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는 법
수입차 전시장의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자 발급이 생각보다 더 지연될 것 같습니다."
짧은 한 문장은 나의 모든 계획을 뒤흔들었다.
주말 단기 알바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이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마라톤이었다.
알바머신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평일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조금 더 긴 호흡의 아르바이트를 구해야만 했다.
그렇게 알바머신의 이력서에 새로운 한 줄이 추가되었다.
이번 무대는 시내 번화가의 한 무한리필 초밥집이었다.
이전까지 판촉이나 안내데스크, 주말 한정 단기 서빙은 해봤어도, 레스토랑의 정식 홀서버로 평일 내내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새로운 일터는 그야말로 음식의 전쟁터였다.
나의 임무는 단순하고도 끝이 없었다.
손님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탑처럼 쌓인 각양각색의 접시들을 주방으로 옮기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레일 위 텅 빈 공 간을 새로운 초밥으로 채워 넣는 일.
주유소에서 갈고닦은 영업 멘트도, 전시장 데스크에서 익힌 정중한 안내도 여기선 아무 소용없었다.
오직 조건반사적인 움직임과 강철 같은 팔다리만이 나의 무기였다.
쉴 틈 없는 혼돈 속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되어 테이블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갓 나온 새우튀김 초 밥접시를 낚아채며 웃는 커플, 본전을 뽑겠다며 비싼 접시만 골라 쌓아 올리는 대학생들, 사방에 밥풀을 흘리는 아이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안한 내 상황과는 전혀 다른 그 소소하고 와글거리는 풍경들이 정체된 내 시간표 위에 작은 위로처럼 내려앉았다.
무엇보다 이 일에는 기묘한 장점이 있었다.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나는 역설적인 평온을 느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우던 '비자는 언제쯤 나올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같은 거대한 질문들은, 당장 눈앞의 '3번 테이블 접시 치우기'와 '레일 위 연어초밥 리필하기'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미션 앞에 힘을 잃었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극한의 고단함이, 오히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강력한 진통제 역할을 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온몸이 삐걱거렸다.
옷에 밴 온갖 음식 냄새는 유니폼을 갈아입어도 계속해서 났다.
간장과 밥, 미묘한 생선 비린내가 뒤섞인 냄새를 온몸에 두른 채 어쩔 수 없이 집까지 걸어야 했다.
규정상 신어야 했던 구두 때문에 뒤꿈치는 짓물러 스타킹에 피가 배어 나왔고, 하루 종일 서있던 다리는 저녁이면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그런데 이 지독한 아르바이트에는 예상치 못한 장점이 있었다.
강제로 이어진 퇴근길 걷기와 극한의 노동 덕분인지, 그간 꿈 쩍도 않던 살들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몸은 고될수록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고요했다.
어쩌면 이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기 위한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화려하지도,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지도 않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텅 빈 접시를 치우고, 빈 곳을 다시 음식으로 채워 넣는 그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나는 적어도 내 몸뚱어리 하나는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멈춰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알바머신은 잠시 장기전에 돌입했을 뿐,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또 하루를 벌고, 또 하루를 살아내며 일본으로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