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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서원 Sep 30. 2024

도깨비 할아버지

봄 햇살처럼 따뜻했던 그 시간을 소환합니다

지금도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 한 곳이 하늘빛으로 물듭니다. 살면서 타인의 조건 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본다는 건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저에게는 동화 같고 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인연이 있습니다. 힘들고 지루해서 어찌할 방도가 없을 때 오직 우리 편이 되어 우리를 응원하신 분이죠. 저는 그분을 '포대화상'의 현신이라 부릅니다.


도깨비라는 단어 자체가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동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항상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능력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지지부진하다 싶을 만큼 삶의 딜레마에 빠져 자존감으로 겨우 버티고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똑같은 하루가 맥없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그 시작 평범했지만 그 나중은 진한 인연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작고 다부진 체구에 빨간 티셔츠에 품이 큰 짙은 네이비 컬러 반바지, 신발은 슬리퍼를 신고 할아버지 한분이 가게로 들어와 된장을 주문하셨습니다. 전통 재래된장에 밥, 열무 물김치, 배추김치, 미역줄기, 콩나물 무침, 무 생채, 다시마 쌈, 멸치 액젓. 소박한 우리 가게 상차림임에 "나는 된장하고 밥만 있으면 된다" 시며  반찬을 모두 물리고 단 두 가지만 남기고 반납을 하셨습니다. 된장에 나물 비빔밥이 컨셉인 저의 집의 상차림 입니다만 특이하게도 단품 식사를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컨셉으로 드시고 나가셨습니다. 나이가 있으니 치아가 안 좋으신가 보다 했지요. 그 당시 그분의 나이는 80이셨으나 무척 건강해 보였습니다. 이해도를 조금 높이 면 배우 마동석 님의 조금 작은 사이즈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저의 가게는 어른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밥과 찌게이다 보니 밥을 선호하는 연령대가 연장자가 주류였죠. 그렇다 해도 매일 같이 같은 집을 찾아주고 같은 메뉴를 먹는다는 건 그분의 선택이 된장이기도 했지만 그분에게 저희 가게가 편했나 봅니다. 하루하루가 더해갈수록 남편과는 개인적인 사담들을 주고받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며 상호 존중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분과 나와 결정적인 교집합이 생겼습니다. 성씨가 같았죠. 한국사회에서 학연 지연 혈연은 중요한 사건이 되고도 남는 일이기에 관계의 티핑 포인트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흔하지 않은 성씨여서 그 신기함에 서로 놀라워했습니다. 더 신기한 건 친정아버지와 생신도 같은 날짜여서 잊어버릴 수도 없었죠.


80이시니 우리 부부는 거의 자식뻘이었죠.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와 경험들이 시대를 달리해서 들려왔고 그분의 개인적인 삶도 평범하지 않아 신기할 다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생애는 성공적이라 할 만큼 훌륭하셨고 지금 그 여유로운 삶을 살며 세상을 유람하는 중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나이에도 사업장에 그날그날 올라오는 결제를 할 만큼 영향력을 가진 분이셨어요.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딸들이 주말이나 연말에는 종종 가게를 도와주는 일들이 있었기에 가족으로서의 긍정적인 면들을 보고 착하다고 친 손주처럼 예쁜 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이 꿈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2년여를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우리 곁에서 늘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가족을 백화점으로 끌고 다니셨고, '철마'든 어디든 맛있다는 소고기집은 빼놓지 않고 데려갔습니다.  한 번은 가족 전체가 ktx 특실을 이용해 서울 명동까지도 다녀왔으니 그 소소한 것들은 하나하나가 나열이 어려울 뿐입니다. 이 글을 쓰기전에,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들 있으면 다 올려보라고 가족 단톡방에 올렸더니 저마다 좋은 추억을 소환하는 행복한 시간 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우리들의 이야기는 평생을 가며 더욱 추억하게 되겠죠. 한 사람의 영향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우리 모두는 각자 힘 있는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노력들을 합니다.   


만남이 있으니 헤어짐이 있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게일로 붙잡혀 있었고 언제 가는 다시 오시지 않을까를 고대하며 가게를 정리할 때까지도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오신 것처럼 가실 때도 홀연히 가셨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가족처럼 버티고 응원해 주셔서 오늘을 건너올 수 있었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어디에서든 건강하시기를 바래봅니다. 남편의 경직된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시고  삶에서 쉬어갈 언덕이 되어주신 고마운 이었습니다.





그때 그 시간들을 뭐라고 제목 지을 수가 없어 그저 도깨비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의 정서에 나눔과 배품이 어떤 것 인지도 몸소 보여줌으로 선한 영향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빛날 수 있게 현실적으로 응원해 주신 분. 지금도 우리는 신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할아버지를 기억합니다. 아이들도 나눔 하고 기부하는 삶을 거리낌 없이 살고 있고 그 마음은 본인들이 성장할수록 더욱 커지겠죠. 고맙다는 말도 못 전했고 감사했다는 말도 못 전했지만 우리들 마음속엔 항상 도깨비할아버지가 건재함을 이렇게 추억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계시던할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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