지. 그럴 때면 너는 내 머리를 들어 너의 어깨에 걸쳐 놓았어.


10초 후면 내 머리는 네 어깨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지. 그러면 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기댈 수 있게 등을 돌려세워 주었어. 나는 너의 등에 기대고 벤치의 팔걸이에 다리를 올린 자세로 편안히 쉴 수 있었어. 온기가 느껴져 노곤해질 때면 이내 잠이 들었던 것 같아.


너와 함께 있으면
20대의 방황들이
가벼운 꽃잎이 되어
멀리 날아가버렸어.





 HH와의 이야기
 #2. 너를 잃어버린 시간


너와 나는 유치원 때 동무처럼 남자와 여자라는 생각 없이 사람 대 사람, 친구 대 친구로 친하게 지냈지. 우리 둘은 밥을 함께 먹고 고민이 있을 때는 술도 둘이 마셨지.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너를 불러 노래방에 가서 현정 언니, 찬휘 언니를 소환했지.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을 때는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했고 겉옷을 번갈아가며 걸치기도 했지. 주변 친구들이 너와 나의 관계를 의심할 때면 나는 펄쩍 뛰었어. 나는 너를 가까이 오래 두고 싶었기에 선을 잘 지키는 중이었고 너를 헷갈리게 하지도 않았어. 적어도 나는 그때 우리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어.     


어느 날, 하연이가 물었어.

  

“너 환한이 남자로서 좋아해?”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진짜지?”

“진짜 아니야. 서로 잘 통하는 친구야.”


“그럼 편하게 말해도 되겠다.”

“뭘?”


“나 정식으로 소개해 주라.”

“어? 너 환한이 좋아했어?”


처음엔 그냥 그랬는데 자꾸 보니 좋아져.”

“그런가?”


“환한이가 네 스타일은 아니지. 나랑 잘 되게 밀어주는 거지?”

“그래.”


분명 이상한 감정이었어. 손에 움켜쥐고 있던 사탕을 뺏기는 느낌이랄까? 둘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본다면 조금 질투가 날 것 같았어. 하지만 소개를 시켜주지 않을 명분이 없어 둘을 연결해 주었지. 싫다던 너도 결국 하연이의 적극적인 모습에 넘어갔어. 괜한 심통이 나서 사실 네가 꼴도 보기 싫었어.


둘이 사귄 이후로 쉽게 너에게 전화하지 못했지.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너에게 전하지 못했어.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술에 취한 날에도 너를 ‘화니’라고 부르지 않았어.


나와 너는 자연스레 멀어졌지. 너도 하연이와 오래가지는 못하고 헤어졌어. 내가 결혼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친구들 통해 소식을 들었지. 너도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했다고. 그게 너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어.    




 HH와의 이야기
 #3. 네가 그리운 날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니?

이름처럼 환하게 잘 살고 있지?

나처럼 이리저리 치인 상처투성이는 아니겠지?     


운이 아주 좋다고 생각한 오늘,

너처럼 생긴 누군가를 보았어.

뛰는 모습까지 비슷해 순간 너로 착각했어.

만나면 무척 반가울 줄 알았는데

나는 그만 숨어버렸어.

대뇌가 관여하지 않은 무조건반사였던 것 같아.  

왜 그랬을까?


친구야, 나는 오늘 너를 피했지만

사실은 많이 보고 싶어.

그냥 나 지금 조금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너무 많아.

네가 환하게 웃어주면 나 다시 힘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블로그에 비공개로 글을 저장하고는 불을 껐다. 밤이라 그런지 감상에 젖어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 지금 왜 이러는 거야? 별 사이도 아니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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