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머신, 결혼을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터졌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한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는, 반강제로 일에만 집중하는 환경에 놓여버린다.
다행히 나의 동료들은 외국인인 나에게 호의적이었고, 그들의 배려 속에서 나는 일 자체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구조를 설계하며
아르바이트와 달리 처음으로 시스템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관련 자격증을 땄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까지 하게 되었다.
연봉이 오르자, 팍팍했던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
하지만 평온은 잠시였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도전하지 않는 시간은, 여전히 내게 공백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나의 가장 기본적인 스펙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바로 '한국어'였다.
일본인 친구들이 K-드라마를 보다가 "발음 차이가 뭐야?"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하나씩 알려주던 경험이 꽤나 즐거웠던 기억이 났다.
나는 곧장 '한국어 교원 자격증 2급' 과정을 알아봤고, 다행히 대학교 때의 학점이 일부 인정되었다.
그렇게 평생 교육원에 등록하고 1년 반짜리 대장정에 돌입했다.
회사 일이 끝나면 노트북을 켜고 온라인 강의를 듣는 새로운 루틴이 시작됐다.
그동안 글을 쓰는 법만 고민했지, 내가 쓰는 말의 문법과 구조에 대해 배워본 적은 없었다.
모국어였지만 완전히 새로운 학문의 영역이었다.
국적에 따라 어려워하는 발음이 다르고, 그에 맞춰 수업 방법을 달리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모의 수업 자료를 만들고, 실습까지 마친 끝에 나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번듯한 자격증을 손에 쥐게 된다.
알바머신, 시스템 엔지니어, 그리고 이제는 한국어 교원.
나의 이력서에 새로운 한 줄이 추가되는 순간, 왠지 모를 안정감이 밀려왔다.
그 무렵 내 곁에는 7년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바다를 사이에 둔 장거리 연애.
우리는 서로의 나라를 오가며 만남을 이어갔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늘 우리를 따라다녔다.
둘 중 하나는 삶의 터전을 옮겨야했고, 우리는 어디서 함께 살아야 할지 막막한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다.
이제는 정말 정해야 했다.
그의 회사는 복지나 연봉 면에서 내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은 외자계 화학 회사였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한 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나도 이미 일본에서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 고 있었고, 시스템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도 이제 막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참이 었다.
고맙게도, 그는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도쿄에서의 새로운 삶을 함께 그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자,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소비는 새로운 수입을 창출해야 한다는 알바머신의 제1원칙.
나는 잠자고 있던 나의 새로운 자격증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온라인 한국어 강의 플랫폼에 프로필을 등록하자, 신기하게도 한 명씩 예약이 들어왔다.
강의료는 30분에 1,000엔 정도로 높진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에 집에서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 었다.
그렇게 온라인 한국어 강사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성별, 연령, 직업,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까지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들의 필요에 맞춰 기초 한글 수업부 터 프리토킹, 비즈니스 회화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좋았던건, 월급이 달러로 지급되어 환율에 따라 은근히 쏠쏠한 부수입이 된다는 점이었다.
한국어 강의 덕분에, 나는 결혼식에 필요한 자잘한 비용들을 내 손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도쿄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생각보다 도쿄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 다.
아침마다 어학당까지 가는 지옥철을 힘들어했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지진에 피곤함을 느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지진이 거의 없는 지방 도시의 은행 시스템 구축 부서에 합격하게 되었다.
제안은 단순한 합격 통지서가 아니었다.
연봉 인상, 시내 중심의 사택 제공, 이사 비용과 남편의 이동 경비 전액 지원.
우리가 아등바등 살았던 도쿄 월세의 3분의 1 가격으로, 방 세 개짜리 넓은 집에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로를 위한 선택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결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미래는, 도쿄가 아닌 조용한 지방 도시에서 다시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