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 거침없이 비가 쏟아졌다.
망했다.
카페에 책 읽으러 왔는데 책을 안 가져왔다. 하~ 터져 나오는 한숨.
그물로 고기 잡는 어부가 고기 잡으러 가면서 그물을 안 가져온 격이라니.
밭 갈러 온 농부가 소를 두고 온 거와 같다.
에이, 어쩔 수 없지. 이웃 브런치 글이라도 읽고 가자. 하~ 더 크게 터지는 한숨. 이번엔 충전 케이블을 맞지 않은 타입으로 교체해온 것이다.
아침에 비가 쏟아져서 비가 좀 개면 나가려고 밍기적 거렸다.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밥도 먹은 마당에 평소에 잘 먹지 않던 라면, 너구리 한 마리를 끓여먹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는데 비가 잦아들 생각을 안 한다.
"에라 모르겠다." 커다란 우산을 들고 가방을 들쳐메고 뛰쳐나오듯 대문 밖을 나섰다. 세찬 비가 신발 사이로 들이쳐 양말을 적시고 바지단을 적신다.
비가 와서 사람도 별로 없는 카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오더 앱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이제 맘잡고 못 읽은 책 좀 마저 읽어야지 하고 야심 차게 책을 꺼내려는데 가방 안에는 겉옷과 작은 주머니 가방들만 있고 주인공이 없다. '어? 이거 현실이야?'
눈으로, 손으로 없다는 걸 빤히 인지하면서도 계속 뒤적거리는 손이라니, 허탈했다.
'이참에 눈도 좀 쉬게 하고 맛있는 커피나 즐기다 가자' 하고
흔하지 않은 오늘 일을 핸드폰으로 작성하여 글로 남긴다. 배터리가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에...
'오, 글감 하나 얻었네. 오히려 예상치 않은 일에 재밌었어. 뻔한 인생은 재미없잖아?'
비가 그쳤다. 세상이 조용해지고 맑아졌다. 내 배터리는 아직도 17%나 남았다. 생각해 보니 망한 날이 아니라 성공한 날, 재미있는 날이었다.
가끔 불량식품도 먹고, 비도 맞고, 준비물도 깜박 잊어버리자. 판에 박힌 뻔하고 편한 길 말고, 오르막 내리막 다채로운 길에서 생생하게 빛나는 순간을...
배터리 잔량 알림음이 와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