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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나재나 Sep 12. 2024

저기요 집된장 주세요 01

참기름을 넣으라는데 들기름 넣어도 되나?


자취를 오랫동안 한 남편의 이삿짐 안에는 유통기한이 지워진 들기름 정도가 있었다. 기름에도 유통기한이 있나? 통 자체가 불투명해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아 먹어도 되는지, 참기름대신 써도 되는지 감이 안왔다. 


결혼을 앞두고 이제 막 같이 살기 시작한 남편의 첫 생일이었다. 

생일 하면, 당연히 미역국이었고 중학교 때 이후로 미역국을 끓여본 적이 없던 나는 유튜브에 미역국을 검색했다. 

요리 유튜버가 미역을 넣고 불려서, 참기름에 볶으라고 했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호기롭게 사온 미역은 미역이 아닌 다시마였고, 집에는 참기름은 없었고 들기름 뿐 이었다.


아무리 요리를 모르는 나라도, 다시마로 미역국을 끓일 수 없다는 건 알았다.


작전을 바꾸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 근처 이마트로 달려갔다.

상다리 부러지게 생일 상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 나물반찬이며, 닭볶음탕이며 등을 계획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필요한 재료를 잔뜩 적었다.


그 중에 나는 '집된장'이라는 재료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남편의 퇴근까지는 얼마남지 않았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시식코너에서 김치를 썰던 직원에게 집된장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보다 많거나, 비슷한 나이대의 직원은 내 말에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건 팔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설마 집된장이 말그대로 집에서 만든 된장인건가? 직원분은 웃으면서, 일반 된장 코너를 안내했다.


수많은 장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작고 저렴한 된장을 샀다.

저 직원은 집 가서, 나이 먹을 만큼 먹어보이는 여자가 집된장을 이마트에서 찾더라. 하고 웃을지도 몰랐다.

이상하게 크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두 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닭볶음탕과 몇 가지의 나물 반찬을 했다.

콩나물 반찬에서는 이상한 비릿내가 났고, 무생채는 너무 매웠다. 닭볶음탕은 먹을만 했는데, 덜익어서 뼈 쪽이 피가 보였다. 부엌은 재료가 담겨져 있던 플라스틱과 비닐봉지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다정한 나의 남편은 기쁘게 먹어주겠지, 싶어서 전화를 했다.

출장이란다. 순간 울컥했다. 출장이 잦은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알고, 출장을 가는게 남편 탓도 아닌데 오늘도 혼자 보낼 밤이 너무 서글펐다. 속이 끓고 화가 나고 섭섭했지만 그 누구의 탓도 아니기에 나는 속상한 마음을 꾹꾹 누른다.


[그래도 생일인데...]

그리고 완성된 요리들을 사진으로 보낸다. 남편이 요리가 아깝다며, 미안해한다.

나는 내가 힘들게 한 요리 보다 남편의 생일을 타지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리한 시간과 맞먹는 정리시간이 들었다. 닭볶음탕은 아직 뜨거워서 후라이팬에서 식힌 후에 락앤락에 넣어 보관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많은 요리 중에 내것은 없었다.


근 몇 달은 약속이 없으면 저녁을 굶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한 번 도 싸워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자꾸 저녁을 굶어서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그나마도 남편이 집에 있으면 밀키트나 배달음식으로 숟가락을 얹었는데, 출장을 가거나 약속이 있으면 여김없이 저녁을 건너뛰었다. 괜히 남편한테는 큰소리로,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안 먹든 내 몸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화를 냈다. 


결혼을 앞두고, 다이어트라는 핑계로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퇴근 후 거실 속의 나는 너무 지쳤었다. 그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우리 집 가장 깊은 어딘가에 숨어있기만 하고 싶었다.

해서, 뭔가를 해먹는 것 자체가 귀찮고, 무기력했다. 시켜먹는 음식들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았고 결과가 뻔한 신파 영화 같았다. 유튜브를 보면서 플라스틱 용기를 뒤적거리는 내가 그려졌다. 유쾌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직접 하는 요리는 선택지에 없었다. 나는 라면도 맛 없게 끓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남편의 생일이라 분주해지고 싶었다. 

남편은 내가 계란후라이만 해줘도 최고라며,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닭볶음탕을 살폈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났다. 감자가 잘 익었는지 걱정되어서 젓가락을 푹 찍었다. 분명히 입맛이 없었는데, 포슬거리는 감자를 보니 입에 침이 고였다.

내가 깎고, 썰어서 재료들을 어떤 시기에 넣어야 맛있고 잘 익을지 고민 끝에 만든 요리였다. 

밥을 딱 두 수저를 퍼서 담고, 그 위에 감자와 당근을 올렸다. 한 입 먹자, 소스가 잘 베어서 부드럽고 맛있었다. 정신 없이 감자 한개와 당근 한 개 밥 두 수저를 먹어치웠다. 뜨거웠는지 혓바닥을 데였다. 그것도 모르고 먹었다.


[저녁 먹었지?] 남편이 걱정 섞인 카톡을 보냈다. 

어딘가에선 그 말이 안부인사지만, 남편은 또 내가 밥을 굶었을까봐 걱정돼서 보낸 말이다.

감자 두 수저 때문인지 나는 쉽게마음이 풀렸다. 남편은 언제나 내 걱정이었다, 타지에서도 집에 혼자 있는 나나때문에 맘편히 나를 두고 일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설거지 때문에 젖은 손가락으로 핸드폰이 터치가 잘 되지 않아 어렵게 먹었다고, 답장을 했다.

두 수저도 먹은거라면 먹은거지. 닭볶음탕을 두개의 락앤락에 나눠 담으며 냉장고에 넣었다.


혼자인 밤엔 나는 유독 불안해하면서 울며 자거나 잠을 설쳤다.

그 날은 닭볶음탕 속 감자가 따뜻해서인지 이상하게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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