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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12. 2024

앉으면 전립선에 안 좋아

드디어 이혼_7

친정집에 온 세화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안정감을 느꼈다. 잠든 엄마가 깨지 않게 세화는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마치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고요한 집안에서, 82세의 세화 친정엄마는 하루하루를 깔끔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24평짜리 아파트는 마치 오랜 시간 속에서 다듬어진 보석처럼 빛난다.


차분한 파스텔 톤의 벽지와 세심하게 배치된 가구들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다.


가로등 빛이 거실 안쪽까지 깊게 들어온다. 그 빛조차도 어딘가 다듬어진 듯,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에 있는 이 공간에 더할 나위 없는 균형을 더한다.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닦아내는 바닥과 먼지 한 톨 없이 정돈된 선반은 세월의 흐름을 잊게 한다. 이렇게 닦아내려면 소품을 들이면 안된다면서 한번 들인 소품은 이집에서 오래오래 빛을 발한다.


세화 중학생 때 아빠 출장지에서 사왔다는 자개 꽃병 하나만 선반을 차지했다. 아빠 돌아가신지 5년이지만 이 꽃병을 보면 아빠가 같이 있는 거 같다.


“아빠, 내가 이혼할 수 있을까?”


세화는 꽃병을 보다가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지창이 퇴직하기 전에 무슨 방법을 마련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제 입에서 갑자기 이혼이 튀어나올 줄은 세화도 몰랐다.


놀랐어도 이.혼. 단어는 혀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나쁘지 않다. 할거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만 할 수 있을까, 세화는 금세 움츠러든 채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엄마 집에 며칠 살면서 세화는 화장실 변기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낯설었다. 세화 엄마가 샤워할 때 한번씩 닦아서 그랬다.


무엇보다 서서 볼일 보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게 이렇게 깨끗할 줄은 몰랐다. 그게 좋아서 세화도 괜히 한번씩 더 닦았다. 호텔 화장실 느낌이 나서 괜히 신이났다.  


“혼자 살면 원래 그래. 누구 하나 더럽히는 놈이 없잖아. 화장실 깨끗하니 기분 좋지?“


엊그제 세화가 화장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세화 엄마가 옆에 오더니 툭 던진 말이다.


“나 아무말도 안 했는데?”


세화가 엄마를 보며 말했다. 세화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그냥, 니 얼굴이 그런 말을 하고 있네’ 라고 말하며 화장실 수건을 예쁘게 접었다.




아들 하민이 군대가기 전, 세화는 화장실이 두개 있으니 딸과 자신, 아들과 남편 화장실로 구분해서 쓰자는 제안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25년간 변기를 닦는 게 지겨워서 그랬다.


남자들이 집에서만큼은 앉아서 볼일을 보길 바랬지만 지창은 '전립선에 안 좋다'라는 말로 세화 말을 무시했다.


둘다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니 집 화장실 쓰는 시간이 얼마 없지 않냐고 되물었지만


"말 잘했네. 몇 번 쓰지도 않는 걸로 왜 그리 예민하게 굴어?"


라고 하는 바람에 세화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 몇 번이 이틀만 되어도 흔적과 냄새를 남긴다는 말까지는 안했다.


화장실을 나눠 쓰면서 세화에게 잠깐의 평화가 왔다. 딸 하은이와 둘이 쓰는 화장실은 사흘간 청소하지 않아도 흔적과 냄새가 없었다.


그 평화는 고작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지창도, 하민이도 본인들 화장실은 뭔가 불편하다며 자꾸 세화와 하은의 화장실로 왔다.


"불편한 게 아니라 더러운 거잖아. 둘이 한번씩 변기를 닦아."


라고 세화가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신만 시비 안 걸면 이집은 싸울 일이 없는데 왜 자꾸 분란을 만들어!"


지창이 미간에 힘을 한껏 주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억울했다. 그 말 한마디에 화장실을 나눠 쓰는 일은 일주일만에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세화는 정말 자신이 트러블 메이커인가 싶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정은 내가 깨는 건가? 고요하고 평화로우려면 내 의견은 없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세화 친정엄마 영숙의 집에서는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그 느림이 곧 평화와 고요함이었다. 세화가 집에서는 한번도 갖지 못한 이름이었다.  


'어 이상하다?'


세화는 문득 친정에 온 후 숨이 안 쉬어지거나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심을 한번도 안 느꼈다.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었는데도 소화가 어렵지 않았던 며칠에 이어 호흡이 편안하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러면 병원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불빛이 반짝거린다. 남편에게 온 문자다.


갑자기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문자를 열어볼 생각도 없이 심호흡에만 집중했지만 소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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