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두려워하는건 뭘까
나는 몇몇 강박증들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의학적 진단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에, 확언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런 성향이 꽤 강한 것 같다. 불안과 걱정이 많은 성격 탓인지, 그게 어떤 문제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스스로를 갉아먹을 때도 있다. 1부터 특정 숫자까지 마음속으로 세면서 안좋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던지, 사소한 어떤 문제들이 괜찮은지 끊임없이 확인한다던지, 청결이나 건강 문제에 대한 불안이 강하고 자주 씻으려 한다던지... 어느 시점부터 이성으로 이런 것들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그 자각만으로 이런 행동들을 모두 그만두기는 어려웠다.
최근 강박증에 대해 좀 알아보다가 알게 된 것이, 스스로의 진짜 불안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강박적 사고와 행동의 반복을 통해 어떤 것들을 막고 싶은건지. 어떤 것들을 내가 무서워해서 비이성적인 연결고리를 통해서라도 다 통제하고 막고 싶어하는건지. 스스로 바보같고 비합리적이라는 자각을 하면서까지, 스스로의 삶을 의도적으로 답답하고 피곤하게 만들면서까지, 쳐다도 보기 싫을만큼 공포스럽고 끔찍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니까 강박과 자기검열도 연관이 있는 듯 했다. 내게는 은근히 막연하게 하면 안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사실 따져보면 별로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되기 싫은 모습,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모습도 엄청 많았다. 이건 최근에서야 자각한거다. 인정하기는 부끄럽지만 어지간히 불안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그런 말은 절대 하면 안될 것 같고, 그런 생각은 절대 하면 안될 것 같고, 그런 선택은 그냥 왠지 하면 절대 안될 것 같고...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 별 게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들에 저래도 되는건가 놀람과 불편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서 피어났던 순간들이 있었다.
반면 반대로 불안해서 그냥 계속 하게되는 것들, 행동이나 사고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강박증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자기검열에 이어서 따로 서술하게 되었다.
하나는 '기대를 하면 안좋은 일이 생긴다, 좋음을 만끽하다보면 안좋은 일이 생긴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만끽하고 즐겨도 모자란 순간에 나는 무슨 전투태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평정심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곤 했다. 그런다고 안좋은 일이 뭐가 일어날지 미리 예상할 줄 알게되고 효율적으로 대비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들뜨면 이전처럼 또 실망하게 될 것이 두려워 구름처럼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선 스스로의 마음에 먹구름을 불러왔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며 맑은 날에도 꼭 우산을 들고나가는 사람처럼.
두 번째는 타인이 뭐라고 공격할 지 예상하고 머릿 속에서 미리 적절한 답을 찾는 것이다. 무슨 면접이나 발표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예상 질문이나 반박같은 것을 머릿 속에 떠올리고,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내 반박에 대한 그들의 재반박에 대한 답변까지 너무 자연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오늘 내 강박적 성향 중에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 부분이다.
나는 방어적인 사람이다. 나는 내향적이기도 하지만, 사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나의 주변인 몇몇이 보는 것 만큼이나 강한 내향인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좀 많이 방어적이다. 이에 대한 자각은 최근에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많이 후련하고 자유로워졌다. 근데 내가 방어적인 사람임을 밝히는 것도, 이에 따른 강박적 성향이 있음을 밝히는 것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로 나의 글을 읽는 이런 공간에 밝히는 것임에도, 사실은 나에게는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망설여지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볼 것을 알고, 누군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누군가는 혐오하거나 비난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부끄러운 솔직한 마음들을 활자로 쏟아내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시하는 이 행위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나아가게 해 준 경험들이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나를 바꿔서 계속 써내려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사실 타인의 평가나 공격을 미리 대비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그게 도움이 된 경험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면접이나 발표같은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예상 반박이나 질문같은 것들은 내가 떠올리기 싫어도 타고난 불안 탓에 잘만 생각이 났고, 그건 나를 불편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대비할 수 있게 해줬다. 꽤 들어맞았던 적이 많았다.
그리고 발표같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어도 이런 대비가 어느 시점부터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무례한 스타일의 사람도 많다. 물론 그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특히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더욱이 자신이 그런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중요한건 인간 사회에는 잔혹하고 유치한 면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면들도 많지만.
어쨌든 그런 공격들을 받고나면 감정의 늪으로 쉽게 침잠되고는 했던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자극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미리 대비하는 습관은 나름 잘 먹힐 때도 많았다. 덜 당황하고 대답을 매끄럽게 잘해내거나 하는 순간들이 늘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 기분이 전반적으로 나아졌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계속 불안했고, 두려워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무서웠나보다. 나를 함부로 쉽게 판단하고 단정하는 것. 자신의 유희나 우월감을 위해 밟으려 드는 것. 그런 것들에 짓눌려 가라앉고 발버둥쳐보지만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 유치하고 원초적인 두려움이지만 사실 적나라하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이게 예상할 수 없는 불행을 통제하려는 마음과 함께 나의 강박을 지배해온 핵심적인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방식으로 상처주었을 것인데도, 난 추한 한 명의 인간으로써 내 것이 유독 커보였나보다.
