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비는 오지 않지만.

by 풀니스

한참을 걷고, 또 걷는다. 생각을 멈추려 또 걷는다.

그렇게 오늘도 만보를 거뜬히 넘긴다. 그렇지만 생각은 좀처럼 멈추질 않고, 덩그라니 남은 억울한 마음.

뭣이 그리 억울하고 답답하냐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모두가 나에게 바라는 것. 누구도 나에게 바라지 않는 마음. 그냥..짜증이다.


밝고 천진한 우리 아들은 나를 닮았다. 나의 또 다른 자아를, 그 아이를 보며 기쁨으로 보듬는다. 내 어두운 이면을, 그 아이가 답습하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나는, 나의 밝음과 해맑음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깊이 없고 피상적으로 웃어 넘기는 모든 순간은, 언제나 허무만을 남긴다.


잘 사는 것. 잘 지내는 것. 그게 뭔지…모르겠다.


엄마가, 중국에 온다고 하신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유독 나에게 심적으로 의지하시는 게 느껴진다. 그걸 나는, 외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르겠다. 엄마의 방문이 나에겐 기다림과 설렘 보다는, 그저 의무와 부담만을 남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살가웠던가. 엄마가 알면, 유리멘탈 엄마의 마음이 산산조각 날 것임을 알기에, 그저 무뚝뚝한 감정표현이란 허울 뒤로, 마음을 숨겨버린다. 원래는, 5월 내 생일 즈음 오신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제 연락이 와서는, 교회에서 노래 교실 선생님을 맡을 것 같다며, 방문 기간을 옮기는 것에 대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엄마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건,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익숙했던 패턴인지라..딱히 서운함도 아쉬움도 없었다. 그래서 그럼 맡은 일이 끝나고 가을에 오시라고 했다. 내가 서운해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신다. 약속을 어길 때면, 어린 마음의 그 속상함을 제대로 보듬어 준 적 없으면서, 40살 먹은 나에게 이제와 그 마음을 표현하라 하신다. 내 마음..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그러면서 원래대로 5월에 오겠노라 통보하셨다. 교회 일은 못한다고 말했단다. 굳이..그렇게까지 해서 만날 모녀관계였나..?


모든 것이..짜증스럽다.


받는 것 없이 퍼주어야만 하는 일방적이고 불균형한 관계 투성이. 내가 바라는 마음음 절대 얻을 수 없고, 의미 없고 쓸데없는 만남만이 즐비해 있어, 이 모든 게 나를 소진시킨다. 그래서 나는 빛을 잃어만 가고, 다시 회복될 기미를..찾지 못한다.


다가오길래, 살짝 열었던 마음을 굳게 닫아야지, 마음 먹는다. 모든 만남이 그저 피로하다. 나는,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는 텅 빈 마음만이 남았는데, 왜들 그렇게 나에게 바라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은 화수분이 아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더더욱 아니다. 이게 다, 너무 웃어서 그렇다. 나를 가장하고 숨기기에 웃음 보다 좋은 무기는 없지만, 그것이 나를 지치고 또 지치게 한다.


머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잠은..너무 못 자거나, 너무 자거나. 중간이 없다. 수면의 질이 그 하루를 결정해버린다. 왜 못 자냐며 나무라는 말을 할거면, 그냥 조용히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한참을 걷고, 또 걷는다. 생각을 멈추려 또 걷는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걸음은 허무와 불면의 밤을 남긴다. 지옥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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