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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29. 2021

'그냥'이 부른 브런치 조회수 7만

김연아의 가르침

김연아 선수 현역 시절, 아침 일찍 스트레칭하러 빙판에 선 그에게 기자가 묻는다. 스트레칭할 때 무슨 생각하냐고. 김연아는 덤덤한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김연아가 김연아일 수 있는 답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려면 김연아 같은 '그냥력'이 필요하다. 그냥력은 시간낭비, 감정 낭비를 줄인다. 김연아가 스트레칭할 때마다 '이걸 왜 할까. 이 스트레칭은 내게 무슨 의미가 될까'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과연 한국 최초 피겨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그냥력'은 새로운 나를 만나게 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30초 연속 뛰기도 못했다. 이때 '역시 난 안 돼...'라고 생각하는 대신 그냥 '시작은 30초도 안 되는구나.' 하고 말았다. 평생 어떤 운동도 잘해본 기억이 없는데 달리기라고 별 수 있나 하는 마음이었다. 30초가 몇 번 지나니 1분이 됐고, 2분이 됐고 이제 50분을 쉬지 않고 뛰는 데까지 왔다. 그냥력 없이 매번 나의 달리기를 고민했다면 나는 5분 기록도 되기 전에 그만뒀을 거다.

글을 처음 쓸 때도 그랬다. 읽어오던 가닥만큼 잘 쓰고 싶었다. 그 생각이 가득할 때는 문장 하나 쓰기가 태산처럼 커서 늘 빈 페이지만 노려봤다. 그러다 그냥력을 가동했다. 뭘 대단히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의식의 흐름으로 쓰자고. 그냥력으로 채운 페이지들은 똥망진창이었지만 그 역시 그냥 고치면 될 일이었다. 혼자 고치든 합평받아 고치든 쉽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그냥력을 불러왔다. 아예 안쓸 거 아니면 그냥 고치자고. 글 내용은 고민해야겠지만 잘하고 못하고의 고민은 그냥력으로 밀어버리자고.

이 과정이 쌓이니 아주 가끔은 머릿속에서 그냥 조합되어 받아쓰기하듯 줄줄 써지는 선물 같은 순간도 생겼다. 받아쓰기로 썼는데 조회수 7만 같은 알람이 뜨면 그냥력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그냥력 없이 매번 깊은 고민을 했다면 그런 순간이 왔을까? 그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이미 고민에 깔려 죽었을 거다.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 '그냥력'은 고마운 존재다. 그러니 앞으로 내게 닥칠 수많은 to do 리스트에 그냥력을 꼭 얹어두려 한다. 나의 그냥력이 김연아 같은 금메달은 만들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답 없는 고민에서 헤매는 건 막아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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