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아르바이트의 세계
로티번 매장의 셔터가 내려가기도 전, 내 손을 붙잡는 이들이 있었다.
"학생, 우리 일 한번 해볼래?"
그렇게 팥빙수에 팥을 더 얹어드렸던 인연이, 나를 마트 단기 알바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상품 별로 담당자가 정해져있었고 나는 마트 이모님의 소개로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제품 설명은 메일은 전화로 전달 받았다.
제품에 따라 일하는 마트가 달라진 덕에, 국내 3사의 교육을 모두 이수하였고 덕분에 어디든 출동 가능하였다.
마트별로 다른 휴게실 구조와 밥맛을 비교하는 건, 로티번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소소한 재미였다.
며칠 뒤 집 앞에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새로운 출근 신호였다.
상자 안에는 유니폼과 앞치마, 위생 입가리개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장비들을 챙겨 마트로 향했고, 미로 같은 매장에서 오늘의 매대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로티번 시절, 얼굴을 익혔던 마트 인맥 덕분에 길 잃은 어린 양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임무는 피스타치오 시식 판매.
소금과 후추로 양념된 피스타치오를 파는 일이었다. 간단해 보였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다.
딱딱한 껍질을 직접 까서 알맹이만 제공해야 한다는 것.
비닐장갑을 끼고 수백 개의 껍질과 씨름하자 엄지손톱 밑이 욱신거려왔다.
하지만 이 고통엔 이유가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손 끝의 아픔은, 주말 3일 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는 순간 짭짤한 소금 맛처럼 짜릿한 쾌감으로 바뀌었다.
사장님 눈치 보며 월급을 만들던 날들과는 차원이 다른,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트 단기 알바의 세계에 완벽히 빠져들었다.
피스타치오의 짠맛을 뒤로하고, 나는 조금 더 화려한 무대로 옮겨갔다.
위스키 시음 코너였다.
내가 맡은 스미노프 피치는 오렌지 주스를 3:1로 섞어주니, 제법 근사한 칵테일이 되었다.
하지만 시음을 시작하며 이곳에서 나는 번화가 술집 사장님들의 고충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 "한 잔만요"를 외치는 앳된 얼굴들, 독한 원액을 그냥 마셔보겠다는 허세를 부리거나, 신분증 검사에 빡빡 우기는 모습은 정말 꼴불견을 부르는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꽤 유능한 판매원이었다.
주말 파티를 계획하는 20대 커플이나 집에서 가볍게 한잔하려는 아버님들을 공략한 덕에 매출은 꽤 좋았고, 본사 담당자들의 칭찬은 덤이었다.
물론 장을 보러 온 막내 삼촌과 우연히 멋쩍게 웃어야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삼촌에게도 한 병 팔았으니까.
마트에서 일하며 대한민국 이벤트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했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초콜릿, 화이트 데이에는 사탕, 빼빼로데이에는 빼빼로를 팔았다.
이런 날은 시식 샘플이 없어도 '이벤트 효과' 덕에 물건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어느새 나는 믿고 맡기는 알바생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발주하고 월급까지 챙겨야 했던 나의 아르바이트가 이 세계에선 유능한 경력이었다.
하지만 내 알바 인생 최대의 고비는 '독일산 프라이팬' 앞에서 찾아왔다.
오래 써도 코팅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명품이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 구경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칼 세트 증정이라는 파격 공약까지 내걸었지만, 그 무겁고 비싼 프라이팬은 나의 처절한 호객 행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3일 내내 매대 위에서 요지부동이었다. 내 알바 인생 최초의 완벽한 패배였다.
여름에는 냉면, 겨울에는 라면을 팔았다.
새로운 요구르트의 세계, 소시지와 튀김도 경험했다. 시식의 세계는 넓고도 다양했다.
직접 조리를 하든, 단순한 소분을 하든, 사은품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팔았다.
덕분에 담당자들의 연락은 더 잦아졌다.
주말마다 다른 유니폼을 입으며 나름의 생존 공식도 보였다.
로티번 시절 휴게실에서 어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배운 지혜가 이곳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위스키 옆에 안주가 있으면 술이 더 잘 팔리는 법.
나는 소시지 코너 어머니와 금세 단짝이 되었다.
서로 화장실 갈 때 매대를 봐주고, 손님에게 서로의 물건을 권했다.
음료 시음을 위해 얼음이 필요할 땐, 수산 코너의 호랑이 같던 부장님께 시식용 주스 한 병을 건네며 얼음 한 바가지를 얻어냈다.
나는 마트라는 작은 사회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관계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 관계를 잘 쌓는 것이 곧 능력이라는 것을.
텃세가 없을 리 없었다.
손님이 내 것과 옆 매대 물건을 고민하다 결국 내 것을 사가면,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일해 주는 일개 알바생일 뿐인데.
그렇게 나는 다시 복학생이 되었다.
평일에는 졸업을 위해 글을 쓰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마트로 출근했다.
1년 전, 완벽한 빈털털이가 되어 한국 땅을 밟았던 나는 이제 지긋지긋한 학점 관리와 시끌벅적한 생활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한 손에는 졸업 작품을 다른 한 손에는 시식용 이쑤시개를 든 채, 나는 졸업을 향해, 그리고 다음 생활비를 향해 단단하게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