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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서원 Oct 14. 2024

아는 게 병이더라

고객은 결코 기절하지 않는다

연륜인지 경험인지 자영업 20년에 미약하게나마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보는 식견이 생겼다. 한마디로 통칭하자면 아는 게 병이다. 가업을 물려받음도 우연은 없었다. 숙명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가업의 다음 주자는  남편과 나의 결혼이 있기 전부터  이미 발효가 되는 숙성의 기간을 거고 있었다. 나라는 개인이 철없이 맹한 순수를 가졌었고  운명과 만나 기어이 숙명이 된 인생이야기는 이미 내 삶의 일부이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이 한 마음으로 식당을 받았다. 아무것도 몰라도, 무엇이든 정성껏 하면 모두 통할 것 같아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던 20년이었다. 부모님 때부터 원래 잘 되던 가게였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최소한 세 아이를 키우는데 경제적인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맨발, 맨손으로 첫발을 디뎠었다. 오늘도 내일도 나가면 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운명에 뛰어들었다.





자영업이란 굴레는 1인 마케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업주가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는 단순한 구조다. 하지만 그 '하는 만큼'이란 내용 안에는 시대적 흐름은 눈꼽만큼도 적용되지 않았다. 식당이라는 특화된 직종에서 요즘같이 대고는 아니지만 탄수화물이 현대인의 밥상에서 서서히 수요가 줄어들던 시점이었다.


마케팅의 성패가 고객감동을 넘어 고객 기절의 경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대로 가고 있다. 마법이라도 갖다 써야 통하는 시대적 흐름자 뼈아픈 요구다. 1980년대부터 이미 고객은 왕이었다. 어떤 업에서는 고객보다 낮은 자세로 두 무릎을 꿇고 주문서에 체킹을 받는 시대더라. 명분은 그럴듯했다. 내가 손님으로 갔을 때도 기분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이유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는 이해관계가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러면서  점  업주 개개인의 주체성이 사라지고 적당히 평준화된 체인점이 즐비해졌다. 마케팅의 꽃 '공정거래'가 아니었던가?  내가 지불한 금액에 맞는 대가를  취득하는 것이 서로에게 마땅한 관계성립이다. 줄 것을 주고받을 것을 받는다는 것은 옳은 일이기에 앞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어땠을까. 주종목 외의 어떤 덤으로 얻는 것에 더 재미를 이기 시작했고  길들여졌다. 그런 이유로  업주는 손님을 당기기 위해 인에 소홀해지며 에만 현란한 것들로 아부를 뜬다. 그것은 곧 앞에서 남는 것 같아도 뒤에 가서는 밑지는 장사의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헛된 것에 비용을 지불하면 식대는 오를 수밖에 없다.





고객은 언제나 새로움을 요구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는 그런 위치다. 업주는 인 메뉴의 전통과 맛을 지키는 게 마땅한 본분이 아닐까. 20년을 상거래의 중심에 있어보고 깨달은 것은 주객이 바뀐 식문화로 건강한 먹거리가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케팅의 변질된 흐름 앞에서도 소중한 전통을 지키고자 했다. 그때 밥값이 6천 원이었을 때의 일이다. 가성비가 좋았었다는 이야기를 구구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박리다매로 고객과 업주가 서로가 윈윈 했던 시절 좋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식당이란 곳은  손님을 끌기보다 양심에 따라 운영하고 한 끼 밥을 먹는 사람의 건강을 염두에 두는 것에 우선해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와는 구별되어야  하기에 직종이 고달프다.


그런 이유로 아는 게 병이 되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어디를 가서 무얼 먹어도 사업장이 눈에 들어오고 운영 시스템이 바로 스캔되어 장단점을 집어낸다.  모르면 죄가 되고 알면 병이 되는 얄궂은 시선을 어쩔 수 없어 한번 훑고 지나가야 된다. 물론 훈수를 두거나 관여하지는 않는다. 했다가는 소금세례를 받을 일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이건 반드시 된다!'라고 생각하고 하는 사람들이다. 안될 것이라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월권을 행사하며 진상을 떨 이유는 없으니 분석하는 장난을 좀 즐길 뿐이다. 이 집은 이걸 좀 손보면 하루 매상이 달라질 텐데, 저 집은 저 부분을 조금만 업그레이드하면 단골과 뜨내기 모두를 잡을 수가 있을 텐데 같은 관전 포인트가 보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3년이면 라면도 끓여야함은 지당한 결과다. 식당 경영 20년에 얻은 식견이 요만하게 작지만 작은 것에 만족한다.  님으로 와서 우리 부부를 애정으로 바라보던 어떤 교포할머니가 생각난다. 부가가치가 높은 장사를 하라고 권하고 가셨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었다. 가업을 잇는 것에 중점을 두던 시절이라 미래를 볼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가진 정황과도 맞지않았다.  훈수도 시절인연이 있어야  꽃이 핀 다는 진리를 그렇게 배워갔. 요즘은 내가 그분의 마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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