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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07. 2021

공효진이 알려준 촉촉함 vs 축축함

전주가 흐를 동안 바뀌는 눈빛에 대하여

    건조기를 사고 싶었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직 못 샀다. 막상 들이면 당연한 일상으로 시들해질 거 알면서도 지금은 매우 간절하다.      


   간절한 이유는 아주 타당하다. 건조'기'가 없어서 건조'대'를 종일 펴놓기 때문이다. 종일 펴 놓아도 습한 날이면 축축함이 오래 가다가 결국 냄새가 난다.  


   건조대를 거실에 펴 놓으면 청소를 해도 청소한 티가 안 나서 결국 청소를 안 할 근거가 되고(응?) 냄새 때문에 빨래를 다시 해야 하면  일거리가 늘었다는 짜증이 치솟는다. 이래서 축축함은 여러모로 피하고 싶다.     




  축축함을 피해야 할 게 빨래뿐일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관계가 축축하면 깔끔한 맛이 없다. 축축함이 오래가면 오해라는 악취도 만든다. 대신 촉촉한 관계는 서로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관계의 축축함과 촉촉함은 어떻게 만들까.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이 이 둘을 구분한다.      

조인성 : (화난 말투로) 배려 없단 말을 니가 할 소리라는 건 뭐야. 아까 내 애인 못하겠다는 말은 뭐고.     

공효진 : 배려 없다는 말은 니가 안 먹고 못 자며 일해서 까칠한 얼굴로 5일 만에 내 맘 아프게 나타난 걸 말하는 거고. 니 애인 못하겠다는 말 역시 지금 니 모습이 내가 너무 맘이 아파서 하는 소리야.  

   공효진 대사가 끝나고 어쿠스틱 기타 전주가 시작된다. 전주가 흐를 동안 바뀌는 조인성 눈빛. 그 눈빛을 보며 공효진이 쐐기를 박는다.     

공효진 : 내가 할 말 없게 너무 훅 치고 들어가지?

조인성 : 보고 싶었어.      


   이토록 바람직한 티키타카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부러움을 뚝뚝 흘리며 몇 번을 돌려보다가 생각났다. 내가 배워야 하는거구나. 지난주 같은 짓을 하면 안되는구나.


   지난주,

나   : 옷 좀 빨리 입으라고. 20분 전에 나가야 된다고 엄마가 말했어 안 했어!

아이 : 알았다고. 내가 가는 건데 왜 엄마가 화내.

나   : 니가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주는 학원인데 니가 시간을 안 맞추잖아!     


   순식간에 둘 다 축축해졌다. 아이는 퉁퉁 부은 얼굴로 나갔고 나 역시 소리 지른 게 찝찝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꼭 이번주에는 공효진틱하게 말해보리라!


   이번 주.     

“에고, 우리 딸이 시간을 깜박했나 보네. 학원 지각해서 니가 좋아하는 거 못하면 엄마도 속상한데”

“어? 그러네. 알려줘서 고마워. 얼른 옷 갈아입을게”

“우리 딸이 준비도 스스로 하는 거 보면 엄마가 너무 뿌듯해”      

 

  아이는 공효진보다  사랑스럽게 싱긋 웃었고  머리를 휘날리며 잽싸게 나갔다. 아이의 웃음에 나도 마음이 촉촉해. 아마 아이도 그랬겠지.   

   

   아이는 두 번 모두 같은 시간에 나갔는데 말 몇 마디에 우리의 마음은 천지차이였다. 촉촉과 축축이 둘 다 물기를 머금지만 천지차이인 것처럼.     



 

  세탁기에서 탈수 끝낸 빨래를 한아름 들고 나오다가 나도 모르게 몇 개 떨어뜨릴 때가 있다. 이걸 바로 치우지 않으면 축축한 채 방치되어 결국 냄새의 원인이 된다.


   방치된 축축한 감정도 내 정신 어딘가에서 냄새를 풍긴다. 쌓아둬도 안되고 남에게 퍼붓듯 던져도 안된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저 장면처럼 공효진틱하게 풀어야한다.


   다음 주에도 아이는 내가 말하기 전까지 나갈 준비를 안할지 모른다. '너 언제까지 그러나 두고보자' 따위의 축축한 마음은 버리고 공효진틱하게 촉촉한 재촉을 해보려한다. 부디 이 노력이 아이에게 닿아 스스로 준비하는 그날이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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