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위험했던 여름, 모델 하우스

빛나던 순간은 어떻게 깊은 흉터가 되었나

by chacha

나에게는 시를 쓰는 대학 선배가 있다.

문학도를 꿈꾸며 대학원에 진학한 선배와 나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평소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큰맘 먹고 사치를 부 리는 날엔 학교 앞 5,000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주머니 사정 덕에 후배가 월급날 사주는 국밥을 누구보다 좋아하던 선배였지만,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그저 그의 꿈을 응원하며 곁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여자친구 생일을 챙겨주느라 지갑이 바닥났는데, 월세 날은 코앞이라는 것이었다.

학교 조교일이 전부였던 선배는 난생처음 단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 순간, 잠자고 있던 나의 '알바 머신' 본능이 깨어났다.

평일엔 초밥집 접시를 나르면서도, 주말에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틈틈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모델하우스 물티슈 배포 아르바이트였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신도시 개발 붐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아파트가 올라가던 때였다.

수많은 브랜드 아파트들이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덕에 단기 알바 자리는 넘쳐났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오기 편한 곳으로 일터를 정했다.


일은 지극히 단순했다.

정해진 구역을 돌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티슈를 나눠주는 것.

현장에는 우리 또래 대학생들부터 척 보기에도 내공이 느껴지는 어머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베테랑들은 달랐다.

햇빛을 완벽히 차단하는 선캡과 손토시, 개인용 허리 가방까지 완벽히 갖춘 모습은 프로 그 자체였다.

그에 비해 시인 선배와 나는, 달랑 아파트 사진이 그려진 쇼핑백 하나가 전부였다.


쇼핑백 손잡이는 가늘어서 묵직한 물티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금세 요령을 터득했다.

쇼핑백 본체는 인적 드문 곳에 숨겨두고, 나눠줄 만큼만 손에 쥐고 다니는 식이었다.

"이것도 운동이다!"

생각하며 부지런히 거리를 누비다 보면, 어느새 쇼핑백은 가벼워졌다.


그렇게 두어 주가 지났을까.

갑자기 결원이 생기며 우리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땡볕을 피해 나는 시원한 모델하우스 실내 안내를, 선배는 뒤편 정리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에어컨 바람 아래서 공짜 배달 도시락까지 먹으니,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었다.


평일엔 초밥집, 주말엔 모델하우스.

몸은 고됐지만 통장은 제법 두둑해졌다.

난생처음 내 힘으로 번 돈으로 '나를 위한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돈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힐 게 뻔했다.

내 인생은 온통 아르바이트였으니까.

잘하는 것도,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

그게 당시 나 자신에 대한 가장 솔직한 평가였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사치는, 나 자신에게 진짜 취미를 선물하는 것이 되었다.

바로 수영 강습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엄마의 압박에 강제로 다녔지만 내 돈으로 다니니 진심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물에 뜨는 가벼운 기분이 좋았다.

물속에서는 중력도, 불안한 미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해방감에 완벽히 중독됐다.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문 닫을 때까지 세 시간씩 물속을 헤맸다.

그 지독한 행복이 내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게 될지는,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모델하우스 일이 끝나고, 우리는 다음 '듀엣 알바'를 찾아 나섰다.

이번 목표는 재택 아르바이트였다.

그리고 나는 이 알바 면접을 보러 간 바로 그날, 그토록 나를 행복하게 했던 열정적인 수영의 대가로 응급실에 실려가,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그대로 수술실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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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