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Aug 22. 2024

노예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드디어 이혼_2

지창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냥 저녁이나 빨리 준비해. 배고프다고."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세화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억지로 정신을 집중시켰다. 물기 짜낸 수세미처럼 말라버린 마음으로 세화는 간신히 저녁을 차렸다.


된장찌개의 향이 부엌을 가득 채우고, 제육볶음의 고소한 냄새가 식탁을 감돌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상 위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창은 텔레비전을 보던 눈길을 돌려 식탁으로 다가왔다.


"이게 뭐야?"


지창은 숟가락을 들고 된장찌개를 한입 맛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맛이 왜 이래? 된장찌개 한두번 끓이는 것도 아니잖아? 어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집에서 노는 여자한테 밥 한끼도 못 얻어먹는지."


세화의 억눌린 감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매일 열심히 준비하는데, 왜 항상 불평만 해요? 당신은 내가 무슨 노예인 줄 알아요?"


지창은 그녀의 말을 듣고 능글맞게 웃었다.


"노예? 참,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고 있네. 노예는 적어도 말없이, 일정한 맛을 보장하는 식탁을 차려낼걸? 당신이 이 집에서 뭘 제대로 하는 게 있나? 된장찌개도 이 모양이고, 제육볶음은 고기가 너무 질기잖아. 노예는 뭐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세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당신이야말로 나한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요? 나도 사람이라고요!"


지창은 그런 세화를 비웃듯 바라보며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래, 네가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어. 그래서 참아주는 거잖아. 당신이 이 집에서 할 일은 그저 내게 만족스러운 저녁을 차리는 거 하나인데 그거 하나 못하면서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세화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무거운 돌이 얹힌 것처럼 흉통이 그녀를 압박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녀는 더 이상 말싸움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하..."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쥐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창은 그런 그녀에게 비꼬듯 말했다.


"또 왜 그래? 숨이 안 쉬어진다는 말을 하려고? 당신은 연극배우를 할 걸 그랬어. 이렇게 실감나게 잘 하니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과 함께, 세화 눈에는 억울함과 슬픔이 가득했다. 그랬어도 더 이상 싸울 기운이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녀는 그저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이전 01화 남편은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