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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22. 2021

정확하고 경제적이고 우아하게

일단은 두개만이라도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하버드 학생 시절, 논문평가에서 이런 한 줄을 받았다고 했다. “He writes precision, economy and grace. 그는 정확하고 경제적이고 우아하게 쓴다.”

   남의 나라 말로 논문을 쓰면서 이정도의 찬사를 받으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편으로는 꼭 논문만 이래야 하나. 모든 글에서도 이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게...는 감이 오지 않지만 적어도 정확하고 경제적으로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둘 다 시간을 투자하면 되는 일이다. 정확한 건 사실 여부를 찾아보면 되는 일이고 경제적인 건 계속 읽으면 된다. 읽다보면 쓸데없는 조사나 문장으로 글자수를 낭비한 부분이 꼭 있다. 읽으면서 그 부분을 지워나가는 걸 1차 경제적 작업이라 부르기로 했다.

   1차가 형식이라면 2차는 내용이다. 문장 자체는 군더더기 없이 경제적이나 내용 자체가 별 필요 없어서 문단 전체를 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모든 문장과 문단은 서로 열쇠이며 자물쇠이어야 하는데 열쇠도, 자물쇠도 안되는 문장(혹은 문단)이 생긴다. 물론 열쇠와 자물쇠가 되지 않으면서도 문장 자체들이 아름답고 유기적 연결 너머의 어떤 이미지 결합으로 엮이는 글도 있으나_아마 이게 우아의 단계이겠지_ 내겐 넘 사벽이라 일단 보류. 열쇠와 자물쇠가 완벽하게 맞는 순간만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최재천 교수는 자연 생태계를 연구하지만 의도치 않게 쓰기 생태계도 파악하신 것 같다. 어느 한 분야의 거장이 되면 나머지는 통한다는 말이 이래서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의 거장이 될 수 없는 나는 거장이 남긴 한 줄이라도 다시 따라가본다. He writes precision, economy and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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