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냄새와 사람 냄새 사이
일본에서의 10개월을 뒤로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손에 쥔 것은 남은 엔화를 탈탈 털어 바꾼 전 재산 20만 원.
완벽한, 그러나 어쩐지 조금은 홀가분한 빈털털이였다.
일본에서의 수입은 꿈과 달리 현실적이었고, 복학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뒀던 통장 역시 시원하게 바닥을 드러난 뒤였다.
계절은 여름이었고, 복학까지는 아직 반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복학 신청을 마친 나는, 텅 빈 통장을 채우기 위해 다시 한 번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의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빵집에서만 4년을 일한 나는 나름 빵 업계의 고급 인력이었다.
그 경력을 믿고 나는 집 근처 던킨 도너츠와 마트 안 로티번 카페에 지원했고, 두 곳 모두 가볍게 합격했다.평일에는 던킨에서, 주말에는 로티번에서.
나의 하루는 다시 달콤하고 고소한 빵 냄새로 가득 찼다.
두 곳 모두 혼자 일하는 작은 매장이었지만, 슬프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지독하게 장사가 안 된다는 것.
손님이 없어 텅 빈 매장을 지키고 있노라면, 사장님들이 왜 다른 부업에 매달리는지 알 것 같았다.
시간이 빌 때마다 매장을 쓸고 닦고 냉장고를 정리했지만, 손님은 늘지 않았다.
특히 주말에 일하던 로티번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사장님은 벌여놓은 다른 사업 때문에 바빠 월급을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나는 내 월급을 만들기 위해, 손님이 낸 현금을 금고에 차곡차곡 모아야 했다.
"사장님, 이번 주 월급은 이걸로 가져갈게요."
주말 이틀 동안 들어온 현금을 세어 내 인건비를 챙기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심지어 재료 발주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내일 금고에 현금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섣불리 주문을 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출근하면 금고에 모인 돈을 들고 마트로 향했다. 그날 팔 빵 재료와 주스용 과일을 조금씩 사 오는 것이 나의 중요한 첫 임무였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벌여놓은 사업들이 많아 수습하기 위해 정신없었는데 내 덕분에 이 가게의 사장님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게 사장과 알바 그 중간 어디쯤의 기묘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꼭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편이다.
이번 무대는 마트였다.
장을 보러 돌아다니는 내게 마트 시식 코너, 어머니들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한 점씩 시식을 얻어 먹으며 좋은 물건들이 있으면 퇴근 길에 구매하었고 어머니들 역시 내가 일하는 카페에 손님으로 오셨다.
나는 그저 팔빵수 재료를 주문하러 온 딸을 조금 더 얻어 드리거나, 갓 구운 빵을 한 조각씩 시식으로 드렸을 뿐인데, 딸과 같은 나이라며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쉬는 시간이 되면 우리는 휴게실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고, 나는 그녀들의 휴대폰 조작법 등을 알려주며 든든한 딸내미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티번 매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의 마트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슬퍼할 틈도 없이, 어머니들은 내 손을 이끌고 마트 안 단기 알바의 신세계로 나를 안내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로티번이 아주머니들과의 수다로 북적였다면, 평일의 던킨 도너츠는 여전히 나의 고요한 섬이었다.
주말 동안의 격렬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쉬게 하는 안식처.
나는 더 이상 손님이 없는 시간을 민망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텅 빈 시간 속에서 나만의 레시피로 맛있는 음료를 만들고, 커피의 깊은 맛을 알아갔다.
그때 친구가 된 커피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이다.
반년의 시간은 그렇게 다시 노동의 감각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개강 날이 다가왔을 때, 내 통장에는 목표했던 학비가 정확히 쌓여 있었다.
완벽한 빵순이로 돌아왔던 나는, 그 여름을 지나며 빵 냄새뿐 아니라 땀과 기름,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뒤섞인, 삶의 또 다른 향기를 알게 되었다.
복학을 위해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계획했던 길에서 살짝 벗어났지만 훨씬 더 단단한 길을 걷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