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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2. 2024

그럼 내 아침은 누가 차려?

드디어 이혼_4

여자나이 50을 넘으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고 호르몬이 변하면서 살이 찌기 쉽다고 한다.


세화는 오히려 살이 빠졌다. 피부 탄력도 없는데 살까지 빠지니 볼품없어지는 거 같아서 잘 챙겨 먹어야지,라고 다짐하는 것도 오래 못 갔다.


뭘 먹기만 하면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중간에 걸렸다. 소화제를 수없이 먹고, 나중엔 내시경 검사까지 했지만 나온 건 '신경과민성 소화불량'이었다.


지창은 '안 그래도 까다로운 사람이 마르니까 더 날카로워 보인다'며 혀를 찼다.


엄마 영숙과 먹는 카레는 장까지 쑤욱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반 그릇을 먹기도 전에 헛배가 불러 더 못 먹던 세화는 없었다. 다음날까지 먹으려고 했던 카레를 그 한 끼에 싹싹 비웠다.


"우리 딸이 카레를 이렇게 잘 먹었나?"


영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게 엄마, 나도 몰랐네. 엄마랑 있어서 입맛이 도는 건가?"


노을이 지는 창밖으로 고즈넉한 가을바람이 스며들었다. 식탁 위엔 카레 냄새가 은은히 남아있었다. 세화는 수저를 정리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영숙은 그 옆에서 천천히 물컵을 씻어냈다.


세화는 엄마의 손등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바라보는데 괜히 코끝이 찡했다. 영숙 어깨에 괜히 머리를 기대며 어리광을 피웠다. 영숙은 싫은 기색 없이 세화를 가만히 토닥였다.


"엄마, 나 내일부터는 병원 청소 새벽타임으로 옮기려고."


연년생 남매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사교육비로 가계가 휘청하면서 세화는 병원 청소를 시작했다. 병원 청소의 대부분은 용역업체를 끼고 들어간다.


세화가 사는 D 시에서 가장 큰 세령종합병원은 청소인력까지 직접 고용하는 시스템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세화는 둘째 임신 5개월까지 입시 국어 강사였다. 그때만 해도 지창보다 수입도 더 높았다. 신혼 초부터 지창은 그걸 은근히 신경 쓰는 눈치였다.


신혼 때 하는 부부싸움의 끝은 꼭 '돈 많이 번다고 잘난 척이지'로 끝났다.


그랬어도 세화는 둘째 태어나기 전까지 월세 살이를 끝내고 싶었다. 지창이 뭐라 하든 일을 그때까지는 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첫째를 봐주던 영숙도 공공근로 일을 하게 되면서 첫째를 맡길 곳이 없어졌다. 세화 본인도 첫째와 다르게 입덧을 너무 하는 바람에 수업 준비가 힘들어서 결국 일을 그만뒀다.


돈은 쪼달리지만 부부싸움이 줄어들어 세화는 오히려 잘 된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이들이 조금 크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입시학원은 늦은 오후부터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었다.


남의 아이 입시 신경 쓰느라 내 아이를 남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 결국 일을 그만뒀다.


그때의 세화는 잘한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최선이었나 싶어졌다. 하지만 선택 후를 옳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인생이라고 믿는 세화는 강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자 애썼다.


그러다 찾은 일이 병원 청소였다. 새벽에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나이 들수록 새벽에 눈 뜨는 게 가장 쉬워서 그랬다. 새벽 4시부터 정오까지의 근무시간을 지창에게 말했을 때 그는 단박에 인상 쓰며 말했다.


"그럼 내 아침은? 그깟 파트타임 일 때문에 남편 아침을 안 차리겠다는 거야?"


결국 세화는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하는 팀으로 배정받았다. 파트타임이지만 격일로 8시간씩 일할 수 있고 수수료 떼는 중간 업체가 없어서 세후 150은 벌 수 있었다.


그 돈은 고스란히 아이들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으로 들어갔다.


큰애는 교환학생으로, 작은 애는 군대에 간 지금은 그전보다 돈 들어갈 일이 적었지만 세화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전부터 무의식은 스스로 버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세화?"


새벽 근무 첫날, 누군가 세화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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