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엄마, 다음 달에도 휴가 5일 정도 나와요."
"또? 이제 휴가 그만 나와, 니 아빠 돈 많이 써."
"엥?" 아들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지난달에 일주일 휴가 나오고 한 달도 안 되어 이번 달에 또 일주일 휴가를 나온 아들에게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아고,나 생각해 주는 건 니 엄마밖에 없네. 그래도 니 엄마 말 신경 쓰지 말고 자주 나와, 난 너 나오면 좋으니까."
아들은 공군이라 복무 기간이 21개월로 육군보다 길다. 그래서 휴가도 길게 자주 나오는 거란다. 아들이 휴가를 나오면 남편은 신바람이 난다. 아들에게 알아서 쓰라며 체크카드를 턱 건넨다. 아들이 아껴 쓰는 걸 알기 때문에 믿고 준다. 고깃집 외식을 데려간다. 배달 음식을 시켜준다. 군복을 빨아서 말려주고, 군화 속 깔창을 새것으로 갈아준다. 셔츠 깃을 손으로 비벼 빨아 세탁기에 돌린다. '지갑 잃어버리지 말아라',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아라', '나랑은 언제 시간 내 줄 거냐' 하며 잔소리를 해댄다. 남편이 설쳐대는 통에 아이를 위해 난 무심한 엄마가 되어 준다.
아들은 지난번 휴가 때 운전면허 주행시험에서 떨어져 재등록을 했었다. 이번에는 합격해서 면허를 땄고, 여자친구에게 자전거 타는 법도 배웠단다. 아들이 어렸을 때 내가 어린이용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너무 일찍 떼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지 못했고 그 후로는 시도를 안 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후로 너무 재미있다며 3일 연속 자전거를 탄다. 밖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공유 자전거가 눈에 띄자 자전거 타는 것을 보여 준단다. 벤치에 앉아서 보는데 둥그런 화단 주변을 삥삥 잘도 돈다. 남편도 덩달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다. 캄캄한 달 밤에 두 개의 자전거 불빛이 춤을 추고 그 둘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함께 술렁거린다. 작은 의자에 데이는 부분이 아프다며 육중한 몸을 지닌 두 사나이들이 투덜거린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이다. 아들은 오후 약속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남편을 재촉한다. 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몇 시간 후에 밖이 덥다며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두 남자.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며 갈비탕도 먹었단다. 먹는 거에 진심인 두 남자이다.
"오는 길에 새로 생긴 식당이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갈비탕이 진짜 맛있더라. 사장님한테 여기 언제 생긴 거냐고 물었더니 일 년이 넘었다네, 난 몰랐다고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해 줬지. 이따 저녁에 또 갈 거야. 얘 여자 친구 만나고 와서 또 자전거 타러 가기로 했거든."
"아니, 자전거가 그렇게 재밌어? 너 군대 복귀하면 자전거 타고 싶어서 어떡할래?" 내가 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엄마, 나 이제 자전거 진짜 잘 타. 엄마도 저녁에 배워야 해. 내가 가르쳐 줄게."
"얘가 강제로 배우라 하네? 하하, 난 고2 때 여의도 가서 엄마 사촌한테 1시간 넘게 배우다가 포기했어. 그때는 거기가 여의도 광장이었거든."
그 시절에 나는 자전거가 무서웠다. 자전거가 높아서 앉으면 발이 땅에 닿을락 말락 하니 넘어지면 다칠 것 같았다. 동갑내기 사촌은 뒤에서 잡아주며 자기가 배운 방식대로 나를 성공시키려 애썼지만 난 몸치임을 증명하고 말았다.
아들이 예상보다 빨리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역에 도착해서 우리를 불러냈다. 일단 저녁식사를 하러 점심에 갔다던 그 식당에 갔다. 오랜만에 메인으로 양념 돼지갈비구이를 시켰다. 아들이 군에 있으니 남편이랑 외식할 일이 없었다. 달짝지근한 갈비를 상추에 싸서 먹는데 직원이 서비스라며 연어 샐러드를 세 점 가져다준다. 또 조금 있으니 소고기 육회를 조금 가져다준다. 그것도 서비스란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니 계란찜을 서비스라며 가져다준다.
