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가 100일이 지나 친정에서 집으로 왔을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이웃에게 양해를 구했다. 새벽에 아기가 자주 깨서 울음소리가 나서 시끄러울 수 있다. 양해 부탁드린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요즘 같은 때 아기 울음소리가 얼마나 귀하냐. 괜찮다.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중소도시. 거기서도 시가지와 한참 떨어진 곳.
아직 시골 인심이 남은 동네라 그런지 어머니는 이웃과 왕래를 자주 하시고 문고리에는 가끔 과일이나 음식 같은 것들이 걸린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파트 탑층에 산다. 아래층에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귀가하시는 분이 살고 있었고 일찍부터 4cm 매트를 전부 깔고 하이는 저녁 7시에는 자는 아이였기 때문에 크게 층간소음에 대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하이가 7살이 되었을 때 생겼다.
아래층이 이사를 가고 한동안 비어있던 집에 새 이웃이 이사를 왔다.
남편이 하이와 외출을 나갔다가 마침 새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분명히 층 누르는 걸 보고도 이웃분은 전에 살 던 집 위층 시끄러운 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이사 왔지. 하고 크게 통화를 했고 남편은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리구나. 하고 단번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삼일만에 올라왔다.
오후 다섯 시. 아이들이 하원하고 십분 남짓 했을까. 날이 좋아 창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아이들은 마주 앉아 놀며 뭐가 그렇게 좋은 깔깔대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구르는 소리에 매트 밖으로 장난감 나오지 않게 조심해라. 하자마자 아래층에서 올라와 벨을 눌렀다.
3교대 근무를 해서 낮에는 자야 하는데 애들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심한다고 하는데 죄송하다. 몇 번을 사과하고 매트도 다 깔려있고 더 조심히 시키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말 하면 덮어놓고 층간소음은 무조건 위층 잘못이라고 욕하는 거 안다.
우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어른들은 슬리퍼를 신고 까치발을 하고 아이들은 매트 위에서만 생활하게 했다. 주말에 나는 하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고 남편은 놀다가 미혼인 친구네서 잤기 때문에 우리는 주말에 오히려 집이 빈다.
그리고 뭣보다 정말 우리 개는 안 물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맹세코. 하이는 가만히 앉아서 인형 놀이, 공주 놀이, 병원 놀이, 메이크업 놀이, 헤어샵 놀이 같은 역할놀이를 하며 입으로 조지는 스타일이라 큰 소리가 날 게 없다. (급한 일이 생겨서 3시간 정도 동생이 하이를 봐준 적 있는데 1시간 만에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누나. 하이 도대체 언제 조용해? 귀에서 피 나올 거 같아. 이정도로 앉아서 조잘조잘 조진다.)
하지만 보통 모두의 일과 시간. 애들이 하원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오기를 두어 번.
주말 오전 11시. 오랜만에 집에 있다가 애가 뭘 흘려서 잠깐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 올라와 주말 아침에 자고 있는데 뭐 하는 거냐고 올라오자 우리도 그저 죄송하다는 모드로 일관하기가 힘들어졌다.
우리도 많이 참았다.
새벽에 올라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일어나 창문 닫기를 수 십번. 위층인 우리 집을 지나쳐 옥상 올라가는 계단까지 와서 담배 피우는 것을 몇 번이나 마주쳤고 냄새 때문에 외출하러 나왔다가 짜증이 밀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들이 키우는 개는 얼마나 짖어대고 밤늦게 왜 이렇게 싸워대는지. 새벽녘에 들리는 고성과 고함에 깬 아이가 저 아줌마 아저씨는 왜 사람들 다 깨어있는 시간엔 자고 우리 잘 때만 저러냐고 투덜거렸다.
본인들 생활 패턴에 저희가 어떻게 맞춰드릴까요? 도대체 그럼 언제 일하고 언제 주무세요? 아래층에서도 소리 올라와요. 개 짖는 소리 많이 나는 거 아시죠. 새벽에 저희도 시끄러워서 깬 적 많아요. 그때마다 저희도 내려갈까요?
우리가 무조건 잘못했다. 죄송하다. 더 신경 쓰겠다. 미안하다. 하다가 욱해서 한 소리에 남자는 별 대꾸 없이 되돌아갔다.
싸우자는 건 아니고 남편은 이야기 끝에 웃으면서 낮에 생활하면서 간혹 소리 날 수도 있는 거 저희도 계속 신경 쓰고 있으니 서로 양해 좀 하자고 좋게 덧붙였다.
나는 우리도 그동안 참은 게 있는데 너무 저자세로 말한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남편은 낮에 여자들만 있는데 만약에 나쁜 마음먹고 험악한 짓이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했다.
층간 소음.
정말 어렵다.
탑층은 층간소음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있기 때문이다. 또 가끔은 아래층의 아래층에서 나는 소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본인 생활 패턴 이야기만 하니 정말 쉽지 않겠다. 싶어서 우린 이사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웃은 이듬 해 이사를 나갔다.
새이웃은 하이 또래의 아이가 있는 가족으로 우리는 웃기게도 쌍방향으로 미리 양해를 구했고
그 집 아이는 하이보다 조금 늦게 자는지 가끔 우리가 자려고 누워있으면 간혹 뛰는 소리 같은게 올라오지만 늦어도 오후 10시면 마법같이 조용해진다.
안 당해 봤으면 말 하지 마. 층간소음에선 위층이 무조건 가해자야. 그럴 수 있다.
조심한다고 했던 건 내 생각이니 아래층에서는 그 소리가 크게 와닿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덮어놓고 나 노력했어, 아닌데? 했던 건 아니고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하지만 통념적인 일과 시간이란 게 있는데 본인의 입장만 고수하는 이웃의 태도는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그 이후로 이웃은 더이상 우리와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있다가 홀연히 이사를 갔고 나는 종종 벽을 타고 올라오는 새이웃의 활기찬 소리에 문득 지난 일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