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백작의 수술실 입장기
선배와 나의 다음 듀엣 알바는 재택근무라는 달콤한 이름표를 단 세무사 사무소의 서류 보조였다.
때는 7월, 부가가치세 신고 기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무사님을 도와 서류를 정리하고 전표를 입력할 두 명의 보조 인력이 필요했다.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지원한 덕에, 우리는 면접도 없이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중고로 20만 원을 주고 산 3키로짜리 벽돌 노트북을 어깨에 멘 채, 서류를 받으러 가는 길, 왼쪽 가슴께가 찌릿했다.
뭐, 가끔 있는 일이었기에 잠을 잘못 잤다 여기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교육을 듣는 내내 찌릿거림은 멈추지 않았고, 숨은 점점 가팔라졌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엉거주춤 허리를 숙인 채 왼쪽 가슴을 꾹 눌러보았다.
신기하게도 갈비뼈 위쪽을 누르면, 막혔던 숨구멍이 겨우 트였다.
남들이 보기엔 다소 화장실이 급한 자세였지만, 나는 그렇게 셀프 응급처치를 하며 무사히 교육을 마쳤다.
집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라니, 마음이 편하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산더미 같은 서류는 구석에 밀어 두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누운 채로 일을 시작했다.
단순한 타이핑 작업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복사하고 붙여 넣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헐떡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을 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곧장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내 증상을 듣 던 의사 선생님은 기흉이 의심된다며 소견서를 써주셨다.
목적지는 나의 모교 병원 응급실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수도 없이 본 곳이었지만 직접 들어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류를 접수하고 엑스레이를 찍자마자 나는 들것에 실려 중환자 실로 옮겨졌고, 얼굴엔 산소호흡기가 씌 워졌다.
사진 속 내 왼쪽 폐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80%가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내가 그토록 눌러댔던 그 자리에 미세한 실금이 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선견지명 덕에 들어둔 실비 보험만이 이 재앙 속 한 줄기 빛이었다.
10프로만 지불하면 되었기에 며칠 뒤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하지만 수술보다 더 창피한 일이 기다리 고 있었다. 20대 여성의 기흉은 드문 케이스라, 내 수술엔 내 또래의 젊은 의사 선생님들이 대거 참관했다.
왼쪽만 수술하니, 왼쪽 겨드랑이만 제모하면 될 거라는 나의 합리적 판단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수술대에 눕자 간호사님은 나의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라고 했다.
한쪽은 무성하고 한쪽은 민둥산인 아수라 백작의 겨드랑이를 그들에게 보일 수 없었다.
필사적인 몸짓을 알아챈 한 여의사 분이 재빨리 손으로 가려주셨고, 들어가자마자 마취로 나의 의식을 놓아준 의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수술 후 내 옆자리엔 피주머니가 새로운 파트너로 추가되었다.
병실이 없어 배정받은 6인실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들의 병동이었다.
입원한 5일 동안,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피주머니를 찬 이십 대의 나를 신기해하며 예뻐해 주셨고, 가끔은 자주 안 오는 딸로 착각해 불같이 화를 내셨다.
한밤중 노트북 불빛을 보고 도깨비불이라며 소리를 지르는 분도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알바머신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피주머니를 옆에 차고 침대에 누워, 쉴 새 없이 전표를 입력했다.
마감 기한에 맞춰 무사히 일을 끝냈고, 나는 수술비보다 훨씬 큰 아르바이트비를 벌었다.
그리고 퇴원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이 온다.
그토록 기다리던 비자 발급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