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Dec 19. 2020

음악 숨은그림 찾기

넷플릭스 영화 더 프롬(The Prom.)

넷플릭스 홈에서 우연히 본 뮤지컬 영화. 선택의 이유는 캐스팅이 미쳐서. 메릴 스트립, 제임스 코든, 니콜 키드먼?     


 초장부터 화끈하다. 메릴 스트립과 제임스 코든이 아닌가. 이름부터 화려한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제임스 코드가 자아도취에 빠져 노래한다. 동글동글한 몸이 어찌나 유연하던지, 그가 점프하고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 “어젯밤에 난 니가 싫어졌어”를 부를 거 같다. 소방차 전성기 때의 정원관을 보는 느낌?(너무 옛날이야기인가요)      

미안해요. 제임스코든님

메릴 스트립이야 말해 뭐해. 맘마미아를 보며 ‘나도 저런 엄마가 되어야지!’ 했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나이 들고 싶었다.      

정원..아니 제임스 코든과 메릴 스트립이 주연을 맡았던 공연이 폭삭 망한걸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들은 재기를 위한 이슈를 찾다가 시골 고등학교에서 동성애 문제로 졸업파티(이하 프롬)를 취소한다는 기사를 본다.


 “이건 차별이야! 우리가 이 프롬을 열어주자” 라며 당장이라도 나설 기세다. 물론 차별보다 자신들에게 쏟아질 관심을 더 기대했겠지. 여기에 뮤지컬 <시카고>에서 20년 동안 코러스만 했던 니콜 키드먼도 합세한다.     

관객과 평론의 혹평을 아직 못 받아들이는 중




시골 고등학교로 장면 전환. 에마가 노래한다.


Just breathe.
(그저 숨을 쉬어)


동성애를 밝히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저 숨을 쉬라고. 너무나 밝게 노래한다. 노래의 시작이 ‘도-미-솔’ 이다. (물론 피아노 건반으로는 ‘시-레#-파#’이지만 상대음감으로 들으면 그냥 도-미-솔이다)      


도미솔, 낯익은 이름 아닌가. 초등학교 음악시간에도 나오는 1도 화음. 모든 음악의 기초가 되는 으뜸화음이다. 동성애를 노래하는데 굳이 1도 화음을 첫마디부터 강조한다. 동성애로 고등학교 최대 축제인 프롬이 취소되는 판인데 전형적인 으뜸화음이라니. 거기에 반복되는 Just Breathe(그저 숨을 쉬어)는 도-솔 이다. 으뜸음과 딸림음. 이 두 음은 ‘일반적인’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음이다.      

평범한 교실 안의 에마(겨자색 가디건에 비니 쓰고 있는)

이 노래는 가장 기억에 남을 후렴에 대놓고 으뜸음과 딸림음을 쓴다. 아직은 일반적이지 않은 길 – 여고생의 커밍아웃 – 을 가고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계이름으로 부르는 노래다. 영화의 초입부터 에마가 정면 돌파 할 거라는 걸 계이름이 암시하는 것 같다.       




에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형 티비쇼를 거절하고 통기타 반주로 자전적 노래를 만든다.


Unruly heart
(제멋대로 심장)


이것도 역시 으뜸화음으로 시작한다. 미-미레도-솔 이렇게. (물론 여기서의 도는 시b 이지만 상대음감으로는 도) 기타도 1도 화음을 잡는데 두 번째는 1도 화음 대신 sus(서스, 도-파-솔)를 잡는다.   

  

여기서의 sus는 서스펜스 할 때 그 서스와 같다. ‘긴장감을 주는’ 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불협화음 취급을 받았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아주 흔하게 쓴다.      


노래 가사는 대략 이렇다.


삶이 쉬워지기 위해서
 제멋대로인 심장을 누르고
이성애자 인 듯 살고 싶었지만
실패했다고.

누구를 좋아하든
더는 숨지 않겠다고.
날 위해 싸울 가치가 있다고.      


에마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면 삶이 쉬웠을 것이다. “너 때문에 프롬을 못 열잖아!”라는 원망을 들을 일도 없고,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았을 터. 에마도 심장에게 ‘제멋대로 굴지 마’라며 누르고 싶었지만 눌릴 심장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나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노래할 때 에마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랜선으로 합창한다.       

에마의 자전적 노래가 100만뷰 돌파

이 합창을 들으며 왜 시작하자마자 서스 코드를 썼는지 알 것 같았다. 서스 코드도 불협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여러 곡에서 쓴다. 커밍아웃을 지금은 사회의 조화를 깨뜨리는 불협화음으로 보지만 언젠간 아닐 거라고.


 작곡자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서스를 넣은 게 아닐까. 작곡가의 숨은그림찾기다.




화려한 출연진에 꽂혀 고른 영화인데 커밍아웃한 여고생 솔로에 마음이 쏠리는 영화다.


그 와중에 눈을 사로잡은 니콜 키드먼의 All that Jazz. 물론 뮤지컬 <시카고>의 올댓 재즈는 아니다. 그런데 누가 들어도 올댓 재즈 오마주다. 이 장면을 위해 ‘시카코 코러스만 20년째’ 캐릭터를 만들었겠다. 시카고의 벨마 켈리가 영화에 끼어든 줄.      

자신감 없는 에마를 시카고 '올댓재즈'스럽게 설득하는 중
이건 정말 보셔야 합니다. 글로는 모두 스포가 됨


이야기의 구성은 뻔하다. 당연히 에마는 인정받을 거고, 당연히 해피엔딩일거라고 초반부터 짐작하고 본다.


쇼핑센터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노래를 좀 멋진 군무와 함께 불렀다고 해서 에마를 철저하게 왕따 시켰던 아이들이 다시 좋은 친구가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적을 파버릴 기세였던 앨리사(에마의 숨은 여자친구. 프롬에서 커밍아웃 하려다 엄미가 먼저 알았다) 엄마가 갑자기 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춤과 노래에서 눈을 못 떼고, 떼지 못한 눈의 습기 때문에 연신 코를 풀어대며 본다. 역시, 모든 맥락은 춤과 노래야, 막 이러면서.        


맥락 없음을 맥락 있게 만들려면 다큐가 되었겠지. 이렇게 신나는 음악과 춤은 없었겠지. 그저 가벼울 수만은 없는 동성애 이야기를 이렇게도 경쾌하게 풀어내는 그들의 능력이 부러웠다. 어쩌면 어려운 문제일수록 에마의 첫 노래처럼 ‘그저 숨을 쉬고’ 봐야 길이 보임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으뜸화음은 으뜸이라 그 안정감이 좋았고 서스화음는 서스라서 더 예쁘게 들린, 화면이 화음을 돋보이게 만드는 영화. The Prom(더 프롬)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승리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