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여전히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살이 빠지거나, 몸이 안좋진 않았고 오히려 몸이 가벼워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저녁을 꼬박 꼬박 챙기는 건 농경사회 때 농사를 지어야해서 체력이 많이 부족했던 그 시절이나 먹는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너무 오랜 공복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아침에 눈뜨마자, 비트쥬스를 한 잔 마시긴 했지만 11시 쯔음이 되면, 허기가 졌다.
차라리 회사였다면, 매점에서 뭐라도 먹었을텐데 오늘은 재택이었다.
괜히 냉장고를 열어보고 식료품 서랍을 뒤적 거렸지만 먹을만한 요리는 없었다.
그러다 야채칸 구석의 겉이 약간 멍든 참외를 발견했다.
과일을 좋아했다, 어릴 때 부터 포도 딸기 귤 수박 등 안 좋아하는 과일이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알아서 연애할 때 부터 철마다 제철 과일을 당도를 잘 살피면서까지 사오곤 했다.
이 참외도 가장 단 것이라며 사다준 것이었다.
손바닥 만한 참외를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왜냐면 나는 과일을 잘 깎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 깎는 과일은 귤, 포도같은 거였다 그니까 칼이 필요한 건 못 깎는다는 것이다.
그냥 먹지 말까, 하다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야심차게 감자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쓱쓱 아래로 칼을 밀며 참외를 깎아내렸다. 생각보다 사각거리는 소리에 낮잠을 자던 강아지도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한테 왔다.
노란 껍질이 벗겨진 살갗이 들어난 참외를 썰어서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려한 꽃 접시에 올렸다.
요즘 유행하는 참외샐러드도 생각났다, 달지 않은 참외로 만들어 먹는 샐러드인데 이 참외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달 것이라고 확신했다. 엄청난 단 냄새가 났다.
다시 노트북에 앉아서 감자칼로 깎은 참외를 하나 집어 먹었다.
엄마든, 남편이든 내가 감자칼로 과일을 깎아 먹었다고 하면 위험하다고 하거나 그 나이 먹도록 과일 하나도 못깎냐고 잔소리 했겠지만 모로 가든 서울로 가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어도 감자칼로 깎는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