결과적으로 이 강박적이고 방어적인 사고는 분명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도움이 된 적이 있다. 그래서 강화되어 왔지만, 어느시점부터는 명확히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을 알 수 없었다. 예민한 감정의 안테나를 얼마나 세우건, 인간 군상의 데이터가 얼마나 쌓이건, 심리 지식을 얼마나 쌓건, 우연의 힘이 도와 몇 번 예상을 적중시켜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건 오만이었다. 내가 내 강박의 민망한 핵심을 제대로 들여다보는데 이 긴 시간이 걸렸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고 머릿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인정해야했다. 넘겨짚게 될 때가 많구나. 오해하게 될 때가 많구나. 내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구나, 그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의 안에 있는 것들은 내가 다 알 수 없구나. 어차피 대비가 되지 않는구나. 그리고 적중률을 떠나서 그게 더는 그렇게 도움이 될까 싶다. 굳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을 내가 다 알아야할까. 내 안의 마음도 생각도 아름답지만은 않은데. 모든 것을 다 꺼내서 알아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그걸 다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내 불안의 해소와 행복에 과연 도움이 될까.
인정하는 것은 아프지만, 어떻게 보면 내게 어느순간부터 깊게 자리잡아왔던 것은 피해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티안나게 가면을 쓴다고 써놓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발버둥을 쳐놓고, 정작 내게는 나를 보호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다소 어린 애 같은 모습이 많았나보다. 창피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훤히 다보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실 웃긴 얘기지만 피해의식마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는데. 지금까지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겠지만, 내가 자각하지 못하게 나를 위험에서 지켜주기도 했겠지. 근데 이제는 아니다. 그랬다고 해도 지금까지 지켜줬으면 충분하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다.
이젠 그만두려한다. 미리 대비하고 생각하는게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너무 힘들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더 쓰고 싶다.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냥 내가 그 과정에 몰입하고 의미를 느끼는 일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신경을 쓰느라 그런 소중한 일들에 쓸 에너지를 뺏기는 것이 더는 싫다. 내가 때론 이전처럼 유창하게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좋다. 이젠 감수할만 하다. 좀 바보같아 보이거나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완전히 괜찮지는 않지만-더 중요한 것들을 위해 견뎌볼만 하다. 내 이런 불안은 이제 발표나 면접같은 일이 있을 때 가끔씩 써먹으면 끝이다. 그 이상은 원하지 않는다. 좀 여러 자극들에 매끄럽게 대응하지 못하더라도, 내 소신을 가지고 어느정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안다면 그게 소통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스스로 때론 방어벽을 한꺼풀 벗을줄도 알게된다면 조금은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하게 글로 정리해서 해체한 부분들은 실제 삶에서 조금씩이라도 개선된 적이 많은 것 같다.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서 확인하고 어디에 멀리 던져버린것 처럼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도 같다. 이런 글들을 쓰고 내가 조금씩 변한다고 해서, 동화처럼 내가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늘 행복에 젖어 살게된다는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근데 사실 이젠 그게 별로 안중요한 것 같다. 내게 찾아온 감정들이 행복에 가까운 것이든, 불행에 가까운 것이든, 내게는 글이든 음악이든 창작의 한 재료이고, 삶에 있어서는 (내가 본 드라마 대사처럼) 자양분이 될테니. 앞으로 안 무서워질 일은 없겠지만, 이젠 전처럼 전전긍긍하는 일은 줄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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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에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분들이 제 생각보다 많아서 사실 놀랄 때가 많습니다. 유쾌하지 않은 감정들에 대한 토로든, 개인적인 고찰이나 결심이든, 불행 전시나 자기자랑처럼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도 그런 걱정을 내심 한 적이 꽤 있습니다. 불안이 많은 제 성격답게요. 단 몇 분만이라도 괜찮게 느껴주신다면, 겁 많은 제가 서투르게 일기처럼 쓴 글을 용기내 이 곳에 게시한 보람을 느꼈을 것인데, 제 기준에서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피드백이 오는 순간들이 있어서 한 번 쯤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비록 이 곳에서 인기작가이거나 조회수가 되게 많이 나오거나 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저의 독자분들의 피드백이 저에겐 충분히 과분하게 느껴져 한 번은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영화 리뷰나 시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들을 많이 쓰게 되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누가 궁금해하기나 할까, 그냥 일기는 일기장에 쓸걸 그랬나 망설였던 적도 많은데,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 덕에 그런 생각을 접어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의존하면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휘둘리게 될거라 믿어 저 스스로 가지는 동기 외의 것들에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뻣뻣한 태도로 강한 척, 초연한 척 하는 것에 익숙한 저이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것 같지 않았던 저의 글들을 읽어주시고 반응해주신 독자분들 덕에 계속 글을 쓰며 스스로 돌아보기 어려웠던 영역까지 용기내 고찰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하던 저의 약한 면을 이곳에서 만큼은 솔직히 드러내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승화시키고, 할 수 있다면 다른 분들에게 영감 혹은 위로를 드리고 싶었는데, 저의 이런 글들을 공감해주시는 분들과 이해해주시는 분들 덕에 제가 도리어 위로받았다는 감정을 느낄 때가 사실은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유난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이런 부끄러운 내용들을 어디가서 얘기를 잘 못하는 편이었는데, 이런 내용들에도 반응해주신 분들 덕분에, '어쩌면 나만 이런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치유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도 아닌 제가 앞으로 글을 얼마나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받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괜히 늦은 시간에 주책이었네요. 갑자기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다들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제 글에서 공감대를 얻는, 무언가 지금 비슷한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어차피 저도 늘 서툴고 막막한 사람이라 별 도움이 되는 말은 못해드리겠지만...그냥 글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생각도 하면서 그런 시간을 가지곤 한답니다.
대신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버틸 힘을 주는 공감이나 위로를 조금이나마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인간도 있다고만 생각해도 마음이 조금 나아질 때가 있잖아요. 그럼 주책스러운 감사 인사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자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