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Mar 10. 2024

불안과 눈물, 그리고 응원

나는 언제나 운이 좋았다. 이번에도 그럴 거니  걱정하지 말자. 

0기에 발견됐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건가.라고 다이어리에 적었다.

검사를 마치고 나니 큰 숙제를 해치운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마지막날이다. 

카톡에는 친구들의 새해 복 많이 받아, 건강하라는 메시지가 수두룩 들어온다. 

이렇게 특별한 날에는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에게도

"별일 없지? 잘 지내지?"라는 연락이 오는데

평상시 같으면 반가운 마음에 바로 연락을 했겠지만 이제는 이런 사소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괜찮다고 하기에는 거짓말이고, 암이라고 하기엔 말이 너무 길어진다.

미안하지만 메시지에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의 카톡에는 답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내년엔 건강만 하자"라는 메시지에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나 유방암 이래. 극 초기라고 하니 걱정하지 말고, 나 응원해 줘."라고 답문을 보냈다. 

'어머 어떻게 하니.'라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말보다 

'그까짓 거 별것도 아니래. 괜찮을 거야."라는 응원의 말을 원했다.

걱정하는 그들의 목소리 보다  응원이 받고 싶다.


친구들은 0기에 발견한 게 천운이라며 수술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모두 다 하나같이 

"잠시 쉬어가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했다." 

하늘의 계시는 왜 늘 이렇게 가혹한 건지.


그다음으로는 회사동료들

회사 여사님들에게도 유방암 사실을 알렸다.  

나를 꽉 안아주는 여사님, 손을 잡아주는 여사님, 거짓말이죠? 하면서 눈물 흘리는 여사님 

그들은 울었지만 나는 더 크게 웃었다.

"여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수술만 하면 괜찮데요." 하면서 눈물 흘리는 여사님들 앞에서 

더 크게 웃어보았다.

"그래, 우리 영양사님은 치료 다 잘될 거야.",

"내 친구도 10년 전에 유방암 진단받았잖아. 지금은 뭐 날아다녀."

"요즘 의술이 얼마나 좋아졌다고 요즘엔 암이라는 게 감기 같은 거더라고."

많은 응원을 말씀을 해주셨다. 


검사 결과 날짜는 어찌나 더디게 오는지 모르겠다.

유튜브에서 유방암을 검색해 본다. 

혹의 크기가 크면 안 된다고 했다. 내 가슴에 혹은 4cm나 되는데 어째서 나는 0기인 걸까?

검사결과가 잘못되진 않았을까 싶어 가슴이 조여왔다. 

그 와중에 추가조직검사를 더 시행했다는 문자가 왔다.

'나 진짜 잘못된 거 아니야? 조직검사를 어떻게 추가로 한 거지?'

산책한다고 혼자 걸으면서 항암치료까지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머리가 다 빠지고 괴로워하는 내 모습

상상만으로도 무섭고  슬퍼진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산책의 끝은 눈물과 끝난다. 

하루는 산책길에  검사 결과와 나의 상상만으로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 산책을 마치지 못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어도 

아이가 학원 다녀온 밤에는 절대 눈물을 흘리거나 걱정하는 얼굴을 하지 않는다.

최대한 불안하지 않게 평소와 똑같이 하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가 잠이 든 밤

"불안해 죽겠어. 나 0기 아니면 어쩌지? 아주대에서 문자 왔어. 추가조직검사 했다고."

"의사말을 믿자, 0기라고 했는데 갑자기 4기가 될 수는 없잖아. 만약 상황이 안 좋다고 하면 1기 일거야.

불안해도 유튜브 찾아보지 마.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새해가 밝았다.

"가윤이는 새해목표가 뭐야?"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

"에이~ 진짜 그거야?"

속으로는 공부 좀 열심히 해보려고 이런 대답을 원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하니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딸 덕에 심플한 계획이 세워졌다.





작가의 이전글 유방암센터 입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