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의 시작, 오락실

납땜으로 지갑 메꾸기

by chacha

일본에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은 늘 지갑을 먼저 두드렸다.

등록금과 생활비로도 빠듯했으니, 일본어 학원은커녕 교재 한 권 사는 것도 고민스러웠다.

게다가, 그 당시 나는 일본어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유학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그 대신 알게 된 게 바로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한 국가의 청년이 다른 국가에서 일정 기간 동안 체류하면서 여행, 학업, 그리고 합법적인 취업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협정 기반의 비자 프로그램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제도가 따로 있나 싶었다.


문제는 잔고였다.

최소 300만 원.

그 돈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비자를 신청할 수 있었다.

복학과 비자 대기 시간을 생각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달이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도 역시 투잡이 답이었다.


생각보다 알바는 금방 구해졌다.

새로운 일터는 영화관 안 작은 오락실.

영화를 기다리며 게임을 즐기던 공간, 옆에는 지금은 사라진 4D 상영관 ‘맥스라이더’가 붙어 있었다.

나는 부스 안에서 환전도 하고, 기계도 관리했다.

사장님은 서울에서 일주일에 한 번만 오셨으니, 사실상 오락실의 유일한 직원은 나였다.

공부를 장려하셔서 감사하게도 한가한 시간엔 부스 구석 10인치 TV로 <명탐정 코난>을 보며 일본어를 배웠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 인생의 새로운 기술 하나를 얻게 된다.

바로 납땜.


철권은 오락실의 효자였다.

게임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고, 이기려는 외침은 코인 노래방의 샤우팅조차 눌러버렸다.

그만큼 동전 소리도 쏟아졌다.

하지만 단골처럼 고장 나는 건 늘 철권의 버튼.

고객들의 격렬한 필살기를 버티지 못한 버튼은 종종 먹통이 되었다.


효자 상품이 멈추면 가게도 멈췄다.

고장 난 기계는 ‘사용 금지’ 종이를 붙이고 며칠씩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오며 가며 반복하시던 사장님은 지치셨고 결국 내 손에 전기 인두기를 쥐여주셨다.


납을 녹여 전선을 잇는 일.

처음은 두려웠지만, 간단한 수리였기에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기술은 나중에 또 다른 일에서도 써먹게 된다.


복지라고 할 건 없었지만, 맥스라이더는 무제한 탑승이 가능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파산으로 모두가 바빴는데, 엄마를 태워 주면 잠깐이나마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짧은 10분이었지만, 그건 우리 집만의 작은 놀이공원이 되었다.


그렇게 빵집과 오락실을 오가며 돈을 모았고, 결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며 초급 단계이지만 일본어 시험인 N4에도 합격하였다.


지갑을 채우려고 시작한 투잡이었는데, 덤으로 일본어도 배우고, 납땜도 배우고, 인생에 필요한 기묘한 기술들을 챙겨 나왔다.

즉흥적으로 정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나의 첫 독립, 일본 워킹 홀리데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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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