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의 무게와 가벼움 사이에서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by 문이


"당신은 땅속 관에 묻히고 싶으신가요, 한 줌 재로 뿌려져 날아가고 싶으신가요?"


이 물음은 단순한 장례 방식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가 들어있다. 삶을 무겁게 붙잡고 싶은가, 아니면 가볍게 흘려보내고 싶은가.


90년대에 유행했다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이제서야 읽었다. 전체적으로 은유와 이미지들이 많아 느리게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했다. 하지만 한 시대의 혼란과 아픔이 짐작이 되면서 작가의 표현과 시선들이 섬세하고 비판적이고 너무나 정확해서 빠져들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 토마시와 테라자는 인생의 무게 속에서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결국 가라앉듯이 사라진다.

반면 예술가 사비나는 어떤 이름도, 무게도 남기지 않고 공기처럼 가볍게 사라지길 원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삶의 선택을 넘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딸은 아버지의 뼛가루를 그가 살아냈던 땅 곳곳에 뿌려준다. 사랑과 고통, 역사와 존재의 무게가 그 흩날림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지금 돌무덤 안에 조용히 갇혀 계신다.

어떤 죽음은 무겁고, 어떤 죽음은 가볍다. 그러나 모두가 소중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철학적 이야기지만,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다. 무대 위의 삶과 무대 뒤의 삶은 분명히 다르다.

인스타그램의 화려한 셀카, 즐거운 여행 사진 뒤에는 불안과 외로움, 참을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토마시도 병원에서는 망명 높은 의사였지만, 집에서는 감정에 휘청이는 남자였고, 테레자는 사진 속 세상을 담으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무거워 숨이 막혔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런 모순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글을 쓰며,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부끄러움을 직면했다. 그는 그 가벼움과 무거움을 용기 있게 견디어 냈다.


어떤 사람은 무겁게 살고, 어떤 사람은 가볍게 산다. 그러나 삶은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어느 날은 무게에 짓눌리고, 어느 날은 바람처럼 흩날리며 웃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그 양면성 덕분에 중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가벼움과 무거움 그 사이에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900%EF%BC%BF20250704%EF%BC%BF131958.jpg?type=w96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의 해방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