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감수성이 높고 자주 불안해하고 외로움을 잘타던, 별 거 아닌 거에 잘 기뻐하다가 다시 쉽게 우울해 하던 여자아이는 매일 같이 분당선에서 출퇴근을 하는 보통의 삼십대 직장인이 되었다
심리테스트와 같은 가벼운 것부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인성검사 같은 걸로 나는 저런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 내가 불안장애와 우울증 ADHD까지 진단 받은 건 어쩌면 그렇게 의외의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2023년 12월 나는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아 ADHD인 것 같아서 회사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병원에 갔다가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한움큼 처방 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나는 다음해 4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다
같이 살고있던 남자친구도 연차를 쓰고 같이 병원에서 의사에게 내 상태를 들었다 내 약은 앞으로 내가 아닌 남자친구가 관리를 해야한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나중에 알았다
내가 그 약을 한 번에 먹고 나쁜 시도를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은 진단을 받기 전에도 나를 괴롭혔던 것들은 이름없이 내 주변을 떠돌았었다
우울증 불안장애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의 존재는 내 인생 자체를 힘겹게 만들었다
무기력은 나를 제대로 재우지도 먹이지도 못했다
나는 성실하게 인터넷에 나와있는 우울증 치료 방법을 보고 따라했다 운동했고 명상해봤고, 매일 감정을 기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지옥같았고 사소한 것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신혼이었다
이제 막 새신부와 살게 된 남편과 배달음식과 인스턴트로 식사를 떼우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밀키트라도 사서 먹었다
그 다음은 콩나물을 넣은 라면
그 다음은 유부초밥
중학생도 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뭘 만들어도 활짝 웃으며 진심으로 맛있다며, 내 요리를 먹어주는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좋은 제철 식재료를 씻고 칼질하고 끓이다 보면 갑자기 뭐든 이겨 낼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감정을 기록하라도 의사도 미디어에서도 말한다
하지만 나는 몇 십년을 함께하고 있는 구질구질하고 지겨운 내 감정에 대해 기록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어쩌면 내가 사는 도시에서 만큼은 제일 맛없게 음식을 만드는 우울증 불안장애 여자의 요리 일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