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을 바꾼 축구
내가 살던 조용한 시골 마을에 기적이 일어났다.
지역 축구팀이 한국인 감독님의 지휘 아래 극적으로 1부 리그로 승격한 것이다.
이 소식은 마을의 자랑이 되었고, 감독님을 따라 젊고 실력 있는 한국인 선수들이 속속 팀에 합류했다.
20대의 훤칠한 청년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순식간에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그들은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선수들의 인기가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팬들은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어 했고, 구단은 그 요청에 응답해 팬 미팅 형식의 특별한 한국어 강좌를 기획했다.
문제는 강사였다.
선수들과 통역사를 포함해 구단 내 한국인은 모두 남자였다.
하지만 팬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그녀들은 여성의 말투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내가 일하던 야키니꾸는 감독님과 선수들이 자주 찾던 가게였다.
구단주님도 좋아하셔서 회식도 자주 하였다.
무급의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야키니꾸의 인연으로 운명처럼 그 기회는 내게로 왔다.
1. 첫 한국어 수업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팬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가 가르쳐야 할 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너무 간단해서 민망할 정도였지만,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설픈 강의에 학생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옆에 있던 선수들에게 달려가 서툰 한국어 말을 걸었다.
선수들은 당황하면서도 기쁘게 웃었다.
이벤트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더 놀라운 것은 시급이었다.
단 세 시간의 수업이었지만, 내가 받은 돈은 당시 나의 한 달치 생활비와 맞먹었다.
(물론 생활비가 적었다)
현금 봉투를 받는 나는 깨달았다.
'한국어가 도움이 되는구나!'
그날의 짜릿한 성공 경험은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2. 나만의 한국어 교실
나는 이모의 가게를 이용했다.
매주 토요일, 이모 가게는 브레이크 타임이 한두어 시간 있었다.
교류회는 있었지만 바쁜 탓에 허물어진 상태였다.
운영하고 싶던 이모는 흔쾌히 가게를 내주었고, 나는 '한국어에 관심 있는 손님 모집'이라는 작은 공고를 가게 문에 붙였다.
그렇게 나의 '토요 한국어 교실'이 시작되었다.
학생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일본인이었다.
정년 퇴직 후 새로운 취미를 찾는 할머니, K-드라마에 푹 빠진 주부, 그리고 축구팀의 열성적인 팬까지.
우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아끼니꾸 가게에 모여 앉았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한국어가 우수하지도 않았고 일본어 역시 자신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고,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눴다.
그들은 가난한 워홀러였던 내게 세상을 보여주었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시켜주었고, 명절에는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집밥을 먹여주었다.
나는 그들의 넘치는 사랑 덕분에, 일본 생활 내내 외로울 틈이 없었다.
덤으로 나는 각 지역에서 온 그들 덕분에 표준어 대신 온갖 종류의 일본 사투리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내 일본어는 점점 더 구수하고 정감 있게 변해갔다.
3. 워킹 홀리데이의 끝
워킹 홀리데이가 끝나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나의 소중한 인연이었던 친구들은 공항까지 데려다주며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타지에서 만난 그 인연들은 단순한 알바나 언어 교환을 넘어, 내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모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동안,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남자친구와는 결국 헤어졌다.
멀어진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졌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응원하며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삶은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 넣는 모양이다.
나는 열심히 타지에서 구르던 그 치열한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그는 나와 같이 빈손으로 와 강제 노동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끼니꾸 가게의 고된 노동과 추억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했고, 웃음 속에 사랑을 키웠다.
그 인연은 지금, 내 옆에서 잠들어 있는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가끔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그때 정말 힘들었지?" 하고 웃으며 말이다.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은 세월과 함께 잘 숙성되어, 이제는 더없이 맛있는 술안주가 되었다.
그렇게 10개월의 워킹 홀리데이가 막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기적 같았다.
작은 시골 마을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들을 선물했다.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내게 미래의 직업과 삶의 동반자를 안겨주었고, 고통은 추억이 되었다.
인연은 가족이 되었다.
낯선 땅에서 보낸 10개월은, 결국 내 운명을 통째로 바꿔 놓은 가장 완벽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