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 하는 편의점 알바생
아키니꾸 월드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무작정 동네를 걸었다.
일본의 시스템을 몰랐던 내게 정보라고는 길 위에 널린 게 전부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운명처럼 가게 문에 붙은 아르바이트 공고를 발견했다.
혹시 모르니 손님으로 가장해 가게를 염탐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로손(LAWSON) 편의점.
할아버지는 언뜻 보아도 깐깐해 보였지만, 계산대에 선 할머니의 미소는 온화했다.
‘여기라면… 해볼 만하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당장 어학당에서 알게 된 부산 언니에게 달려갔다.
일본 생활 1년 차인 언니는 나의 구세주이자 일본어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구인 잡지 뒤에 붙은 무료 이력서와 씨름을 시작했다.
한 글자 틀리면 잡지를 열어 뜯고, 또 틀리면 다시 뜯고, 무려 여섯 권의 잡지를 희생시킨 끝에 나의 첫 공식 이력서가 탄생했다.
연락처는 당연히 언니의 번호로 적었다.
며칠 뒤, 언니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합격 소식이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언니는 면접 전 꽃단장을 해주겠다며 비장하게 가위를 들었다.
“언니만 믿어라, 바로 아이들 맹글어줄게!”
그 결과물이 바로 이거다.
잘라준 건 고마운데 언니가 미웠다.
나는 이 머리를 한 채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 첫 출근을 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은 그렇게,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열렸다.
제1관문: 쉴 수 없다
손님 없으면 의자에 앉아 쉬던 한국 편의점은 잊어야 했다.
이곳에서는 꼿꼿이 서서 튀김을 튀기거나, 얼음을 꺼내 아이스커피 컵을 미리 채워야 했다.
특히 모두가 잠든 심야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은 고역이었다.
극존칭을 써야 했기에 점장님은 출근 전, 옷을 갈아입고 아래의 10문장을 외치도록 하였다.
월급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제2관문: 만능 해결사가 될 것
현금 수납, 담배, 티켓 발권… 편의점은 동네의 작은 주민센터였다.
대부분 자동 이체를 쓰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공과금을 현금으로 내는 손님들이 많아 수도세, 전기세, 인터넷 비용 등 처리하다보면 정신이 없었다.
특히 한국어 지원이 안 되던 시절의 티켓 발권기는 최종 보스급 난이도였다.
나름 나는 친절한 직원이기에 손님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며 발권을 하였다.
특히 ‘주간 소년 점프’가 나오는 월요일은 유독 사람들이 많았다.
시골이라는 특성상, 자주 오는 손님들은 정해져 있었기에 10개월 정도를 일하며 찾아오는 단골들의 얼굴을 익히는 조금씩 친해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본 편의점은 당근도 확실했다.
유니폼은 세탁 업체에서 직접 수거해 빨아줬고, 수백 장에 달하는 담배는 손님들이 번호로 말해주면 숫자만 알면 문제없었다.
나는 빈손으로 출근해 폐기 도시락을 도둑이 챙겨 퇴근했고, 요령도 생겨 점점 효율적인 알바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제3관문: 나를 둘러싼 기묘하고 따뜻한 세계
나의 예상대로 할머니는 천사였다.
한자를 읽지 못하는 나를 위해 계산대 버튼에 히라가나 스티커를 붙여주셨고, 퇴근길에는 항상 폐기 도시락 두 개에 튀김과 디저트까지 바리바리 싸주셨다.
하지만 이 천사 같은 할머니에게는… 아주 독특한 비밀이 있었다.
사람의 ‘기(氣)’로 몸을 치료하는 종교를 믿고 계셨던 것.
나의 퇴근 시간이 되면,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신도들이 탈의실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첫 질문은 항상 같았다.
“어디가 아파? 왼손? 오른손?”
오른손잡이인 나는 늘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할머니들이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 아픈 손을 향해 한 뼘 거리에서 양 손바닥을 뻗었다.
나를 향해 에너지를 쏘는 듯한 그 기묘한 의식은 5분간 이어졌다.
“어때? 몸 나아진 거 같아?”
기대에 찬 할머니들의 눈빛에 나는 “네! 가벼워졌어요!”라고 외쳤다.
모르겠다고 한 순간, 다시 5분간 이어졌기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대답하였다.
정말 잘 모르겠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는 내내 건 강했으니 효과가 있었던 걸로 믿고 싶다.
뭔가가 퉁명스러워 보이던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츤데레’였다.
아르바이트 첫날, 쓰레기를 버리러 창고 문을 여는 나는 대한민국 바퀴벌레와 비교도 안 되는, 날개 달린 거대한 ‘그 녀석’과 마주쳤다.
장수풍뎅이 두 배 크기의 벌레 때문에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손님이 달려와 내 손에서 쓰레기봉투를 채가 대신 버려주었고,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모든 쓰레기를 말없이 버려주셨다.
표현은 안 하셨지만 따뜻한 분이셨다.
시골 편의점은 정이 넘쳤다.
반찬을 싸다 주시는 할머니, 증정품을 건네시는 아저씨, 그리고… 내게 청혼을 한 72세 할아버지도 있었다.
눈이 침침해 나를 필리핀 사람으로 착각하신 그는, 비자를 해결해주겠다며 끈질기게 결혼하자고 했다.
내 인생 첫 프로포즈는 그렇게,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72세 할아버지에게서 받았다.
물론 정중히 거절했다.
2인 1조 근무, 위급할 땐 누르는 호출 버튼,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일본인이었던 환경.
아키니꾸 가게에서 생존을 위해 일본어를 배웠다면, 이곳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일본어를 익혔다.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이곳에 잘 스며들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편의점 라이프에 익숙해질 무렵,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아르바이트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