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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17. 2024

폭풍전야

늦게 일어나는 것, 낮잠 자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은 불안감이 커졌다.

신랑은 다 낫게 되면 여유로웠던 이 시간이 그리울 거라고 했다.

지금을 즐기라는 신랑의 뜻은 알지만 나는 평범했던 하루가 미치도록 갖고 싶다.

예전엔 평범해서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미정아. 제발 진정해. 일 년 놀았어? 십 년 놀았어?"

"그래도... 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시간낭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별 걱정다 한다."


아이가 학원 간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 오늘은 딸 임신했을 때가 떠올랐다.

내 생애 가장 큰 수술이라면 아이를 낳은 일이다.

임신은 했는데 무서워서 애를 도대체 어떻게 낳아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가까이 지내는 산모들이 아이 낳은 후 산모 몸 회복이 빠르다면서 대부분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 했다.

나도 덩달아 자연분만을 선택했다.

순산하려면 산책으론 부족할 것 같아 임산부 요가를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막달에는 쪼그려서 걷는 운동을 시켰는데 많은 산모 중에 으뜸으로 '열심히' 했다.

순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으뜸으로 열심히 운동했듯

수술 후 회복이 잘되길 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도 산책을 나서본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인 것 같다.

(머리를 쓰면서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텐데 말이다.)


 수술 전에 얼굴 보자며 친한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사는 곳도 가깝지 않은데 마음을 내서 온다는 친구가 참 고마웠다.

"내 친구 00 알지? 걔도 유방암래, 친한 친구 2명이 유방암이라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00은 몇 기야?"

"2기쯤 되나 봐, 게다가 양쪽에 다 암이 있다고 했데.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걔는  양가 부모님이 다 멀리 계셔서 아이를 맡길 때가 없어서 걱정하더라고,

너는 0기에 친정부모님 옆에 살아, 애도 많이 컸어, 얼마나 다행이야."

나보다 더한 처지의 유방암 환우 이야기를 들으니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짧은 수다를 떨고 친구를 역에 바래다주었다.

"전역이래 얼른 들어가."

"미정아 잠깐만."

친구가 빨갛게 된 눈으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면서 물었다.

"뭐야? 너 나한테 편지 쓴 거야? "

"응. 미정아 수술 잘해. 힘내."

친구가 가고 봉투를 열었는데 돈도 있었지만 꾹꾹 눌러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친구를 보내고 그 자리에 서서 친구의 마음을 읽었다.

뜨거운 눈물이 떨어진다.


무섭고 떨리면서 유방암 수술한 사람들의 후기를 또 찾아본다.

유방암 환자는 정맥주사를 팔에 놓는 게 아니고 발에 놓는다는 둥,

그 와중에 간호사가 잘 못 찔러서 여러 번 찔러 괴로웠다는 둥 수술 전에 유두에 맞는 주사가 악 소리 날 만큼 아프다는 둥  고통스러운 내용들뿐이다.  

수술하는 상상만으로도 무릎뼈가 흔들릴 정도록 두렵고 무섭다.

수술 날짜가 다가 올 수록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좋게 건강해질 날이 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친구가 써준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친구의 말처럼 이 모든 게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앞으로 많이 남은 인생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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