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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09. 2024

유방암센터 입성

검사 당일.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택시에 타자마자 엄마는 눈물 바람이다. 

암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필 우리 딸이냐,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며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런 말들에 내 가슴도 아린다. 


대학병원에 부모님만 모시고 와봤지 내가 환자로 오는 건 처음이다. 

진료카드를 받고 앉아 있는데 암 코디라는 분이 내려오셔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검사해야 할 항목이 a4용지에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여러 명에게 설명해서 그런지 암 코디 선생님의 말은 랩처럼 빨랐다. 

설명을 듣고 뻣뻣한 가운으로 갈아입고 유방암 센터에 입성한다.

대기석에 있는 환자분들은 거의 대부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 사이로 짧은 머리가 보이는 사람. 머리카락이 아예 안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담담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지루해하는 얼굴 표정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의연할 수가 있다고 믿기기 않았다.

떨리고 무서워하는 나는 좀 오버인 건가 싶기까지 했다.

뉴스에서는 젊은 유방암 환자들이 많다고 했는데 여기 유방암 센터에는 젊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초초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우리에게 옆에 대기 중이던 환자가 말을 걸었다. 

"처음 오시는 건가 봐요?"

"네, 진단받고 검사하러 왔어요."

"몇 기래요?"

"0이라고 하는데 검사받으면 또 모르죠."

"0 기면 괜찮아요. 항암만 안 받으면 괜찮아, 걱정하지 말아요."

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진 환자분이었다. 털모자를 쓰고 얼굴이 푸석해 보였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말에 목이 멘다.  

나는 환자처럼 머리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정도는 아닐 거야.라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안심의 눈물이 나왔다.

이름이 호명되었고 무서운 진료실로 빨려 들어간다.

주치의 선생님은 여자분였고 작은 키에 온화한 얼굴이었다. (여자분이라 좋았다.)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 보시더니 "겉으로 만져지는 건 없네요. "

하셨다. 그리곤 다른 병원에서 가져온 CD를 보면서 

"이렇게 흰색 덩어리들이 꽤 많아요. 알고 있죠?" 하며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셨다.

"좀... 어떤가요? 가슴을 정말 다 절제하는 건 아니죠?"라는 엄마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지금은 말할 수 없고 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자세하게 이야기해드릴게요.

저는 1월에 뵐게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암 코디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검사를 받았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MRI와 CT를 찍었다. 

여러 통들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다양한 검사를 했다. 

검사해 주시는 의료진들은 모두 다정했다. 맨 처음 채혈실로 갔다.

무서워하는 나에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안 아프게 해 드릴게요."라고 해주셨다. 

이런 말 한마디들이 환자의 마음을 참 편하게 해 주는 것 같다. 

MRI 통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시끄러운지 몰랐다. 검사 시간도 꽤 길었는데 

불편하진 않은지 확인해 주고 중간중간 잘한다, 이제 몇 분 남았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무섭지 않았다. 

"엄마, 여기 의료진들은 모두 다 친절해."

엄마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그럼, 친절해야지. 친절하게 안 하면 환자한테 혼나지."라며 핀잔을 주었다.

직업정신이겠지만 서비스를 받는 환자 입장에선 편안했고 감사했다. 

모든 의료진들이 내가 불편하지 않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암 환자로  오면 순서를 기다릴 필요 없이 검사가 바로 이루어져서 

호사 까지 누리는 느낌이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잘못한것도 없는데 주눅이 들면서  생각이라것도 증발되버린것 같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만 하면 된다. 

움직이지말라고 하면 움직이지 말고 숨 참으라고 하면 숨 참으면 된다.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들도 검사를 다 마치는 대단한 곳이다.


오전 검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시간이 좀 남아서 엄마와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 검사를 기다렸다. 

엄마는 "미정아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이 말을 10번도 넘게 했다. 

나한테하는 말임과 동시에 본인에게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엄마 말처럼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아직도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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