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자와 머무는 자의 추석, 선물 세트 접수

나는 얼마짜리 세상을 살고 있나

by chacha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복강경 수술 덕에 흉터는 작았지만, 나의 왼쪽 옆구리에는 선명한 세 개의 구멍 자국이 훈장처럼 남았다.


수술 전,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우리 딸, 비키니 입어야 하니 흉터 안 보이게 잘 좀 부탁드린다"며 간절히 신신당부를 하셨다.

정작 그 딸은 흉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비키니를 개시조차 못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모든 원인은 '자연 기흉'이었다.

내 의지나 노력 과는 상관없이, 원래부터 내 폐에 존재하 던 작은 공기주머니 하나가 어느 날 갑자 기 '펑'하고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그간의 극한 알바나 지독했던 수영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말.

결국, 그냥 운이었다.

내 몸에 새겨진 세 개의 점은 치열했던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불운의 영수증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불운의 영수증을 받아 들고, 나는 강제 휴식에 들어갔다.

출국일은 10월 입사에 맞춰 9월 30일로 정해졌다.

마침내 나의 벅찬 하루하루도 종착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폐에 구멍이 났던 환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은 '숨쉬기 운동'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구매한 스피로미터(호흡 연습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물었다.

하지만 작은 공 하나를 겨우 들어 올리는 행위는, 성취감은커녕 무력감만 안겨주었다.

내 몸뚱이를 연료 삼아 세상을 누비던 알바머신에게, 이 정적인 재활은 마치 고장 난 부품이 되어 폐기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한때 유일한 탈출구였던 수영장의 락스 냄새마저 아득해졌다.

노동 없는 시간, 멈춰버린 하루.

통장에 숫자가 찍히지 않는 시간은 그저 소모되는 자원일 뿐이었다.


가만히 앉아 숨만 쉬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출국 전 몸풀기'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새로운 미션을 찾아 나섰다.


9월은 추석이라는 대목 덕에 단기 일자리가 넘쳐났다.

목청을 무기 삼아 활보하던 시식 코너가 그리웠지만, 수술 직후 나의 성대는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폐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때 한 줄의 공고가 포착되었다.

백화점 추석선물 세트 접수.


업무 내용은 간결했다.

고객이 선택한 선물 세트의 배송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

땡볕 아래 아스팔트가 아닌 쾌적한 실내, 무기는 튼튼한 두 다리가 아닌 날랜 열 손가락이었다.

재택 알바로 단련된 타이핑 실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지원서를 넣었고, 며칠 뒤 우리 동네 유일한 백화점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내 자리는 온갖 먹거리로 가득한 식품관 한가운데, 선물 접수 데스크였다.

매장 직원이 결제를 마친 고객을 내 앞으로 인도하면, 나는 가장 업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주문서를 건네받았다.

물품 확인, 주소 입력, 배송일 지정.

정확한 절차를 거쳐 고객에게 최종 확인을 시켜 주면 하나의 임무가 끝났다.

병상에 누워 피주머니를 옆에 차고 서류를 처리하던 것에 비하면, 이 일은 마치 휴양지에 온 듯 평화로웠다.


시급은 이전의 알바만큼 높진 않았지만, 회복기의 환자에게는 감지덕지한 수준이었다.

인파가 몰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관찰로 채워졌다.


데스크에 앉아, 나와는 다른 세계의 소비 행태를 조용히 관찰했다.

그곳은 내가 알던 세상의 물가와는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금빛 보자기에 싸인 한우 세트의 가격표는 내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었고, 개별 포장된 과일 들은 식품이라기보다 공예품에 가까웠다.

서울에서 원정을 온 고객들이 천만 원 단 위의 선물 세트를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모습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내 노트북 화면에 찍히는 '0'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현실 감각은 조금씩 흐릿해졌다.

수천만 원을 쓰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

아르바이트생인 나에게 "고생하시네요"라며 음료수를 건네는 여유.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을 넘어, 다른 종류의 시간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듯했다.

그들의 소비는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우아한 투자였다.


문득 모니터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비자를 위해, 수술비를 위해, 하루의 끼니를 위해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던 지난 시간들.

언젠가는 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할 때, 가격표 앞에서 먼저 작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마지막 아르바이트.

알바머신은 자본이 가장 우아한 형태로 흐르는 그곳에서, 다가올 미래와 지나온 과거의 거리를 가늠하며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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