"아니 왜 이렇게 서비스를 많이 주지? 자기가 낮에 사장님한테 말을 잘 해서 그러나? 아님 둘이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인 거 아냐?" 내가 물으니
"그치, 우리 둘이 그릇을 싹 다 비웠으니. 내가 사장님 보고 갈비탕이 너무 맛있다고, 새로 생긴 식당인지 알았다며 얘기를 잠깐 나누었지."
"그래, 자기가 말을 예쁘게 잘 했네, 그리고 또 운동을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 넌 도대체 얼마나 맛있게 먹어 보였길래 이렇게 서비스를 많이 주냐고?" 아들에게 물으니
"그치, 내가 엄청 맛있게 먹는 것을 사장님이 봤나 봐. 갈비를 이렇게 들고 이렇게 이렇게 막 정신없이 뜯었거든." 하면서 아들은 양팔을 치켜들어 고개와 함께 번갈아 옆으로 움직여 가며 고기 뜯는 시늉을 과장되게 한다.
"그런데 이 육회는 얼마에 팔아?" 아들이 메뉴판을 보여주는데 2만 3천 원이고 양에 대한 정보는 빠져있다. 나는 육회를 서비스 준 것처럼 조금씩도 파는지 궁금해서 기대를 하고 물은 거라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무 비싸다." 내가 이 말을 할 때 직원이 지나갔나 보다. 아들이 눈치를 살핀다.
"엄마, 이 정도 가격이면 비싼 거 아니야, 근데 그 얘길 직원 지나가는 데 해야겠어?" 하며 핀잔을 준다.
"야, 직원 지나가는 줄 몰랐지."
"아휴, 아빠도 엄마랑 사는데 차암 힘들었겠다." 아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순간 남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활짝 피어난다.
"뭐어?, 이게! 니 아빠 저 좋아하는 표정 봐라." 하면서 아들의 옆구리를 꽉 꼬집었다.
"어디가 딸 하나 데려오든지 해야지, 서러워서 참."
먹다가 이번에는 남편이 어떤 얘기를 했는데 아들이 또 이러는 거다.
"엄마도 차암 아빠 땜에 힘들었겠다." 아들의 코믹스러운 말에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이게 엄마 아빠를 한 번씩 돌아가면서 멕이네?" 나의 말에 남편이
"너도 차암 힘들었겠다. 이런 아들 키우느라고."
우리는 이 말이 재밌어서 깔깔거리며 유행어처럼 몇 번 더 반복을 했다.
"엄마는 우리 00가 휴가 나오니 참 좋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고, 얘기도 많이 하고 너무 좋네."
(돌아오는 길에 가게 앞에 붙은 현수막이 알려줬다. 고기 시키신 분에게만 드리는 서비스라고. 연어샐러드와 한우육회가. 우리가 나누었던 추측은 다 쓸데 없는 거 였다고. 그래도 푸짐한 계란찜 한 뚝배기는 우리에게만 준 서비스 맞다.)
어두운 밤이 되었다. 공유 자전거 두 대를 빌려서 두 남자가 공원의 광장을 달린다. 아들이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준다. 마치 자신이 강사라도 되는 양 신이 났다.
"자아, 먼저 페달을 잘 밟는 연습을 해야해요, 내가 하는 것을 보세요오."
'이 번엔 정말 잘 배워볼까'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페달을 밟고 나아가 본다. 살짝 나아가진다. 또 한 번 자신 있게 밟아 본다. 순간 왼쪽 페달에서 발이 떨어지면서 나아가는데 페달에 발목이 부딪힌다. 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소리만 지른다.
"아아아, 멈춰, 아프다고!" 겨우 멈추고 발목을 보니 피부가 벗겨져 있다.
"난 이제 자전거는 못 탈 거 같아. 시작하자마자 다쳤네. 너 가서 타." 걱정하는 아들을 보내고 난 카페 위층에 가서 밤 풍경을 구경했다. 두 남자는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난 부드러운 라테를 마시며 아픈 다리를 살피다가 또 두 남자가 왔는지 바깥을 살피다가 했다. 그렇게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들은 독립도 하고 결혼도 할 테다. 아직은 부모의 품 안으로 찾아들어 행복을 나누어 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값진 시간들인가. 웃음과 아픔이 함께 했던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