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아침마다 모닝페이지를 썼다. 눈을 뜨자마자 원한 맺힌 사람처럼 쏟아져 나오는 할 말들이 목적지 없이 마음에 쌓여갔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에 쌓아둘 공간이 없어 글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닝페이지라고 해서 아침에만 쓰는 것은 아니다. 새벽형 인간도 아닐뿐더러 눈을 뜨자마자 써 내려가는 부지런함도 없다. 그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눈에 보이는 이런저런 불편한 것들을 치우고 난 뒤 쓸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제야 쓰기 시작했다. 보통 오전 10시에서 11시쯤 쓰거나 어떨 땐 자기 전에도 썼다. 아무튼 그렇게 한동안 매일 썼다. 하지만 늘 그렇듯 끈기가 부족한 나는 4월 5일, 무기력한 땅에 나무 아닌 게으름을 심었다. 식목일에 심어놓은 게으름은 내일로 미루는 싹을 틔우고 순식간에 이십여 일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 건조하고 메마른 땅 위에서 게으름과 무기력은 움켜쥐었다가 나줬다가 언제나 나를 쥐고 흔든다.
하던 것을 멈춘다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평안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닌데 나는 자주 하던 일을 멈추고 잠을 청한다.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졸린 느낌을 반기고 놓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스르륵 잠이 들 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잠만이 유일하게 나를 평온으로, 무념무상으로 이끈다. 어쩌면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도 괜스레 눈치 보이고 죄책감이 드는 낮잠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모닝페이지를 멈추었던 스무날동안 나는 꼬드김에 넘어가 패드학습지를 신청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신청했다. 아이가 2학년이 되고나서부터 담임선생님께서는 단원평가를 볼 때마다 알림장으로 반 평균점수를 알려주시는데 반평균 점수는 대게 80점~90점 사이를 오갔다. 그때마다 아이는 반평균보다 10점이나 낮았고 평균보다 낮은 친구들에게는 보충학습지를 나눠주시는데 아이는 늘 그것을 선물포장지처럼 고이 접어 나에게 건넸다. "선생님이 이거 집에서 풀어오래".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고 애써 웃음 지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처럼 나는 행여나 아이의 마음이 다칠세라 부글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아 그래? 풀어가면 돼 지모!" 라며 쿨한 엄마인척 하이톤으로 대답했다. 이윽고 나는 '이걸 어쩌나, 보충학습지 받으면 옆에 있는 짝꿍한테 놀림받는 거 아니야?', '선생님한테 미운털 박히는 아니야?' 이런저런 걱정들과 불안감으로 뒤척이기 시작했다. 나는 하이톤 뒤로 낮고 깊은 한숨을 숨기며 머리를 굴렸다. 방도를 찾아야 했다.
특히 아이는 받아 올림, 받아 내림이 있는 두 자릿수 덧셈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산하는 걸 어려워했다. 같은 문제도 다른 방법으로 풀면 틀리고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이제껏 자릿수끼리 더하기 빼기만 해 봤지 가르기, 모으기 더했다가 빼기 등 다른 방법들은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왜 이렇게 계산을 하라는 거야?" 불평불만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꿍시렁거려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교과과정에 있고 이 문제를 이해해야 다음 단원평가에서는 보충학습지를 면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서점으로 가서 수학 문제집을 살폈다. 적당한 문제집을 골라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패드학습지 'H사' 직원이 나를 붙들었다. 한창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에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뿌리치려는데 어찌나 능숙하신지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를 따라오셨다. 뿌리치고 가는 내가 죄인처럼 느껴질 때쯤 나는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기 시작했더니 이번에는 안 해도 좋으니 딱 일주일만 무료체험을 해달라고 도와달라며 내 연락처와 집 주소를 애원하셨다. 여기서 그만 허락하지 않으면 밤을 새울 것 같아 '에잇 그래. 이참에 어려워하는 수학이나 가르쳐보지 뭐' 맘속으로 중얼거리며 연락처를 넘겼다. 그제야 나는 서점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드디어 집으로 향했다.
두 발자국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왠 또 빨간색 전단지와 사은품이 가득 담긴 봉다리를 안고 또 다른 패드 학습지 직원이 숨을 헐떡이시며 나를 잡아 세웠다. 이번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온리원'이라는 학습지였다. 나는 참다못해 신경질이 나서 인상을 팍쓰고 눈길도 안 주고 뒤돌아 섰다. 아니 근데 이 분은 또 불굴의 의지가 담긴 묘약이라도 드시는 것인지 연락처도 안 받을 테니 선물만 받아가라며 봉다리를 내 손목에 걸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연스러운 나이스샷으로 말이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까 내가 너무 야박하게 인상을 썼나 싶고 슬쩍 사은품도 궁금해서 슬그머니 봉다리를 열어보았다. 강렬한 빨간색 포스터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나에게 극 호감형이 되어버린 박은빈 배우의 얼굴이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박은빈 배우도 뭐, 이 학습지가 믿을만하니까 광고를 찍은 거 아니겠어?" 불현듯 관심이 차올랐다. 자연스레 나는 초록창에 '온리원'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요즘 내가 꽂혀있는 '메타인지', '비쥬얼씽킹' 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홀린듯이 봉지에 들어있던 명함을 집어 들고 매몰차게 뒤돌아 섰던 그분께 내 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꼬드김은 'H사'에게 당했는데 때아닌 '온리원'에 꽂혀버린 꼴이라니. 이게 다 그 반평균점수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내 아이는 현재 진도 뒤꽁무니 따라가기도 바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아이들은 현재 진도는 눈감고도 푸는 경지에 올라와있으며, 심지어 나도 모르는 문제들을 술술 푸는 아이들도 있다. 그동안 선행을 안 시킨 내 잘못인가? 아니면 똑같은 수업을 듣고도 내 아이만 선생님 말씀을 이해 못 하는 것일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같은 반 친구들보다 10점이나 뒤처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보통'과 '평균'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보통'과 '평균'을 마지노선으로 그 이하로 떨어지면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안감은 조급함으로, 조급함은 수단과 방법을 찾는 것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어찌 보면 나는 언제나 아이를 위한다는 것을 핑계로 내 마음을 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충학습지를 받거나 말거나 보통이 뭔지 평균이 뭔지도 잘 모르는 이 아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란 걸, 왜 나는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일까.
아무튼 내 인생 가장 소중한 only one, 너에게 '온리원'을 바친다.
포장지처럼 고이 접힌 보충학습지에 대한 보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