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바다 건너에서
드디어 출국일.
인천공항의 출국 게이트를 넘는 순간, 알바머신의 서비스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나는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 새로운 재부팅을 시작했다.
나의 새로운 이름은 시스템 엔지니어.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내가 살던 지방 도시와는 다르게 도쿄는 차원이 다른 정글이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은 폐에 구멍이 났던 전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반년 동안 세 번이나 그 속에서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옆구리의 수술 자국은 전리품이 아니라, 이 도시에서의 생존 난이도를 알려주는 경고등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
석 달 뒤, 연수를 함께 받은 동기들이 합류했고 나의 도쿄 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회사 기숙사 덕에 주거비가 굳었고,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통장에 찍히는 마이너스 대신 플러스 숫자를 보는 건, 꽤나 낯설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게 '안정'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나는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선물을 하나 하기로 했다.
바로 카메라였다.
거금 50만 원을 투자한,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인 블루투스 연결 기능까지 탑재된 제법 똑똑한 녀석이었다.
평온은 알바머신의 모터를 근질거리게 만들었다.
주말이면 나는 카메라를 들고 도쿄 근교를 헤매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골목, 낡은 신사, 동네 빵집의 고양이.
내 시선이 머문 곳들을 사진으로 찍고, 짧은 감상을 덧붙여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가, 내 글과 사진에 작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 낯선 온기가, 나를 다시 뛰게 했다.
‘이걸로 글을 한번 써볼까?’
그 작은 댓글 하나가 도화선이 되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 대기업 포털 사이트의 여행 작가 공모전에 지원서를 넣었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시간순으로 배열하고, 그날의 공기, 냄새,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내 글이 '우수상'으로 덜컥 당선된 것이다.
상금은 없었지만, 소정의 원고료를 받으며 정식으로 글을 연재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일본에 있었기에, 모든 계약은 메일로 진행됐다.
담당자님이 보내준 계약서 파일을 양면으로 인쇄해 책상 위에 펼쳐놓고, 그 가운데에 내 이름 석자와 함께 도장을 찍었다.
TV에서나 보던 장면을 내가 연출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처리하던 수많은 문서 와는 전혀 다른, 오롯이 '나'의 이름으로 맺는 첫 계약이었다.
그렇게 '일본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의 주말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한 편당 원고료는 3만 원 남짓.
큰돈은 아니었지만, 주말에 근교로 떠나는 차비와 그곳에서 맛보는 소박한 점심, 그리고 역 앞 카페의 커 피 한 잔 값으로는 충분했다.
나는 유명 관광지 대신, 검색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도쿄의 외곽을 파고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들과의 짧은 대화, 그들이 알려준 숨은 명소들이 내 글의 가장 좋은 재료가 되었다.
1년 가까이, 나는 회사원이자 여행작가라는 두 개의 삶을 성실히 살아냈다.
하지만 즐거웠던 이중생활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막을 내리게 된다.
어느 날, 바다 건너 나의 조국에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노 재팬‘
그 세 글자는 나의 설레는 주말 여행기에 예고 없는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